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에 다가구 주택 신축을 시작했다. 예전보다 까다로워진 건축법에 추가된 절차로 지질 검사라는 것을 하고 임의로 도로로 사용하던 내 땅을 무려 13평이나 시에다 기부채납을 하면서 다시 측량을 거쳐야 했다. 개인의 사유재산을 도로로 기부받으면 최소한 측량비 정도는 시에서 부담해야 맞는 것인데 그 측량비용조차 내가 부담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날짜가 자꾸 늦춰지고 결국 1층까지만 공사를 하고 12월 중순이 되었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콘크리트 양생이 되지 않으니 구정을 지나 다시 하기로 하고 공사는 중단시켰다.
3필지 중 2필지는 작년 8월에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고 남은 1필지에 신축을 시작한 것이다. 2월 중순, 공사를 재개하려고 날짜를 보고 있는데 작년에 양도받은 옆의 땅 주인이 전화했다. 1층 건물과 주차장 담벼락까지 아무리 봐도 내가 자기의 땅을 침범한 것 같으니 측량을 다시 하잖다. 30년을 집만 지어온 전문가들이 그런 실수를 할 리가 없다며 자신 있게 말하니 그럼 자기가 해보고 만약 침범했다면 모두 책임지라 한다. 잠시 후 다시 전화가 왔다. 알아보니 측량비가 너무 비싸고 자기가 왜 그렇게 해야 하냐며 화를 냈다.
민원이 들어오면 골치가 아플 것 같아 부랴부랴 측량을 신청해 놓고 기다렸다. 열흘 후 측량을 다시 하니 2㎡ 대략 반 평가량을 먹은 것으로 나왔다. 그때부터 기세가 등등해서 난리가 났다. 더 정밀하게 봐야 한다기에 현황측량을 또 신청했다. 대략 열흘 후 다시 한 현황측량에서 역시 같은 값이 나왔다. 다 필요 없으니 당장 때려 부수란다. 다시 연락해서 만나 내가 작년에 매매한 금액에서 제곱미터당 대략 4배를 쳐서 주겠다며 설득했다. 이걸 부수고 다시 하는 것 보다 서로 마음도 안 상하고 그게 좋지 않겠냐며 사정하니 못 이긴 체하며 받아들였다.
한 달을 속을 끓이다가 공사는 다시 시작했는데 공사대금으로 사용하려던 돈을 주인이 돌려달란다. 그동안 내 통장에서 쭉 잠자고 있던 돈이었다. 매달 이자를 꼬박꼬박 지급하던 돈이었고 공사가 끝나면 등기 후에 팔던가 대출을 내서 해결하려 했는데 공사 중에 돌려달라니 막막함이 밀려왔다. 차라리 시작을 안 했으면 모를까 이미 시작한 공사를 중단시킬 수도 없고 공사는 겨우 반을 했다. 남은 공사비를 조달할 일이 막막했다. 피가 마른다는 느낌이 이런 거구나? 생각했다.
몇 년 전 공사를 하면서 마을금고에서 기성고 대출을 받은 적이 있어서 서류를 들고 가서 상담했다. 대출 규정이 많이 바뀌었지만 그래도 해보겠다. 하더니 며칠 후 어렵겠다고 한다. 다시 다른 곳을 찾아가 상담했다. 신용도가 좋으니 한번 해볼게요 하더니 거기서도 어렵단다. 현재 땅에 대출이 하나도 없고 4층까지 골조가 다 끝난 상태이다. 앞으로 내, 외장만 남은 상태에서 겨우 3억이 대출이 안 된다는 게 말이 되냐 하니 죄송하단다. 가지고 있던 다른 땅을 제시하니 턱도 없는 금액을 말한다. 그렇게 거절을 당하고 씁쓸하게 은행을 나서는데 아는 언니가 두릅을 따 왔으니 먹으러 오란다.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차를 몰고 갔다.
두릅 부침개에 막걸리를 몇 잔 마셨더니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졌다. 이야기를 듣더니 내가 가진 전 재산이 사천인데 갖다 쓰란다. 사천 가지고는 턱도 없지만, 이 언니의 사정을 아는 나는 그 마음이 귀하다. 집으로 돌아오며 생각해 보니 이 언니 말고 제일 친한 친구에게 먼저 이야기를 했었고, 또 한 사람에게도 했었다. 그들에게 무슨 기대를 하고 말한 게 아니어서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얼마간 있을 사람들인데 아무런 말이 없었다. 정작 그중 제일 가난한 사람이 자신의 전 재산을 빌려주겠다 한 것이다.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지만, 진실한 사람을 가려낸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평생 그런 사람을 단 한 명도 못 만날 수도 있고 더 만날 수도 있지만, 위기가 닥쳤을 때 사람의 진심이 드러나는 건 맞는 것 같다.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얻어진 교훈이다. 이제 더는 미룰 수가 없어서 건축을 맡긴 소장님을 찾아갔다. 그간의 이야기를 하고 이 상태에서 공사는 중단시키고 다른 곳의 땅을 팔아서 자금이 생기면 그때 마무리를 하자고 했다. 잠시 생각하더니 보일러, 싱크대, 샷시등 남아있는 공정의 업자들에게 양해를 구해서 대금의 30%만 지급하고 완공이 되도록 처리해 주겠단다. 나머지는 공사가 끝나고 등기를 하면서 바로 대출을 받아서 지급하라며 도와주겠다 한다.
건축을 시작하기 전에 아는 사람이 전화해서 자신의 남편에게 건축을 의뢰하면 건축 감독비를 오백을 더 싸게 해 주겠다는 달콤한 유혹을 했었다. 왠지 신뢰가 가지 않아서 거절하고 이분에게 의뢰했었다. 이분과 두 번째 건축이었다. 처음 건축 후, 6개월 만에 방바닥에서 소리가 나서 하자보수를 해 주면서 반씩 부담 했었다. 이번엔 반 평을 침범했다 해서 다시 측량하고 땅값과 등기비까지 800만 원이 추가 지출됐다. “설계사무소와 현장 소장님, 저까지 셋이 공동으로 부담합시다.” 제안했더니 그냥 당신이 반을 부담하겠다. 해서 몹시 미안했는데 이렇게 도와주신단다. 평생에 만나기 힘든 사람을 오백만 원의 유혹에 하마터면 놓칠 뻔했었다.
오래전 구전으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조선 시대 어느 지방의 양반이 나의 진정한 벗이 누구인지 한번 알아보고 싶더란다. 돼지고기가 쇠고기보다 귀하던 시절이었다. 돼지 한 마리를 잡아서 포대에 둘둘 말고 밤이 되기를 기다려 믿는 친구를 찾아갔다. 친구가 ‘어깨에 메고 있는 것이 뭔가?’ 물으니 어쩌면 좋은가 내가 사람을 죽였네. 자네 나랑 같이 이 시체 좀 처리해 줄 텐가? 하니 당장 가라며 빗장을 걸기도 하고 다시는 오지 마라. 화를 내기도 하고, 몹시 궁금해하면서 어쩌다 그랬냐며 호기심만 채우려는 사람도 있더란다. 이름도 있고 돈도 있어서 늘 친구가 끊이지 않던 사람이었고, 둘도 없는 벗이라 믿었던 사람들이 그러하니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더란다.
마지막으로 마음속의 순위 밖에 있던 그저 그렇게 생각하던 사람을 찾아갔는데 사정 이야기를 하니 내가 어찌할까? 묻더란다. 이 시체를 처리하는 걸 도와주면 고맙겠다. 하니 묵묵히 앞장서며 ‘자네라면 마땅한 이유가 있었겠지“ 라며 더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더란다. 그 자리에서 돼지를 보여주고 드디어 내 평생의 벗을 찾았다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고 돼지를 잡아 함께 먹고, 마시며 즐겼다 하였다. 지금 세대에는 맞지 않는 이야기지만 내가 가장 어려울 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 편이 되어줄 수 있는 친구를 나도 찾았다. 액수를 떠나 자기의 전 재산을 나에게 주겠다는 그 언니의 고마움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오늘이었다. 나도 이참에 진정한 내 편이 누구인지 사람이나 감별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