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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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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동무


BY 이루나 2019-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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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맑고 화창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중앙 고속도로를 달리는 나는 10살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어린 시절 단짝 친구였던 동무와 소금산의 출렁 다리를 함께 가자 약속한 날이었다. 서울에 거주하는 친구와 춘천에 살고 있는 나는 물리적인 거리도 문제였지만 친구는 지적 장애를 가진 딸이 있었고 나는 식당에 노래방에 자영업을 오래 한 탓에 서로의 만남이 어려웠다.



친구는 27년 전에 4살 아들과 돌이 지난 딸을 등에 업고 커다란 가방을 들고 힘겹게 우리 집을 방문했었다. 한창 말썽을 피울 4살 아들은 그렇다 치고 돌이 갓지난 친구의 딸은 무척이나 산만했다. 6개월짜리 우리 딸에게 갑자기 달려들어 확 밀치면서 아이를 넘어 드리기도 하고 사방을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그땐 아이가 우리 아이에 비해 산만하다고만 생각했었다. 이틀을 자고 가겠다던 친구가 다음날 가겠다고 나서는데 말릴 수가 없었다. 우리 집을 다녀가고 딸아이가 병이 나서 고열에 시달리며 대학병원 응급실을 오간다고 했다. 온갖 진단과 검사를 거쳐 최종적으로 나온 병명은 장애였다. 너무 어릴 때는 발견이 잘 안되기도 하지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 치료해보자는 전문의를 믿고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친구의 가슴은 까맣게 타들어 갔고 재활치료에 특수 치료까지 온갖 방법을 동원하느라 아들은 늘 뒷전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그 아이가 스물을 넘기면서 우리는 다시 만났다. 수많은 시간을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간 친구는 마치 해탈의 경지에 오른 듯한 표정이었다.
20년 만인 2014년에 만났을 때는 서로의 힘들었던 시간을 눈으로 더듬으며 그냥 마주 보고 웃었다. 3년 전인 2016년 두 번째 만났을 때 사람의 힘으로 안되는 게 있더라는 말을 하며 웃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안되니 받아들인 것 이리라. 세 번째 만남인 오늘 소금산 출렁 다리를 구경하자 제안한 것은 나였다.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혹은 육 개월에 한번 통화를 해도 늘 어제 만난 것 같았다. 출렁 다리를 내려오면서 어릴 적 우리 집에서 함께 놀던 이야기를 하다가 야트막한 동산 아래 자리한 그 집이 가보고 싶다 한다. 어릴 땐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집터가 아늑하고 좋았던 것 같다면서 왜? 그 집에서 이사를 갔는지 물었다. 왜긴 술 좋아하시는 아부지가 술값에 팔아먹었지 했더니 막 웃는다. 왼쪽은 읍장님 집이었고 오른쪽은 우리 학교 교장 선생님 집이었는데 양쪽 집에 사는 딸들은 늘 프릴 달린 원피스에 코가 반질반질 윤이 나는 구두를 신고 양말에도 프릴이 달려있었다. 그 집에서는 가끔씩 우아한 풍금 소리가 울려 나오고 청아한 웃음소리도 실려 오는데 우리 집은 늘 왁자지껄 소란했다. 프릴은커녕 색동으로 된 나일론 양말에 운동화를 질질 끌고 짧은 상고머리에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도 안되는 아이들이 마른 버짐이 허옇게 핀 얼굴로 북적였었다. 양쪽의 집처럼 양옥도 아니고 슬레이트 지붕의 허름한 집이었지만 풍광은 우리 집이 제일 좋았다. 친구가 기회가 되면 그 집을 한번 가보 자기에 그러자 약속했다.



점심을 먹고 아직도 공사 중인 강원 감영을 둘러 보고 역사 박물관을 가서 최규하 대통령이 타시던 푸조 앞에서 사진을 찍고 그분의 생가를 둘러보았다. 비록 8개월의 짧은 재직 기간이었지만 자신이 사시던 집까지 국가에 내놓고 가신 그분이야말로 진정 청렴한 지도자이시다. 역대 대통령들이 하나같이 비자금에 휘말려 추징을 당하고 교도소를 가는 슬픈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에서 자신의 것을 모두 내어주고 청빈하게 살다가 신 그분을 마음속에 고이 담으며 그곳을 나왔다.



자리를 이동해서 박경리 문학관을 갔다. 장장 25년 동안의 시간을 들여 완성한 대하소설의 육필원고와 그분의 생전 영상 그리고 선생께서 사시던 집을 둘러 보고 친구를 터미널에 내려주며 아쉬운 작별을 했다.



집으로 돌아와 자리에 누웠는데 10살의 그때처럼 친구가 우리 집 마당 가를 가로질러 들어온다 " 정란아~ 노올 자" 나를 부르며 해맑게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