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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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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숙이


BY 귀부인 2021-08-16

결혼하기 전 같은 회사에 다니면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있다. 

입사 동기도 아니고, 같은 부서에서 근무한 것도 아니지만 업무적으로 연관되다 

보니 우연찮게 서로 알게 되었다. 나이도 동갑이고  취미도  같아 금세 친구가  

되었다. 뽀얗고 앳된 얼굴에 짧은 단말 머리가 유난히 잘 어울렸던 그녀는 굉장히 열정적이었고 야망도 꽤 컸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었지만, 그 시절엔 여사원이 대리를 단 이후 과장으로 진급하기는 굉장히 어려웠다. 선배 언니 하나는 결혼 이후 아이 

낳는 것도 미룬 채  회사 일에 올인을 했다. 그 결과 입사 동기들보다 2년 늦게서야 겨우 진급은 했지만 독종이란 별명을 얻었다.



요즘이야 시대가 달라져 여성들의 사회 진출도 활발하고  능력을 인정받아 승승장구하는 커리어우먼들이 많다.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여성들은  결혼을 하게 되면 사표를 내거나, 당분간 직장 생활을 이어 가다가도  임신을 하면 퇴사를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나이라 여겨지지만  당시로선  결혼 적령기인  나이에 결혼을 했다. 내 친구처럼 대단한 야망을 가진 건 아니었지만 결혼과 동시에 퇴사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 결혼만 했을 뿐 나는 똑  같은 김양이었고,  갑자기 업무 능력이 확 떨어진 것도 아닌데, 과, 부장님들은 김양은 언제까지 회사에 다닐거냐고 물어 보시곤 했다.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무렵  남편의 임지가 바뀌는 바람에 자연스레 퇴사를 하게 되었다.


친구가  따라 갈 필요가  있느냐고, 남편은 단신 부임시키고  각자 자기 커리어를 쌓아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하지만 양가 어른들을 설득해서 한국에 혼자 남을 만큼 내 일에 대한 열정이 없었기에 과감히 사표를 냈다. 결혼 초에는 일도 없이 하루 종일 남편 기다리는  일상이 힘들었다. 갑자기 사회로부터 도태되고 뒤쳐지는 느낌이 들어 속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태어나고 부턴 내 자신은 사라지고 아이들 엄마로, 

아내로 사느라 정신없는 세월을 보냈다. 그러는 사이 친구는 입사동기들보다 늦었지만 대리를 달고, 서른이 되어  결혼도 했다. 과장 진급 이후에 아이를 낳겠다던 결심은, 여자 나이 서른 넘으면 노산이라고 눈치 주는 시댁의 압박에 무너졌다. 임신 이후엔 주위의 눈총에도 부른 배를 하고 꿋꿋이 출근을 했다. 아이는 농사일로 바쁘신 친정 어머니가 돌봐  줄 형편이 되지 않아 이웃집 할머니에게  맡겼다.




그런데 출근할 때마다 떨어지지 않으려 우는 아이 때문에  회사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일의 능률도 오르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급기야 내가 무슨 영광을 보자고 너무나 예쁜 딸, 매일 아침마다 울리면서 일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결국은 사표를 내고 말았다. 커리어우먼으로 남겠다 던 그녀의 결심은  모성애 앞에 무너지고 말았다. 딸이 어느 정도 크면 재취업을 하겠다 던 친구는, 아들은 꼭 있어야 한다고 우기는 시댁과 남편 성화에 못 이겨 4년 터울로 원하던 아들이 아닌 딸 하나를 더  낳게 되고, 재 취업의 꿈은 점점 멀어졌다. 비록 몇 년 더 늦기는 했지만 그렇게 내 친구는 나처럼 경단녀의 길에 들어섰다.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연락도 뜸 해지고, 가끔 어떻게 사나 궁금하기는 했으나, 딱히 연락을 하기도 뭣한 그런 사이가 되고 말았다. 종종 한국 방문을 하더라도 주로 시댁에 머무르던 나는 거짓말처럼 결혼 이후 한번도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우연찮게 앨범 정리를 하다 함께 찍은 사진을 보고 수 십 년 전에 주고 받은 전화번호로 무작정 전화를 했다고 한다. (다행히 고향에 부모님은 안 계시지만 오빠가 살면서 집 전화 번호는 바꾸지 않아 내 연락처를 알게 되었다.) 오랫동안 연락을 주고받지는 않았지만 마치 어제까지 만나오던 친구처럼 한참 동안 수다를 떨었다. 보이스톡으로 전해지는 친구의 목소리는  나이를 먹지 않았는지 통통 튀는 생기 발랄함이 묻어났다. 



서로 사는 이야기를 하다 친구가 내게 물어 보았다.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고. 코로나로 인해 일을 못하고 있다 했더니 자기는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했다.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해 하는 내게 남편 섬기는 일이야 하며 하하 웃었다.



사실 친구는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언젠가는 재취업 하리라는 생각에 공부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러다  작은 딸이 고등학교에 입학하자 더 늦으면 안될 것 같아 재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마침 그때 친구의 남편이 회사 생활을 힘들어하며 매일 사표를 쓴다는 소리를 하던 때라 적극적으로  구직 활동을 했지만, 전공 관련 분야의 일자리를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웠다.스트레스가 쌓이다 보니 남편과도 자주 다투게 되고 가정이 무너질 위기까지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내가 재취업 한들 가정이 무너지면 무슨 소용이 있나 하는.... 요행이  재취업을 한다 하더라도 남편이 받아오는 월급만큼 받는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직시하자 남편이 진짜로 사표를 내면 큰일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본인이 일자리를 찾을게 아니라 남편이 계속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날 이후로 남편이 집에 오면 무조건 편히 쉴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발도 닦아주고, 별일 아닌 것에도 칭찬하고 , 집도 깨끗이 치우고, 딸들에게 과 몰입 된 관심을 남편한테도 나눠주고.... 그렇게 위기를 넘기고 지금 그녀의 남편은 임원으로 승진해서 코로나 시대에도 잘 버티기고 있다고 했다.



재취업 포기한 걸 후회하지 않느냐 했더니  아쉽기는 하지만 두 딸들이 예쁘게 잘 커 주었고 남편도 성실하니 괜찮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딸들은 결혼과 육아로 자기처럼 주저앉지 않았으면 했다.일은 하지 않았지만 이것저것 준비한 자격증 만도 20 가지나 된다는 친구는 머잖아 다가올 남편의 은퇴 이후의 삶을 어떻게 잘 살아야 할지 고민 중이라 했다. 친구의 고민은  내 고민이기도 한지라 한참을 무엇을 해야 할 까 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막연하던 남편의 은퇴가 이젠 머지않아 현실이 될 것이고, 은퇴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제대로 준비를 해야 할 시기가 온 것 같다.  얼굴만 한국인이고 외국인과 다름없는 내게 눈높이만 낮추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며 걱정 말라는 친구의 말대로 미리 겁먹고 두려워 하지는 말아야겠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친구와 다시 연락이 된 것이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