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언니와 평생 처음으로 대판 싸웠다.
내 나이 50대중반, 내 언니는 63세.
지금껏 잘 지내왔었다.
내 유년기땐 중딩이었던 언니가 이불속에서 간지럼해주며 놀아주었고, 내가 초딩일땐 이쁜 그림을 그려주며 놀아주었고, 대학생인 언니가 늘 좋았고 이뻤다.
스튜어디스가 된 언니는 예쁜 일제문방구를 사다주었고, 학교에 갖고 가서 자랑하는게 즐거웠다.
외국으로 결혼해서 가는 언니가 그리웠고, 또 결혼이 실패해서 고생하며 사는 언니가 가엾었다.
그렇게 쭈욱..자식도 없이 외국에서 혼자 살고있는 언니가 늘 짠 했었다.
여기까지는 내언니의 긍정적인
모습이지만, 반전의 모습도 있다.
내엄마와 언니는 늘 상극이었다.
둘째로 딸이 태어난게 기뻤던 아버지는 언니를 목마해서 뒷산에 오르곤 했다.
아기때부터 이쁘게 생긴 언니는 늘 이쁘다는 소리를 들었다.
엄마도 신이 나서 언니한테 지극정성 꾸며줬다.
목걸이에 맞춤원피스에...
60년대때임에도 집에 피아노를 들여놓고 피아노 렛슨까지 시켰고, 이화여대에 들여보내곤 가세가 기울어....달러이자의 빚까지 내어 등록금을 냈다.
내언니는 천방지축..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매일 술을 먹곤 싸이렌이 울려야 집에 들어왔고, 엄마가 야단치면 도리어 눈을 뒤집어까고 덤벼들어, 아버지한테 맞고했다.
그 뒤로도 집안 분란의 일등공신은 언니였다.
화장실에서 담배피우다 불을 낼 뻔도 하고, 옷을 너무 난해하게 입고다녀서 내 친구가 하루는 "너네언니 어제 버스에서 봤는데 노 브라더라 ㅋㅋ" 쪽팔린적도 있었다.
내가 중학생땐 일 년간 가출도 했던 언니였다.
일 년이 지난 어느날, 어떤 아줌마의 전화를 받은 엄마는..그 아줌마를 만나고 들어왔다.
"남자네 엄만데, 제발 딸좀 데리고 가라고하더라...어떻게 된게 방구석에 틀어박혀 사람이 들어가도 나가도 내다보지도않고.."
안에서 새는 바가샌다고.. 샌다고..언니는 집에서도 집안일을 안 도왔다.
엄마가 김치담구게 파좀 다듬어달라는 말에..자다가도 벌떡일어나 외출을 해버리고, 설거지가 싫어서 식구들이 밥먹을땐, 나~배 안고파~하고는...엄마가 다 치우고 들어가면 그제서야 부엌에가서 대접에 밥이랑 김치랑 담아갖고 방에 들어와 허겁지겁 먹고는 빈그릇만 싱크대에 넣어놓았다.
중딩인 내게 자신의 빤쓰랑 브라자를 던지며, "야~오백원줄테니 빨아"라고했다.
엄마는 언니가 지긋지긋했다.
입고다니는게 술집년같다고 동네사람보기 창피해죽겠다고도 했다.
둘은 늘 싸웠고 나는 고통스러웠다.
그러고...언니는 외국으로 가버렸다.
엄마는 차라리잘됐다고도 했다.
한국인 유학생이라는 남자와 결혼했지만, 막상 외국에 가보니 사기결혼이었고 1년만에 파국이었다.
처음엔 잘 사는가싶었다.
그당시 형부는 부모님전상서라고 집에 편지를 보낸적이 있는데, 언니가 밥을 안 한다는것이다
안 봐도 비디오였다
"난 배 안고파! 배고프면 해 먹든가~"라고했을거다.
그당시 형부는유학생으로 갔다가 공부를 중단하고 면세점 소속 관광가이드였고, 자기가 번 돈은 교포들한테 밥 사먹이고 술 사먹이고, 언니가 가져간 돈이 바닥이 나자 친정가서 돈을 가져오라고했다고..언니가 말했다
일 년만에 파국을 맞고, 쌈질끝에 맨발로 도망친 언니는 빈털터리가 되었고, 엄마한테 sos전화를 했지만..엄마는 들은척도 안했다.
언니는 두고두고 엄마를 원망하게된다
그곳에서 직장을 잡고 홀로서기를 하게 된 언니는 가끔 한국에 다니러왔고, 내가 결혼하기전까진 친정에 묵었는데, 엄마의 구박으로...앞당겨 떠나기도했다..
떠나는 비행기에서 울었다고도 했다
그 당시엔 엄마를 이해못했다
엄마는 언니를 보기싫다고했다
내가 결혼한 뒤엔 내 집에 묵었다
작은 오피스텔을 대출받아 샀다며 가난했던 언니에게 잘해줬다
엄마가 해야할 몫을 내가 했다
우체국에서 먹거리를 부치기도 하고, 다니러왔다 갈때면..바리바리 싸서 보내기도했다.
나 땜에 타국생활을 견딜수있노라고 했다.
세월이 흘렀다.
엄마는 치매에 걸리고, 아버지는 대장암에 걸렸다
나는...남편의 도박과 주식투자실패로 가난해졌다.
내 인생의 이야기만 따로 소설책이지만 패쓰하고~~
위로 언니포함 네명의 형제들이 있었지만, 제일 가난한 내가 친정에 들어가 십자가를 졌다.
내 작은아들이 9살때 들어와, 그 아이가 19살이 되었고, 40대중반인 나는 50대중반이 되었다.
치매엄마의 똥수발은 2년반만에 끝이 났고, 이제 94세의 아버지만 남았다.
어느형제도 부모를 안 보고싶어했다.
장남은 엄마장례식만 참석했다.
엄마의 제사도 내가 지낸다.
아무도 안 온다..외손주들과 사위랑 지낸다.
언니는 매년 한국에 오지만, 아버지한테 인사하러 오는것을 싫어한다
마지못해 딱 한번 와선 30분만에 일어선다
언니는 친정근처 원룸을 한달 빌려서 있다가 간다.
나는 같이 밥도 먹어주고, 이것저것 볼 일 보는걸 도와주고, 쇼핑도 해주고, 밤마다 가서 말벗을 해준다
아버지와 내 아이들의 치닥거리와 병행하느라 지치지만 최선을 다한다
그렇게 세월이 갔다
그런데
최근..언니가 동거하고있는 외국남자가 두 집살림하는걸 알게 된 언니가...발칵뒤집어진거다
그 남자랑은 12년째 동거지만, 둘의 사이는 좋지않다
집은 그남자의 집이고, 그집에 들어가 사는 언니다.
그남자의 부모는 시골에 사는 모양인데 아주 친절한 사람들이라고했다
가끔 다니러가면 황송할만큼 대접을 받는다고했다
언니는 고양이를 키웠었는데, 한국에 다니러올때마다 그 집에 맡겼었는데 어찌나 애지중지 키워주는지..데리러가면 안 따라오려고까지하더라며 서운해했다
얼마전 동거인의 엄마가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했는데...병문안조차 안 가는 언니였다
인간의 도리로써 가 보라고했미쳤냐며.결혼한 사이도 아닌데 괜히 병문안 갔다가 발목잡혀 간병이라도 하라고하면 어쩔거냐는것이다
언니는 2년전에 퇴직을 해서 집에서 논다
같이사는 남자는 4살이나 어리고 아직도 직장에 다닌다
내가그랬다..저녁에 밥은 차려주냐고..
미쳤냔다..
헐..
그러고는 그남자가 두 집살림을 하고있더라며 펄펄뛰는것이다
내가...그랬다
언니도 잘한게 없다고..
이 말에..격분한 언니가..내게 할말 못할말을 쏟아부었다
같이사는 그 남자한테 쏟아낼 화를 내게 쏟는거였다
다독여주었다
그런데도 이성을 잃은 언니는..돌이킬수없는 말을 해댔다
내게 천사의탈을 쓴 이중인격자라고했다
나도 참다참다 폭발했고..더 잔인하게 밟아줬다
내가 그토록 잔인한 인간인지 정말 몰랐다
지난세월 언니의 발자취가 파노라마같았다
너무 자기밖에 모르는..이기심
내가 엄마의 똥수발할적에...힘들다며 하소연할때..눈썹하나 안 움직이고 "죽에다가 독약 타!!"라고하던 얹니다
내아들들이 그 말을듣고 그뒤로 이모를 안 본다
암튼...너무나 이기적이고 늘 자기만 힘들고, 맞다맞다 이뻐이뻐 오냐오냐 해주길바라는 언니...50년을 그리 해줬다
쇼크는 언니가 더 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