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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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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이 그리운 날


BY 만석 2020-11-30

"김장을 언제 하게 되려나?"
아들이 홍시를 사서 들고 올라왔기에 물었다.
"아, 요번 김장은 뽑아서, 서울로 가지고 와서 각자가 나누어서 하기로 했어요."
"작년에 힘이 들었던 모양이구나. "
"뽑아서 바로 하니까 넓어서 좋기는 한데요. 추워서 못하겠어요. 배추는 뽑아서 실어다 준데요"
"절여서 한 번 뒤집어야 한다고 걔네가 새벽에 내려갔었는데, 미안하더라구요."

놀리는 시골 텃밭에 친구와 같이 놀이 삼아 김장거리를 심더니, 제법 두 집 김장이 푸짐하겠다고 작년에 무척이나 신기해 했다. 그러더니 올해에도 배추를 심은 모양이다. 토요일이면 식구들이 주말농장이라 이름하여 오르내리더니, 김장이 문제도 없이 해결될 모양이다.
"남들 다 김장들 하던데. 우리는 다음 주에나 하려나? 양념 준비 해야하는데."
"엄마. 김장 신경 쓰지 마세요. 올해는 제가 해 본다고 하니, 맡겨 두세요." 제 댁을 이르는 말이다.

지난 주일 낮에, 대문 벨이 울었다.
"식사 왔습니다."
" 식사 안 시켰는데요."
"여기예요." 아래층에서 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린 배달음식을 좋아하지 않으니, 미안해 하지 않아도 되는데. 혹시 들킨 것 같은 기분일라 싶어서 괜시리 내가 걱정이었다.

잠시 뒤 영감이 현관문을 들어서며 말했다.
"애들 김장하나봐."
"그럴 리가. 아무 소리도 없었는데?!"
그러고 보니 점심을 배달 시킨 것도 그렇고 고개가 갸웃둥하는데, 손녀 딸아이와 애비가 믹서기를 빌리자며 들어섰다.

"오늘 김장하냐? 소문도 없이?"
"절여서 지금 물 빼고 있어요. 엄마는 신경도 쓰지 마세요. 지금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엄청 열심히 공부하면서 김장하고 있어요. 제가 그랬어요.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했으면 하버드대 갔겠다'고요. ㅎㅎㅎ.'"
"아~니. 무슨 김장을 공부를 해가면서 하나?"
''글쎄 하버드 갈만큼 열심히 공부를 한다니까요 ㅎㅎㅎ."손켜딸아이는 제 어미가 우섭다 했다.

어째야 좋을까. 무슨 공부를 해 가면서 김장을 담궈? 신경을 쓰지 말라고만 하니, 이게 몸 시원찮은 시어미에 대한 배려인가? 아니면 어른이랍시고 잔소리나 할까 싶어서 접근금지를 명하는 것인가. 그도 저도 아니라면 김치 속의 간이라도 보아 달라 해야 옳지 않겠는가. 멀지도 않은 아래층에서 김장을 한다는데, 더군다나 내 입에 들어갈 김장이 아닌가. 혼자 김장을 한다는데.
워낙 조용한 성격이라 알아 먹기가 쉽지 않았다. 미리 알았더라면 밥이라도 해 놓고 부를 것을.
모든 게 많이 부족한 시어미의 처사였다. 미리 알렸으면 좀 좋아.

부족한 시어미를 자책하며 저녁이라도 먹게 하려다가, 혹시 친구라도 와서 돕는 게 아닌가 싶어서 조심스러웠다. 그래도 궁금하기도 하고 저녁밥을 물어서 지으려고 아래층을 내려가 보았더니, 대문도 꽁꽁 현관문도 꽁꽁 닫힌 채 조용했다. 영감 저녁이 늦어서 부지런히 저녁을 지어먹고 나니, 그새 아들이 꼭꼭 채운 김치통들을 들고 올라왔다.
"어머나. 그새 김장 끝났냐?"
"재미있어서 하니까 일도 빠르네요." 아들이 껄껄거리며 들어섰다.

"아이고. 어미가 힘들었겠구나."
"뻗었어요. 뻗었어."
치사를 좀 해주고 싶은데 누었다질 않는가.
두 집 김장에  김치냉장고가 그득하다. 부자가 된 것 같다.
"에미야. 김장하느라고 고생했다. 나도 좀 부르지. 덕분에 나는 호강했구나. 푸~ㄱ 쉬어라." 라고 문자를 넣었다.

결혼 12년 차. 나보다 낫다. 나는 결혼을 하고도 시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어머님이 실어다 주시는 김장만 먹었는데. 이젠 김장도 내 손을 떠났다. 제사를 맡긴 건 3~4년이 되었으니, 이젠 하나 둘씩 내 손을 떠나고 있다. 힘든 일 며느님에게 넘겼으니, 옳다구나 하는 생각보다 서글픈 생각이 든다. 시어머님 생각이 났다. 어머님은 이 큰 살림을 물려주시고 얼마나 섭섭하셨을까. 어머님은 내게 분에 넘치는 정을 하사(?)하시면서도, 생색을 내지 못하셨다.
"에미야. 난 네가 너무 어렵다."하셨다. 모든 걸 다 퍼부어 주시면서도...내가 참 못 된 며느리였나보다. 오늘, 나는 그 어머님이 몹시도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