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병원 그만 갈란다"
정형외과를 퇴원하고 외래로 한 달을 채우던 날, 언제나 동행하는 큰 며느님에게 미안하고 염치가 없어서 말했다. 그리고 치료를 받는 것도 아니고 X-ray 찍어서 경과를 보는 것이 고작이었기에 병원을 가기 전에 말했다.
"병원을 그만 가는 건 어머님이 정하시는 게 아니라 의사가 판단하는 거예요."
어린아이가 투정을 부리다가 수그러지 듯 멀쑥해져서 손을 내 주고 따라 나섰다.
한 달을 채우던 날, 드디어 주치의가 묻지도 않는 말에 답을 해주었다.
"이제는 가벼운 운동을 시작하세요."
의사의 반가운 말에 당장 그날로 걷기에 나섰다. 그러니까 한 달 보름만의 나들이었다. 늘 다니던 길인데 생소한 기분이 들었다. 길에서 마주치는 이들이 모두 반갑게 웃는 듯했다.
그러나 오 마의 갓~!
허우적거리며 잠깐의 팔짓을 한 것 같은데, 나는 어느새 보도블럭 위에 볼성도 사납게 넙적 엎어져 있었다.
턱 아래로 뭐가 흐르는 것같아서 손바닥으로 찍어보니 피가 묻어났다. 부끄러운 것도 잊고 돌아 보았다. 무엇에 걸렸을꼬. 무엇이 내 발을 잡아 끌었느냐는 말이지.
솟아오른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걸릴만한 무엇이 아무 것도 없었더라는 말이지.
그러고 보니 턱이 몹시 아프고 무릎이 얼얼했다.
"괜찮으세요?"
둘러보니 서너 사람들이 나를 애워싸고 서서 걱정스럽게 들여다 보고 있었다.
가던 길을 접고 집으로 향했다. 얼굴이 아니, 입이 어떤 몰골인 지 알아볼 수도 없어서 두 손으로 가린 채.
입 안에 피가 고이는 것 같아서 조심스럽게 뱉으니 붉은 피 덩어리가 보인다. 절뚝거리며 집에 도착하고 보니 저런~! 아랫 입술이 치아에 부딪쳤는지 돌팍에 찧었는지 금방 띵띵 부어 올라 있다. 약을 좀 사다 달라했더니 영감은 병원엘 가자 한다. 이젠 병원도 신물이 난다. 시간도 늦어서 응급실로나 가야한다.
아래층의 큰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오**디)가 집에 있느냐 물었더니, 금방 약국엘 다녀왔다.
속이 상해서 울상인 나에게 아들이 말했다.
"다리에 기운이 없어서 그래요."
"첫 외출이니 조심을 했어야지." 딱하다는 듯한 영감의 일성이다.
다음날.
6개월 전에 예약이 되어 있던 정기검진에 동행하겠다며 막내딸이 차를 대동하고 왔다. 퉁퉁 부어오른 입술을 들여다 보는 막내딸아이의 얼굴이 슬프게 이그러지며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엄마. 지팡이 짚으시려우?"
'그건 아닌데. 아직은 아닌데...' 하마트면 나도 눈물을 보일 뻔했다. 상처가 아픈 것보다 마음이 더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