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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잡는 날


BY 봄비 2020-05-26

말로만 듣던 '돼지 잡는 날'

동네 잔치가 벌어져 돼지를 잡아 구이도 하고 수육도 해서 두런두런 둘러앉아 맛있게 먹는 풍경이, 한번도 그리 해보지 않았는데도 그립다.  누구 아들래미가 서울대를 갔거나 누구 딸래미가 떵떵거리는 집으로 시잡을 갔거나 긴 병환에 있던 이웃이 완치가 됐거나 하는 기쁜 소식이 있어서 잔치를 벌리는 쥔장이 막걸리에 거나하게 취해서 " 나, 오늘 진짜 행복한 날이야!" 하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왠지 보고싶다. 그럼 생전 동네일에 나대지 않던 내가 은근슬쩍 낑겨 앉아서 잘 삶겨진 돼지고기 한 점을 새우젓에 찍어서 우물우물 먹으면서 평소 인사도 잘 안하던 옆에 앉은 아주머니한테, "오늘 이 집 주인어른 정말 기쁘신가봐요 " 하면서 어울리고 싶다.

그래서 오늘 돼지를 잡았다.

돼지잡는 날
지갑이 무거워지는 게 싫어서 한 푼 두 푼 동전이 생길 때마다 돼지 먹이를 줬는데 묵직해졌다. 더 이상 안 들어갈 정도로 꽉꽉 모으고 싶었으나 들고가는 무거움을 생각해서 이쯤해서 가운데 배를 부~욱 뜯었다 쏟아져 나오는 동전들. 엽전 방석, 일명 돈방석에 우르르 꺼냈다.

돼지잡는 날
제법 된다.


돼지잡는 날질긴 봉지에 넣어서 은행으로 갔다.  그만 모으고 배 가르길 얼마나 잘했는지...너무 무겁다. 1차 은행에는 분리기가 없어서 패스~ 2차 은행에는 입금시킬 내 계좌가 없어서 패스~ 마스크 안 인중으로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동전들이 까랑까랑 굴러 들어가서 떡하니 지폐로 교환되어 내 수중에 들어와야 기분이 좋은데 요즘은 자기네 은행 계좌로 입금하는 조건으로 동전을 처리를 주는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내 계좌가 있는 세번째 은행으로 가서 경쾌하게 동전들이 분리되는 소리를 들었다. 까까랑 까랑 크크렁 크렁 꼬꼴꼴캉 드르르 .....금액이 확인되는 계기판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만원, 이만원,.....칠만원,,,( 제발 8만원만 되라) 9만원 10만원 (제발 11만원만 되라)  12만원 당첨!!!


입금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열무 한 단, 얼갈이 한 단 사들고 왔다. 체리도 한 팩 사고, 모닝빵도 샀다. 맨날 똑같은 도시락 먹는 남편, 너무 지겨울 것 같아 내일은 샌드위치를 싸줄 생각이다.  포기김치, 알타리, 깍두기, 파김치... 모든 김치 종류가 약속이나 한 듯 전부 똑 떨어져서 피곤한 주중이지만 대충 담가야 할 것 같아 바리바리 사들고 왔다. 재난지원금 선불카드로 막 긁고 다닌다.  돼지잡고 김치 담그는 날이라 그런지 대낮부터 막걸리 생각이 간절하다.


김치 완성~

돼지잡는 날
돼지잡는 날

돼지잡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