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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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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늦은 세배


BY 만석 2021-03-06

아침 이른 시각에, 막내 아들 내외가 점심을 같이 먹자고 전화를 했다. 그러고 보니 다녀간 지가 퍽 오래 된 거 같다. 일본에 채류했다가 귀국을 하고는, 자가격리를 하느라고 꼼짝을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에도 집엘 다녀가지 못했지 않았던가. 맞벌이 부부이니 주말이면 늦잠도 자고 싶고 할 텐데 말이지. 밀린 집안 일도 없지 않을 터인데, 큰 마음을 먹은 거 같으니 내가 약속을 취소해야겠다.

아이들은 올 때면 언제나 보신탕을 주문해서 싣고 온다. 영감도 좋아하고 아들도 좋아하니, 내가 따로 반찬을 준비할 필요는 없다. 영감과 아들은 그렇게 잘 먹겠지만, 며느님은 보신탕을 먹지 않으니 어쩐다. 김치찌게를 하고 된장찌게를 해서 식성대로 먹으라 해야겠다. 눈치가 백단인 막내며느님은, 내가 좋아하는 계장과 명란젖을 사들고 들어선다. 밑반찬에 김을 구워서 잘라 놓으니, 내가 잘 먹기도 하겠지만 상이 푸짐해져서 좋다.

아침을 먹지 않는지라 지금도 빈 속일 터, 배가 고파도 많이 고프겠다. 제가 먹고 싶어서인지 꿀떡을 한 판 챙겨왔기에, 포장을 뜯어 한 알을 입에 넣어주었더니 싫지 않은 듯 예쁘게 웃어 보인다. 영감도 오랜만에 포식을 하고 아들도 배를 두드린다. 꼴적은 멸치김치찌게가 입맛에 맞는지, 며느님은 걱정스럽게도 찌게 국물에  말아서 밥 두 공기를 비운다. 오늘 점심은 이만하면 성공적이다. 사 들고 온 딸기를 씻어놓았기에, 며느님의 입에 넣어주니 꾸뻑 절을 한다.

설거지를 끝낸 며느님이,
"오빠. 오빠!" 숨이 가쁘게 아들을 부른다. 어느 틈엔가 손에는 봉투 두 개를 들고 말씀이야.
안방으로 나를 몰아 앉히고는, 컴 앞에 앉은 영감을 애교스럽게 들여다 본다. 그리고는 두 손을 모아 내 곁으로 불러 앉히는 시늉을 해 보인다.
"세배하려구요."

"보름도 한참 지났으니, 세배는 안 해도 된다. 그만둬라." 영감과 내가 한참을 말렸지만 요지부동이다. 이럴 땐 어른이라 해도 좀 져 주어도 괜찮은데, 영감은 지나치게 고집을 부린다.  애교 철철 며느님이 우는 시늉을 하며, 몸을 베베 꼬우고 섰다. 안 되겠다 싶어서 내가 나서서 잠깐 내려앉으라고 영감을 재촉한다. 내 말을 잘 듣는 영감이 못 이기는 척 내려앉지만, 가히 싫은 표정은 아니다. 영감은 만면에 웃음이 가득해서, 주름 사이사이를 빈 곳 없이 채운다.

내외의 절을 받으며 덕담을 건낸다. 
"그저 건강해라. 언제나 건강들 해야 해."
"그래. 건강하고, 그러고 하는 일 잘 되고."
며느님이 봉투 두 개를 내민다.
"아이구. 너희들도 아직 힘이 들 텐데." 말은 그리하면서도, 손은 어느 새 봉투쪽으로 뻗는다.

"보나스도 나오고요. 성과금도 나오고요. 괜찮아요."
며느님이 진정 걱정을 말라는 투로 말을 해주니 고맙다. 그러나 자기 사업을 하는 대표님은 언제나 어려운 법이라는 걸 내가 모를 리 없지.
히히히. 적조하고 쓸쓸하기까지 했던 명절이, 오늘은 요렇게 화려한 웃음꽃을 피운다.
쩐(?)이 좋긴 좋은 물건인 갑다. 쓸쓸하던 그 명절의 기억은 가고, 오늘은 쪼글거리는 내 얼굴에 요렇게 환한 웃음을 담게 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