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의 차이는 백지 한장의 차이라는 말에 실감한다.
선과 악은 상황에 따라서 변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대상에 따라, 환경에따서
한쪽에서 선이 되었다가 악이 되기도하고, 악이 되었다가 선이 되기도 한다.
선과 악은 서로 실체가 없으며 저 스스로의 의지도 없다.
다만 주변의 조건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누가 도둑질을 했다면 도둑질은 "악"이되지만 가족을 배불리 먹여살리는 것에서는 "선"이되며, 악을 잡아들여 심판하고 벌을주는 일을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선"이 되기도 한다.
코로나의 환경속에서 친정아버지 ,시어머니 연이어 돌아가고 상을치루며, 집에 머물러 있으면서, 부모님 삶에 대하여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사회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제법 복이 많았다. 양가 부모님이 장수하셨으며 남편은 사회생활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다르게 번역하면 부모님이 장수하시어 늘 돌봐야하고 지쳐있었으며 경제적으로도 지출이 많았으며 남편의 활발한 사회생활은 자기 좋은대로 살면서 나를 외로움에 쳐박는 것이다.
나는 머리가 그리 나쁘지도 총명하지도 못한 평범한 여자였다,
상황에 따라서 효도하고 집안 환경에따라 눈물빼고 어른들 흐름따라 삶이 여물어져 갔다.
우연히 " 선과 악"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그때는 선과 악을 함부로 구별하면 안된다는 말을 들으며 아 ! 그렇구나.하며 단순한 학문적 깊이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내가 요즘 부모님 떠나보내고 살면서 가슴 속 깊이 "선과 악"의 차이가 별게 아니라는 생각과, 이쪽에서 선이었던 것이 저쪽에서 악이되고, 이쪽에서 악이 되었던 것이 저쪽에서 선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저런 이유로 시댁에서 미움을 받으면서 친정 부모에게 절친녀로 돌아갔다.
시댁에서 악이었던 내가 친정부모님께는 "선"으로 돌아왔다. 돌아가실때까지 부모님들 케어할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올케에게는 "악"이 되기도 했다. 왜냐하면 효성스러운 딸은 부모에게 힘을 실어 주기도하고 그 지나친 힘과 시누이의 친정 간섭은 때에 따라 좋기도 하지만 올케를 불편하게 하기도 한다는 것을 모를리가 없다, 이는 각자가 자기 마음에서 이루어지는 해석의 차이와 결과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다.
친정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면서 나는 시댁 어른들께 다시 돌아갔다.
시아버지를 케어하면서 어떻게해야 시아버지를 편이 모실수 있을까 고민도 한다.
친정부모님 극락길에 오르시면서 애지중지하던 딸을 버리셨기때문에 시댁에 선한 며느리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 나는 총명하지 않고 평범하지만 사는 방법을 안다. 인연의 흐름이 악연이 이었는지지 선연이 었는지 정확히 알수 없지만 모든 인연이 필연이라면 받아들이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아버지 가까이 있으면서 주변사람들로 부터 상처를 받게 된다. 그들의 언행으로 '너 나쁜 변, 너 나쁜년이라매, 하는 소리를 듣지 않고 그 소리를 본다. 이는 내가 친정 부모님에게 베픈 "선"이 시댁에서는 당신을 버려둔"악"으로 둔갑했기 때문이다. 물론 억울하다, 내가 그렇게 시댁을 보살피지 않았다면 내 남편이 나를 그냥 봐줄수 없었으니 시집 형제들이 그를 곱게 볼수 없기때문이다. 그럭 저럭 시댁 형제들과의 관계가 나쁘지 않은것은 내 할일은 꼬박 꼬박 철저하게 했기때문이다 . 다만 시부모님께서 당신들이 원하는 효에 미치지 못했을 뿐이다. 시아버지 케어를하면서 때때로 마음이 상하기도하고, 불편하기도 했다, 간간히 분노가 치밀기도 했다. 그러나"아서라" 마음을 다스려야 하느니라. 눈을 꼭 감는다.
오늘의 악이 때에 따라서 선이 되기도하고 ,오늘의 선이 때에 따라서 악이 되기도 하느니라. 그리고 내 신상을 위하여 입을 꼭 다문다.
여기에서 할말을 하면 집안만 뒤집히고 나또한 함께 마음 고생을 할수밖에 없기때문이다.
불편한 마음을 다스려 조용히 길을 갈뿐이다. 다만 선과 악의 차이는 없다라는 결론을 가슴에 깊게 새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