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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나 뭐 입을까?


BY 귀부인 2019-12-09

운동가면 입을수있게 소파위에 반듯하게 개켜놓은 옷을 차려 입고선,
"여보, 나 어떤 모자 쓸까?  이 옷에 모자는 이게  어울릴까?  아니면 이거? "
설거지하는 마누라 등 뒤에서  모자 골라 달라고 목청을 높인다.
이럴때 모른척하고 반응을 하지 않으면 삐질게 분명하니,
"아, 누가 본다고.... 대충 아무거나 쓰면 되지 뭘 골르고 그래요 !"
라고 짜증섞인 목소리로 확 내지르고 싶은걸 꾹 눌러 참고 설거지를 하다말고
물 묻은 손을 앞치마에 쓰윽 닦으면서 부엌에서 나왔다.
 
현관 옆에 있는  전신 거울 앞에 서서 마치 양손에 사탕을 쥐고 어느걸 먼저 먹을까 
고민하는 어린아이 처럼 양 손에 각각 모자 하나씩 쥐고있는 남편에게,
"오늘 입은 티셔츠 색깔이랑은 이  주황색 모자가 잘 어울리겠네요."
하고 골라주니 이번엔 신발장 문을 활짝 열어놓고 뭐 신을까 하고 물어본다.
운동 가기 전 가끔은 내가 골라준 모자나 신발이 아니라 본인이 맘에 드는걸
골르긴 하지만  항상 통과 의례처럼  나한테 물어보는걸 잊지 않는다.
 
결혼하고나서부터  지금껏 아침마다  늘  그 날 그 날 입을 옷과,  속옷이며, 양말 등
모든걸 챙겨주다 보니  요즘들어 내가  남편을 옷도 혼자 제대로 맞춰 입지 못하는
바보 만든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종종 들 때가  있다.
 
내가 이렇게 남편의 모든걸 챙겨주는 습관이 생긴 건  바로 결혼을 하자마자 부터였다.
직장 생활을 하다가 결혼 이후  갑자기 전업주부가  되어 하루 종일  일도 없이
집에 혼자 있으려니 무척이나 따분했다.
반면에 남편은 매일  밤 10시, 11시가 다 되어서야  녹초가 되어 퇴근을 했다.
나도 직장 생활을 해 보았기 때문에 일이 많았던 날은 집에서 손가락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았던 기억이 있었다. 그래서 퇴근을 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편히 쉬고 싶어하던  남편을 너무나 이해 했기에 남편이 집에오면
아무것도 시키지 않게 되었다.
 
아침엔  조금이라도 더 잘 수 있도록 일어나서 밥 먹고 출근 준비하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 주려는 생각에 그날 그날 입을 옷가지들을 머리맡에 챙겨 주었다.
이런 가상한 배려가 몇 십년 세월이 흐르다보니 이젠 모든게 당연한게 되어 버렸다.
 
요즘은 가끔 나도 일을 하느라 남편보다 먼저 출근하고 더 늦게 퇴근하는 일이 종종 있다.
한번은 이른 새벽에 급하게 나오느라 미처 입을 옷을 챙겨두지 못하고 나온적이 있다.
저녁에 일을 마치고 마침 남편 퇴근 시간이랑 엇비슷하게  끝나는 시간이라  픽업을
부탁하게 되었다.
그런데  주차장에서  걸어오는 남편의 모습이 웬지 추레해 보였다.
가까이서 보니 버리는걸  좋아하지 않는 남편이 행여나 찾으면 어쩌나 싶어, 버리지도
못하고 옷장 맨 구석에다 숨겨놓다시피한   낡은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요즘  남편 회사 복장이 자율화가  되어 편한 차림으로 출근한것까진 좋았는데
하고 많은 옷 중에 왜 하필이면  낡은 티셔츠를 입었는지...
가끔 눈 앞에 보이는 물건을 두고서도 그걸 못찾고 어딨냐고
헤메던 사람이  그 낡은 옷은  어찌  찾아 입었는지,
반듯하게  다림질해  옷걸이에  좌악 진열해 놓은 옷은 그냥 두고 굳이 옷장 안 구석에
고이  숨겨진  낡은 티셔츠를  찾아내는  재주가 신기하단 생각이 들었다.
 
왜이리 낡은 옷을 입었느냐는 타박에 남편은 빈티지라 우기며
누가봐도 낡고 추레한 셔츠를 오히려 멋있어 보이지 않냐며
오히려 의기양양해 하며 환하게 웃었다.
 
이젠 좀 서서히 생활 방식을 바꿔서 남편 스스로 알아서 챙겨입게 해야하나
살짝 고민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몇 십년 굳은 습관을 하루 아침에 바꾸긴 어려울것 같다.
무엇보다 구겨진 옷이나,단정치 못한 옷차림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내 성격이
추레한 남편으로  놔두기 힘들것 같기 때문이다.
남편도 총각땐 분명히 혼자서 옷도 잘 입고 했을텐데....
남편 탓하기 전에 잘못 길들인 내 잘못이다.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