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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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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BY 귀부인 2020-07-13

이방인




한국에 온지 벌써 3주가 지났다. 너무나 많은 일 들이 있어서 3주가 아니라 마치 3개월이나 

지난 듯하다. 시차 적응이 안되 하루에 두, 세 시간 밖에 잠도 자지 못했다. 그런데 입국한 

다음 날 부터 마늘 캐고, 양파 뽑고 마당 앞 잡초까지 제거 하느라 몸이 녹초가 되었다.


그 사이 시아버님 49제와 산소 방문이며, 어머님 다니시는 병원 쫒아 다니느라 덤으로 

죽어라 빠지지 않던 살이 무려 3Kg씩이나 빠졌다. 육체적인 힘듦이야 어찌어찌 버텼지만, 

갑자기 돌아가신 시아버님으로 인해 상처 받은 형제 자매들 간의 복잡하게 얽힌 감정들까지 

뒤엉켜 맏며느리로 정신줄 잡느라 애를 먹었다.


오늘은 군 도서관에서 오픈하는 인문학 강의를 듣기위해 외출 준비를 하느라 오랜만에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았다. 나이들면 어찌 얼굴 살부터 빠지는지....갑자기 늙어진 듯한,

반쪽이 다 된 얼굴을 측은히 바라 보는데 어랏! 오른쪽 눈 밑이 거뭇하다.


화들짝 놀라 엉덩이 치켜들고 얼굴을 거울 앞에 바싹 대 보니 세상에나 말로만 듣던 기미가

희미 하지만 확실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내 얼굴 피부가 백옥 같이 아주 곱지는 않지만, 

평생에 뾰루지다, 여드름이다 , 말썽 한 번 피우지 않았었다. 그러다 보니 얼굴엔 기본 로션만 발라주고 거의 방치 하다시피 무관심 하였다. 그래도 어디 가서 피부 나쁘다 소리 한 번 듣지 않고 살았는데 기미라니...

어지간히 힘들긴 힘들었나보다.


심각히 생각할 겨를도 없이 버스 시간에 늦을새라 썬 크림과 화운데이션으로 거뭇한 기미를 

적당히 가린 후 양산을 챙겨들고 집 밖을 나섰다. 기약없는 시골 생활에 활력을 얻기위해 

인문학 강의 수강 신청을 했었는데 오늘이 그 수업 첫날이다. 일주일에 한 번 밖에 누릴 수 

없는 귀한 문화 생활이라 상당한 기대를 안고 강의에 참여 했다.


수강생은 겨우 3명 뿐인데다 처음이라는 어색함과 썰렁함이 있었지만 첫 강의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하여 마스크를 끼고 하는 수업은 말하는 강사도, 마스크를 

끼고 듣는 우리들도 상당히 불편 하였다. 평소 우리가 대화를 할때 단순히 목소리로만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목소리 뿐만이 아니라 표정이나, 눈으로 말할 수 있고, 때로는 목소리와 눈빛과 표정이 한데 어우러져 하는 말의 맛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마스크를 껴서 더운 것에 대한 불평보다 새로운 불편을 발견했다고나 할까?

아무튼 코로나가 문제다.


돌아오는 길, 도서관 옆에 있는 마트에 들러 김밥 좋아하시는 어머님 생각에 김밥 재료들을

샀다. 재료들을 사다보니 만들어진 김밥보다 만들어 먹는데 더 큰 돈이 들어 간다.

' 에이, 번거로운데 그냥 만들어진거 살까 ?' 하다가 결국 정성스레 만드는 쪽을 택했다.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 타면서 길 눈 어두운 내가, 아직은 이곳 서천 지리를 익히지 못해 

운전기사 분께 덕암리 문화 마을쪽으로 가느냐고 물어 보았다. 운전기사 분 미처 대답 하기 

전에 조그만 시내 버스에 탄 여남은 명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시선이 나한테 몰리면서 여기 저기서 한마디씩 하신다.

"그려, 타!"

"문화 마을 가지."

"문화 마을 사나 보네."


갑자기 여기 저기서 들려오는 대답에 어리둥절 해진 나는 , 어리버리 지갑에서 돈을꺼내 

쨍그랑 소리나게 버스비를 넣고 버스 실내를 휘이 둘러 보았다. 맨 뒷자석 말고는 자리가 

없다. 20여분 이면 가니 그냥 서서 가야지 하고 서 있는데 할머니 한 분이,

" 아 , 뒤에 자리 있응게 앉저어 !" 하신다.

" 아, 네에에, 금방이니까 괜찮아요오. " 그러자 할아버지 한 분이,

"아, 문화 마을 금방 아녀어, 한참이나 남았구만 얼른 앉어어." 하신다.

버스에 타신 모든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의

'웬만하면 그냥 않지이' , 하는 무언의 눈빛에 등 떠밀려 뒷자리에 슬그머니 앉았다.


문화 마을이 가까와 오자, 할머니 한 분이

" 내릴 준비혀어, 곧 문화 마을이여." 하시는데 차창 밖을 보느라 미처 대답을 못하자, 

또 다시 모든 할머니 할아버지의 시선이 내게 쏠린다. 운전기사마저 백미러로 힐끗 거리며 

내 동태를 살피신다. 무엇이 담겼나 알 수 없는 여러개의 검은 봉지 주섬주섬 챙기시던 내 

옆 자리 할머니께서 다시,

"아, 금방 문화 마을잉게 얼른 내릴 준비혀어." 하신다.


실은 내가 내려야할 곳은 문화 마을이 아니라 문화 마을 다음인 대치장터라는 곳이다. 

꾸물대는 나를 보고 또 다시 버스 안의 모든 할머니 할아버지 시선이 내게 쏠린다.

급기야 운전기사 아저씨 큰소리로 한마디 하신다.

"아, 아가씨, 아까 문화 마을 간다고 했잖유우? 하시니 여기 저기서 맞어 맞어 하신다.


아, 이 무슨 이 무슨 코미디 같은 시츄에이션이람. 나는 나도 모르게 모든 관심을 내게 주고 

내가 혹시나 내릴 곳에 내리지 못할까 관심 가져준 분들 모두가 들으란듯 큰 목소리로,

"다음에 내려요. 고맙습니다!" 하고 외쳤다. 그리고 시댁이 있는 대치장터에 버스가 멈추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얼른 내렸다. 분명 모든이의 시선이 '저 아가씨 누구 집으로 들어가나' 

호기심에 가득한 눈초리로 내 뒷모습을 쳐다볼게 분명해 괜히 뒷목이 후끈 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생각해 보니 평균 나이 70은 족히 넘어 보이는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들 사이에서 나는 전혀 

그분들과 어울리지 않은 복장을 한 낯선 사람 이었으니 모두의 관심이 내게 쏠릴 수 밖에..

잘록한 허리 강조되는 햅번 스타일의 원피스 차림에 , 사실은 미장원에 갈 시간이 없어 

방치된 긴 생머리하며, 굽 높은 하이힐 까지.....

한 마을에 살지는 않지만 평생을 같은 버스를 타고 다니시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시라면 , 

비록 한 마을에 살지 않더라도 누구 집 밥 숟가락 몇개 까지 아는 정도는 아니겠지만 

누가 어디 사는지는 다 아실거란 생각이 든다.

그런 그 분들 에게 난 완전한 이방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무튼 쉰 넘어서 아가씨 소리 듣게 된 건 아무래도 강의들을 때 불편하다 불평했던 마스크 

덕분인것 같다.


언제 끝날지 모를 시골살이에서 새로운 미션이 생겼다.너무 튀는 복장을 하지 말것.

그리고 얼른 서천 지리와 버스 노선을 외워서 버스 탈때는 물어보지 말고 탈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