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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콕


BY 그대향기 2020-03-02

아마도 어린시절 빼고 이렇게 장기간 아무 일도 안하기는 처음인 것 같다.
코로나19가 대구경북에서 확진자가 나오기 시작하고부터
아예 가게 문을 닫았다.
물건도 대구에서 해야했고 장꾼들도 대구에서 오는 사람들이 70~80%나 된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소리도 없는 바이러스가 이렇게 무서울 줄이야....

자고나면 확진자수가 얼마나 더 불어났네어쩌네 하는 뉴스가 공포스럽다.
바깥출입을 아예 접었다.
반찬은 냉장고 파 먹기.
덕분에 냉동실이 조금씩 가벼워지고 있다.
마트에 갈 엄두를 내기 힘들다.

외국인들도 많고 우리나라 사람들도 누가 어떨지 몰라 두렵기도 하고.
외출을 최대한 자제하다못해 거의 은둔생활이다.
스스로 선택한 자가격리?
내집이 가장 안전한 은신처인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접촉도 없으니 서로 불편을 줄 이유가 없다.

처음 며칠동안은 정말 내가 돈을 안 벌어도 되나?
먹고살기는 기본인데 기본도 못하다가 큰일나는 것은 아닌지?
밤에 잠을 못 이룰 정도로 초조했고 불안하기만 했다.
땅에 발을 딛고 사는게 아니고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그 차에 왠  비는 또 그렇게나 자주 오던지...

중국이나 국내소식에 사망자수가 급증하고 확진자 수가 폭등을 하는 걸 보고
오히려 마음을 다잡았다.
'손도 못 써 보고 죽기도 하는데 한달쯤 뒤에 태어난 셈 치지 뭐
초근목피의 세월도 있었다는데 집에 양식있겠다 아껴가며 살면 굶어죽기야 하겠어?'
일단은 살아내야 해.

집콕을 선언하고 난 다음부터 오히려 몸은 더 바빠졌다.
그 동안  장을 다닌다고 집공사 뒷정리를 미뤄놨었다.
건축자재들이며 집 살림살이들이 여기저기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는데
며칠동안 부지런을 떨며 집도 치우고 봄맞이 화분들도 제자리를 찾아주느라
남들 모르는 중노동을 한 셈이다.

덕분에 마당이 훤해졌다.
잦은 비를 맞은 화분들에서는 뾰족뾰족 새싹들이 올라오고 있다.
따뜻한 창가에 있는 화분들에서는 벌써 꽃이 피기도 한다.
바이러스는 극성인데 봄은 왔다.
신나고 희망찬 봄이어야하는데 60평생 이런 봄은 처음이다.

아들 직장이 대구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거의 매일 전화를 하면서 직장과 숙소만 오가라고 신신당부를 하는 중이다.
아들직업이 건축기사라 직업상 매일 여러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요즘 건축 중인 오피스텔현장에 일용직 내외국인들 숫자도 많이 줄었다고 한다.
작업진행에 많은 애로사항이 있지만 지혜롭게 잘 이겨나가고 있다고 전해준다.

 1~2주나 한두달만에 잡혀질 것 같지는 않단다.
각 가정마다 개인위생에 조심들 하고 바깥출입을 가급적 자제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최대한 안 만들면서 지내는게 맞는 것 같다.
남편이 그러는데 회사에서 식사할 때도 의자도 사선으로 어긋지게 놔 주고
한사람 건너씩 앉게하고 식사 도중 일절 말을 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두려운 나날들이다.
가게 단골손님들한테서는 전화가 바리바리 걸려온다.
안부전화겸 언제 가게 문 여느냐다.
"이 난리가 완전히 잠잠해질 때 까지는 가게 문 안 열겁니다.
서로서로 조심하는게 살아남는 길입니다. 안전하게 잘 계시다가 나중에 뵈요."

너무너무 심심해서 우울증에 걸리겠다는 아줌마
집에만 틀어박혀있었더니 바이러스가 아니라 갑갑해서 죽겠다는 할머니
살다살다 80평생에 이런 전쟁은 또 처음 겪어본다는 할머니
애들 개학이 많이 연기되면서 울상이 된 큰딸
남편이 돈벌러 안가서 굶어죽겠다는 전라도 아줌마까지...

그래도 어쩌랴
나 혼자만 겪는 일이 아닌걸
우리나라 사람 누구나 다 겪는 고통이고 무서움인데...
똑똑하고 머리 좋은 사람들이 빨리 치료약을 개발해서
전세계 병원에 도착되기만을 간절히 간절히 바라는 마음뿐이다.

집안을 온통 홀딱 뒤집어놨다.
이 때 아니면 언제하겠나 싶어서 안방 침대며 장농까지
뒤집어 엎고 빼 내고 위치를 옮기고 빈 공간에 수납장을 새로 짜 넣고
봄맞이 대청소를 아주 대대적으로 했다.
소품들 하나하나가 다  새롭고 신기해서 지루한 줄도 모르고 기쁘게 하는 중이다.

잃는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고 했다.
돈을 잃은 대신 시간을 얻었다.
덕분에 집안팎을 제대로 청소다운 청소를 했다.
바램이 있다면 봄이 다 가기전에 이 지독한 두려움과 공포가 잡혀지길.
더 이상의 확진자도 없고 지금 확진자들이 치료되어 그리운 가족품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간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