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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병동


BY 그대향기 2019-04-02

                    






퇴원한지 나흘 째.
보름동안 부산 백병원 암병동에 있었다.
남편의 위암과 대장암소식은
너무나 갑작스럽고 놀라운 일이었다.
건강검진 때 좀 나쁜 소식이 있다고...

큰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더 해 봐야 알겠지만
지금 현재로 위와 대장에서 암조직이 발견된다고.
하늘이 노랬다.
아니 병원 원장실의 형광등 불빛이 노랬다.
이 무슨....

부산 백병원으로 갔다.
우리가 사는 근방에서는 가장 잘한다는 병원이다.
몇년 전 남편이 갑상선암을 수술한 병원이기도 하고.
정밀검사결과는 위와 대장에 암이 맞단다.
일단 수술에 들어가 봐야 더 자세한건 알겠고.

서둘러 수술날짜를 잡는다고했지만
워낙 밀린 환자들이 많아서 일주일 뒤로 잡혔다.
그것고 일찍 잡힌날짜라고 했다.
일단 영업장 세 곳을 다 접었다.
수술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드디어 수술 당일
수술실 밖 의자에 앉아서 장장 일곱시간 사십분
그 긴 시간은 화석이 되어 앉아 있었다.
시간이 길어진다....
무슨 일이 있어난걸까?

원래는 서너시간이라고 하고 들어갔는데???
수도 없는 상상이 오가면서 피가 말랐다.
뭐가 잘못된걸까?
더 많은 곳으로 전이라도 된걸까?
열리지 않는 푸른색 수술실 문이 철옹성같다.

드디어 일곱시간 사십분 후
집도의가 나와서 남편 이름을 부르고
수술부위와 수술 경과를 일러 준다.
"항문을 살리느라 시간이 오래걸렸습니다.
수술경과가 좋고 다행히 전이는 없었습니다."

내 입에서는 저절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가 흘러나왔다.
더 정밀한 결과는 수술 후 주변 조직을 떼어 검사를 넘겼으니
그 때 알수 있다고 했다.
항암치료를 해야할지 말지.
거의 모든 암환자들이 항암치료를 병행해야 한다고 했다.

항암치료의 부작용이 엄청나다고 들었다.
머리카락 빠지는건 당연하고
기력이 다 떨어지고 토하고 심하면 슬슬 기어서 다녀야 할 정도로
극도의 무기력함을 동반한다고.
거의 공포에 가까운 부작용의 사례들.

중환자실에서 만난 남편은 커다란 눈만 껌뻑였다.
수십개의 호스가 입으로 코로 팔뚝으로 주렁주렁
말도 못하고 내 손만 꼬옥 잡았다.
눈에 눈물이 가득하다.
살았다는 안도감.

수고했다고.
살아나와줘서 고맙다는 말만하고 중환자실 첫 면회를 마쳤다.
중환자실 면회는 하루에 딱 두번 20분씩이다.
중환자실 앞 의자에서 이틀밤을 새우잠으로 지냈다.
어딜 가서 잔다는게 말도 안되는 일이라 그 앞에서 지샜다.

중환자실 첫날 밤
수술 중 하혈이 심해서 쇼크가 왔고
급하게 수혈을 하면서 위기를 넘겼단다.
혈압이 떨어지고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고 했다.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을까?

이틀 뒤 일반병실로 옮기고 보름동안
간병인 없이 혼자서 다 감당하면서도 행복했다.
한시간 간격으로 소변과 장루를 비우면서도 행복했다.
일주일 뒤 조직검사 결과
항암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깨끗한 암초기였단다.

그래도 위의 60% 직장은 다 들어내는 대 수술이었다.
혹시 모를 전이가 걱정되어 주변을 넓게 잘라낸거였다.
같은 병실환자들 중에 수술이 불가능한 환자들도 더러있고
개복 후 너무 많이 퍼져서 바로 닫고 올라오는 환자들도 있었다.
길어야 한달 반 정도의 시간이 있다는 말만 들었다....

그나마 우리는 행운이 따른 케이스였단다.
조기발견이어서.
지금은 집에서 안정을 취하면서 죽으로 위를 길들이고 있다.
적은 양을 자주 싱겁게.
차차 양도 늘이고 무르기도 단단하게.

더 겸손히 살라는 뜻일게다.
더 몸 조심하며 살라는 경고일게다.
너무 바쁘게 살았다.
그래야 했으니까.
이젠 조금씩 내려놓고 애들한테도 조금씩 일을 덜어줘야겠다.

살아 숨쉴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음에
사랑하며 같은 하늘 아래서 살 날이 많지 않음에
마주 보며 이야기하고 손잡고 같이 걸을 시간이 많지 않음에
우린 우리의 시간을 좀 더 가질 이유가 있고 필요가 있다.
더 늦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