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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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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부인 2020-03-12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사진 한장이 나왔다.

큰 아들 대학 졸업식 날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가 잠시 멈춘 사이에

급하게 찍은 사진이다.

연출하지 않은 자연스런 나와 남편의 모습이, 절묘하게 순간 포착이 되었다.

형의 졸업식에 맞춰 군대에서 잠시 휴가 나온 작은 아들이 찍어 준 사진이다

그런데 이 사진이 남편과 나의 요즘 삶의 모습을 가장 자연스럽게,

그리고 멋지게 잘 드러낸듯 하다.


가까운 지인에게 사진을 보여 주었더니 평소에 사이가 나쁘면

이런 사진이 나오기 쉽지 않다며 정말 보기 좋단다.

가만 생각해보니 남편과 내가 이렇게 사진속의 모습처럼

편안한 웃음을 주고 받는게 일상이 되기까진 참 오랜 세월이 걸린것 같다

.

나는 고요하게 잠잠히 흐르는 물같이 차분한 성격을 지닌 반면,

남편은 활활 타오르는 불과 같은 성격을 지닌 사람이다.

어디 성격 뿐이랴? 식성에서부터,생활양식,행동, 판단력 등 , 하다못해

체질까지 달라도 너무 다른게 많은 우리 부부다.

그러다보니 서로의 모나고 뾰족한 부분들을 부딪혀 가며 둥들둥글

깎아오기까지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함께하는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가면서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조금씩 조금씩 인정하게 되고,서로 다름이 틀림이 아니란걸 깨달아 가게 되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나는 예전보다 성격이 좀 더 밝아지고 남편은 좀 더 차분해졌다.

이렇게 서로 맞추어 가며 살다보니 외모도 점점 닮아 가고 있는것 같다


남편과 나의 얼굴이 닮았다는 소리를 처음 들은건 아마도 5,6년전 인것 같다.

지금은 두바이로 떠난 ,성가대에서 봉사하던 집사님 한 분이 주일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데

"집사님 오늘 예배시간에 남편 집사님이랑 나란히 앉아 있는데 가만히 보니까

두 분이 많이 닮았어요."라고 말하는게 아닌가?


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왜냐하면 나는 한번도 나랑 남편이 닮았다고

생각해보거나 닮았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날 오후 남편을 거울 앞에 불러 세우곤 둘이 닮았는지를 확인해 보았다.

그때는 나도 남편도 서로 한 목소리로

"에이, 무슨 소리야? 하나도 안 닮았는데...."라며 나는 안방으로, 남편은 거실로

향했던 기억이 있다.그런데 지금은 자연스레 우리가 닮아 있음을 서로가 인정하고 있다.

같은 집에 살면서 같은 음식을 먹고,많은 대화들을 통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으며

그렇게 30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하는 동안 우리 부부는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닮아가고 있었나 보다.


올해로 아이들이 떠나고 둘이서만 지낸지 벌써 8년째다.사람들이 내게 말한다.

"어머나, 두 분이서 다시 신혼 생활을 하시네요."라고.

가끔 농담으로 신혼이 맞아요 라며 맞장구를 치기도 하지만 젊었을때의

신혼 생활과 지금의 생활을 어떻게 같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지금은 젊었을때의 열정과는 또 다른 따듯한 정이 있다.


앞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 가면서 삶이 항상 좋기만 해서 다툴 일도 없고,

그래서 매 순간 행복할 일만 남았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

가끔은 다투기도 할것이고 , 또 때로는 의견이 맞지 않아 서로 등을 돌리고

잘때도 있을 것이고,생각이 다름으로 인해 서로를 비난 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순간보단 더 많은 순간이 따뜻한 웃음으로 채워질거라 생각한다.

서로의 소중함을 알고, 지금까지 이룬 일에 대해 서로에게 감사하며,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위로와 기쁨이 되는 삶을 살기를 바래본다.


그리고 앞으로의 삶의 여정을 서로 마주보며 걷는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소중한 동반자로서 따듯한 온기를 품은 손을 잡고서 나란히

앞을 보며 천천히 걸어가고 싶다.


나는 웃고,웃는 내 모습을 웃으며 바라 봐 주는 남편이 있어 

감사한 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