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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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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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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can do it


BY 이루나 2018-11-10

 " 간다 간다 하기에 / 가라 하고는 / 가나 아니 가나 /
문틈으로 내다보니 / 눈물이 앞을 가리워 / 보이지 않아라 / "

  요양원에 출근한 첫날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특유의 향이 내 콧속을 심하게 파고들었다.
아침 수발이 끝나고 9시에 시작된 기저귀 케어 시간에 이불마다 들추어서
기저귀를 열어놓자 대. 소변이 뒤섞인 지독한 향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뼈만 앙상하게 드러난 다리 사이로 내 몸에서 나온 분비물을 한 뭉치씩
끌어안고 눈에서는 찌적한 눈물과 함께 누런 고름처럼 매달린 눈곱 사이로
실눈을 뜨고 나를 쳐다보는 노인들을 보면서 문득 피천득 님의  시가 생각났다.
 
  예전에는 이 시를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야 하는 심정을 절절히 적어
내려간 애절함을  표현한 시라고 생각했었다. 이곳에 와 보니  흘러간 시간을
붙잡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꿈같이 지나간 젊음날을  비유한 시 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의 삶에서 서로다른 인생의  희,로,애,락이  있었을 것이다.
남보다 더 많은 업적을 세운이도 있었을 것이고 남에게 못할 짓으로
누군가의 가슴을 후벼판 나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오전 10시 30분 밑그림이 있는 A4 용지를  어느 정도인지가 있는 사람들
7명에게 나누어 주고  색연필을 주었다. 색칠공부였는데 94세의 할머니
한 분이 입을 실룩이며 열심히 그리더니 꼭대기에다 삐뚤삐뚤 2018 이란
숫자를 쓰길래 뭔가 하고 봤더니 점을 찍고 10을 쓰더니 " 오늘이 수요일이지"
하더니 24를 적는다. 아하 그러고 보니 2018년 10월 24일을 적은 것이다.
그리고 자기 이름 " 홍 영순" 을 적어 놓곤 당당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할머니 최고예욧~ 하며 웃어 보이자 마침 면회를 와 있던 딸이  나를 쳐다보며
들려주는 말! 우리 엄마가 글씨를 모르는 문맹자였어요.  글씨를 모르니까
너무 답답하더래요. 동네에서 제일 유식한 사람을 찾아가서 아버지를 써 주세요.
적어준 것을 가지고 와서 밤새 읽으면서 쓰고 다음날은 다시 가서 아버지를
다 배웠으니 어머니를 써 주세요.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그렇게 글을 배우고
나서 얘기책이란 걸 사다가 읽어보니 너무나 재미져서 그렇게 한글을
깨우쳤다 한다. 
 
할머니가 다시 보였다.
나는 7월부터 주민센터에서 생활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어려웠다.
함께 배우는 사람들은 집에서 인강을 하신다는 분도 있고 숙제도 열심히
해오는데 나는  시간이 없다 보니 다음 시간에 갈 때까지 열어 보지도 못한다.
게다가 절반은 결석을 한다. 한 번을 빠지고 다음번에 가면 진도가 쭉 나가있다.
포기해야 하나 갈등을 하고 있었는데 그 말을 들으니 정신이 번쩍 났다.
재수 삼수를 해서라도 깨우쳐야지 다짐하는 마음이 들었다.
 
100년 전쯤의 어머니들은 문맹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다.
농경사회이다 보니 농사일과 집안 살림으로 여자들은 이 중일을 해야 했다.
바쁘다, 힘들다는 이유로 아예 생각조차 안한 사람들이 더 많았을 것인데
기어이 배우 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운 할머니가 존경스럽다. 
사람이 다섯 이상 모이면 스승이 한 사람 있고 이상한 사람 하나가 있었다.
지금까지 나의 경험이다. 그런데 치매에 인지력이 없는 이 할머니가 오늘
나의 스승님이다. 오 나의 스승이시여 백수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