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출발하면 팔당호와 남양주를 지나면서부터 조금씩 공기가 달라진다. 숨 막힐 듯 답답하던 공기가 점점 청량하고 하늘이 맑아지면 저 멀리 강촌이 손을 흔든다. 그때부터 시원한 산세를 즐기며 도착하면 춘천이다. 고속도로를 타고 다니는 길이 심심하다면 여유와 낭만을 즐길 수 있는 옛길을 추천한다. 천천히 호수를 끼고 도는 아름다운 도로를 달리면서 조금 느리지만 쉴새 없이 앞을 향해 달리던 마음에 쉼표를 찍어보는 건 어떨까? 산다는 건 앞으로 가는 길도 있지만 때로는 뒤로 물러서기도 하고 가끔은 돌아서 가기도 한다.
등선폭포를 타고 삼악산을 오른다면 협곡으로 들어서는 길에 선녀탕과 절벽이 어우러진 산중의 미를 감상할 수 있다. 헉헉대고 산을 오르는 중에 잠깐씩 뒤를 돌아보면 아찔하게 펼쳐지는 경치에 힘든 산행의 노고가 단숨에 가실 것이다. 우리네 삶도 뒤를 돌아볼 때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쉬움이 가득한 삶의 뒤 안을 말끔히 비우고 싶은 내 안의 착한 마음이 불쑥 솟아날지도 모른다. 신라 시대 궁예가 지었다는 흥국사를 지나고 정상에 오르면 수고한 자만이 볼 수 있는 멋진 풍경이 가슴을 파고든다. 호수 위에 점점이 떠 있는 붕어섬을 바라보며 그곳에서 아메리카노를 한잔 마셔주면 나에게 건네는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하산 길에 수령 백 년도 넘은 오래된 소나무가 바위에 앉아 자태를 뽐내며 쉬었다 가라 권한다. 소나무가 아무리 잘 생겨도 주변과 어울려야 멋이 우러난다. 그걸 아는 나무가 바위에 붙어 하늘을 불러낼 수 있는 곳에서 호수를 차지하고 억겁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혼자 앉아 망중한을 즐겨도 좋고, 여럿이 앉아 담소를 즐긴다면 서로를 더 가까이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이 생길 것이다. 산들바람 불고 나무와 산이 말을 걸어주는 그곳에서 마음의 때를 씻어내고 다시 걷기 시작하면 힘이 빠질 때쯤 상원사를 만난다. 역시 신라 시대에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이 절을 지나면서 발아래 보이기 시작하는 호수 위의 절경을 보면서 의암매표소로 하산하면 눈과 가슴에 담은 삼악산의 청취에 신선이 되어있을지 모른다.
두 번째 구경 소양댐으로 향한다. 소양호를 보면 수십 년 전 호수에 가라앉은 전설들이 불쑥 어린 시절의 기억 들을 소환해줄지도 모른다. 29억 톤의 물을 가두어 둔 내륙의 바다를 보면서 저렇게 큰 호수를 만들고 저토록 많은 물들을 다스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하는 생각에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기도 한다. 인제, 양구, 북한강까지 이어지는 물길을 이용해 배를 타고 오가기도 한다. 산이 호수를 품고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은 오래도록 마음에 저장되고 소양호 맑은 물 위를 가르는 상쾌한 공기는 춘천을 다시 찾게 만든다.
호수 위로 미끄러져 배를 타고 가면 청평사로 가는 길에 닿는다. 가는 길에 사방으로 펼쳐지는 경치는 어디를 봐도 기억에 남는 장관이다. 배에서 내려 청평사로 향하는 산책길은 부모님을 모시고 가면 향수를 불러오고 아이들과 함께 가면 자연을 배운다. 연인이 함께 가면 서로에게 소중한 추억을 선물한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길에 만나는 공주 설화와 구성폭포는 같이 가는 사람과 도란도란 담소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제공한다. 길지도 짧지도 않게 적당히 걷고 나면 드디어 청평사에 닿는다.
청평사 입구의 회전문을 지나 2층 누각의 강선루를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천년 전설을 간직한 청평사는 못을 하나도 쓰지 않은 건축물이다. 오로지 나무와 나무의 틈을 끼워 만든 장인의 솜씨를 보면서 천년 전 건축의 우수성과 색채의 아름다움에 찬사와 존경을 보낸다. 대웅전을 오르는 돌계단에는 태극 문양의 꽃주름을 새겨놓았다. 극락보전의 문에는 화사한 색감의 꽃문양이 조각되어 보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사계절 아름다운 자연과 어울려 운치 있게 자리한 청평사는 언제 보아도 깊은 멋을 느낀다. 이렇게 깊고 아름다운 곳에 절을 창건한 이의 혜안이 놀랍다.
청평사를 내려와 아름다운 호수길을 따라 드라이브를 하다가 만나는 서면의 어느 멋진 카페에서 마지막 일정을 즐기고 돌아간다. 가는 길에 눈에 남은 풍경과 가슴에 남은 이야기가 말을 걸어올지 모른다. 물안개 위를 둥둥 떠다니던 낭만이 말을 걸고, 강촌이 따라오고, 백양리를 지나 경 강까지 따라오던 춘천을 남양주에서 겨우 떼어낸다. 다시 공기가 퍽퍽하고 답답한 일상으로 돌아가면서 낭만의 도시 춘천을, 파란 하늘을 마음속에 저장하면서 다시 올 날을 기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