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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여행 (1)


BY 이루나 2019-10-06


모든 것이 좋았다. 하늘도 맑고 바람은 적당했다. 나는 오십년 전의 친구를 만나러 태백으로 가는 길이었다. 몇 달에 한번 혹은 일 년에 한번 연락을 해도 서로 늘 그 자리에 있는 친구 마음으로 위로가 되는 친구이다 .어릴 적 우리가 살았던 고장을 추억을 더듬으며 함께 여행하자 약속하고 만나러 가는 길에는 스치는 모든 것들이 아름답고 상쾌했다.
태백에 도착해서 친구를 만나고 낙동강의 삼백리길이 시작된 황지연못을 들러서 귀네미 마을로 향했다. 해발 900m 가 넘는 산 전체가 배추밭인 그곳에는 무려 57ha에 달하는 배추밭이 산 정상의 8부 능선까지 자리해 있고 정상에는 풍력을 이용한 바람개비가 돌고 있는 장관이 펼쳐졌다.8월 중순부터 9월초에 출하를 시작한 배추들은 이미 그 자리를 떠났지만 품어 안고 있던 작물들을 모두 내어준 채 묵묵히 빈자리를 지키며 내년을 기약하는 땅들이 산 정상을 향해 나붓이 엎디어 있었다. 사람들의 수고와 땀이 신들에게 조공으로 바쳐지고 빛과 바람 과 햇살이 길러내는 역사를 더듬어 기억해 본다. 어느 지점에서 차를 세우고 트렁크를 열었다. 친구와 눈이 마주치자 단번에 알아차린 친구가 웃으면서 그래 주워가자 하며 거든다. 아깝고 귀한 것들이 버려졌으니 내가 가져가서 맛있는 김치를 담아서 먹으며 기억해야겠다. 내일 일정이 남아있어서 걱정은 되지만 열심히 담아 모았다. 아줌마 근성으로 트렁크 가득 배추를 싣고 그곳을 내려 왔다.

다시 한참을 돌아 매봉산 바람의 언덕을 오르기 시작하는데 안개가 가득 끼어 있어서 한치 앞도 내다보기가 힘이 들었다. 중간쯤 가다보니 부부인 듯 보이는 일행 4명이 차를 멈추어 놓고 내려있었다. 아마도 안개가 너무 심하니 갈까 말까 망설이는 것 같았다. 그 앞을 지나쳐 오르면서 나도 속으로 잠시 망설였었다. 정상에 도착해서 차를 세우고 내리는데 조금 무서웠다는 친구의 말에 나도 그랬다며 웃는데 아까의 그 일행들이 따라왔다. 아마도 여자 둘이 가는데 우리가 못가냐? 용기를 냈으리라 나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용기를 준 것이다. 그 순간 안개가 걷히면서 산 아래 전체가 보이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저 멀리로 아까 보았던 배추밭까지 다 보였다. 배추밭과 함께 어우러진 풍력 발전단지는 정상에 오른 사람만 느낄 수 있는 희열을 안겨주었다. 매봉산을 내려와서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를 들렀다.

여행 첫날의 일정을 마치고 현지에 살고 있지만 발목 부상으로 함께 하지 못한 친구를 만나러갔다. 아직도 약간 절룩대는 친구는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반겼다. 함께 저녁을 먹기 위해 횟집으로 향했다. 셋이 만난 것이 5년만이니 반가움에 웃고 떠들며 서로의 안부를 묻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식당을 나서면서 서로가 계산을 해야 한다고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자꾸 웃음이 나왔다. 10살 때 함께 놀며 티격태격하던 친구들이 60이 된 지금도 서로 자기가 먼저 한다며 티격태격 이다. 고맙고 감사하다.

어릴 때 친구의 집은 잘 살았었다. 장성여고에서 신작로를 향해 나오는 언저리에 있었던 집은 규모도 컸지만 무엇보다 가게 방을 하고 있는 것이 부러웠었다.  덤으로 친구는 잘생긴 오빠들도 있었다. 옆으로는 감리교회가 있었는데 교회에는 깔끔하게 정돈된 마당에 나무와 꽃이 어울려 있었다. 4학년 때 그곳을 떠나 2년 후에 돌아 왔을 때는 이미 그 친구도 그곳에 없었다. 오랜 후에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난 친구는 그때의 이야기를 꺼렸고 나도 묻지 않았었다. 아버지의 일이 잘못 되어서 그 집을 팔고 이사를 했었고 진학을 포기해야 했던 사연을 이제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된 우리였다.
부모들의 역사가 우리의 역사에 영향을 끼쳤듯이 우리의 역사가 자식들의 인생행로에 많은 영향을 준다. 나 한 사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이어지고 이어지는 역사를 우리 모두는 가지고 있다. 개인이 모이면 사회가 되고 나라가 되듯이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한 개인의 역사가 개인적인 것으로 끝나지 않고 모이고 모여서 국가의 역사가 되고 인류의 역사가 된다. 온전히 내가 책임져야 할 내 개인의 역사가 무겁게 밀려온다. 나에게 남아있는 시간을 가늠해 보면서 나의 삶의 역사를 잘 마무리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여행 첫날의 일정을 마음속으로 정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