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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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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악처(惡妻)다


BY 만석 2021-05-17

시골에 텃밭이 달린 꼴 같지 않은 자그만하고 허름한 주택이 하나 있습니다. 시부모님이 사시던 터지요. 팔려고 해도 팔리지도 않고, 아들과 그 친구가 주말농장으로 놀이삼아  드나들겠다 하여 그리하라 했었지요. 두 해 동안은 김장도 해다 주고 재미있게 일구더니, 아들 친구가 올해는 다른 하는 일이 있어서 못하겠다 하네요. 우리 아들은 원래 시골 생활이 몸에 베이지를  않아서, 자연스럽게 손을 놓게 되었구요.

그런데 시골 사람들은 땅을 놀리면 큰 흉이더군요. 비워진 땅을 둘러 보고 온 영감이, 자기라도 밭에 뭐라도 심어야겠다고 했지요. 저도 전에는 다니면서 제법 땅을 일구고 수확으로 이웃에 선심도 쓰고 했었지만, 시골의 '시'자도 모르던 나로서는 그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더라구요. 영감이 차를 가지고 다닐 때도 힘들었는데, 지금은 차도 없앴으니 힘이 더 들겠지요. 필요할 때면 애들에게 구걸을 해야 하고, 그 구걸도 자기는 못하고 나보고만 옆구리를 찔러요.

아들도 주말이면 쉬기도 하고 제 식구들과 즐기기도 해야 하는데, 늙은이들한테 매인 몸이고 싶겠습니까. 싫은 내색을 아버지한테는 하지 못하고, 나한테만 못마땅해 하겠지요. 이러다가 부자간에 의가 상하겠다 싶어서, 제가 올해는 힘들어서 따라다니지 못한다고 아예 드러눕고 말았지요. 전철을 타고 시외버스를 타고 다녀야 하니, 그게 보통 일입니까요. 맨몸일 리도 없고 보따리를 들어야 할 터이니, 하루 이틀도 아니고 내가 장사(壯士)도 아닌데요.

영감이 부러터진 입으로 혼자 아침이면 낙향을 하고... 설마 마누라가 따라 나서겠지 싶었겠지요. 난 이제 껏은 영감의 일에 딴지를 거는 일은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이건 다릅니다. 어느 녀석의 차를 빌리든지 요새 애들이 얼마나 차를 아끼는데, 흙 범벅인 시골 일에 좋은 기분으로 동참하겠느냐고요. 것도 외제차를 가지고요. 아버지 비위 맞추느라고 시키면 하는 척은 하겠지만, 차도 엉망이고 저희들 생활 패턴도 엉망일 테니 내가 나서 주어야 하겠더라구요.

영감은 그래도 그 고집을 꺾지 못하고 서너 차례 왔다리 갔다리하더니, 고구마와 고추랑 토마토를 심었다고 합니다. 자동차만 있으면 쉬엄쉬엄 놀이 삼아 다니라고 하겠으나, 이젠 팔순도 넘으니 운전도 걱정스러워서 면허증도 반납을 했는데요. 그래도 이른 아침이면 여전히 같이 가자 소리도 없이 혼자 다닙니다. 나는 영감을 보내고 일도 없이 집에서 종일 띵까띵까만 하고 놀겠습니까요? 아무튼 그렇다치고 나, 악처 맞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