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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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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저녁부터 시작되는 무언의 약속 - 제사


BY 나무동화 2018-02-18

언제나 준비는 전날 밤부터 시작됩니다

동태포는 채반위에 얹어서 소금과 후추를 뿌려서 베란다에 내놔서 물을 빼고

갈비는 양파와 간장과 배를 갈아넣고 마늘도 두둑히 넣은다음 양념에 푹 재워놓습니다

주방에서는 일상과는 다른 분주함이 느껴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조용히 가라앉는 어둠속에 속닥거리는 아들의 수다가 들리고

들릴듯 말듯한 TV소리도 다음날 시작되는 설날의 기대감으로 묻어납니다

 

하룻밤을 자고 일어나니

역시 찬바람 창창한 2월 코가 쨍 합니다

 

삼색나물준비에 바쁘면서도

" 놀다가 4시쯤에 와 전 부치는거 도와줘 " 하고 아들과 신랑에게 부탁하는걸 잊지 않습니다

살짝삶아 아삭거리는 식감을 살려둔 시금치 나물은 참기름과 맛간장을 넣어서 조물조물 묻혀두고 숙주나물도 양념해서

준비해 둡니다. 고사리도 양념해서 양파랑 같이 볶아주고 두부는 살짝 조금간해서 들기름에 구워줍니다

 

혼자준비하고 가족들과 소박하게 보내는 설 이지만

제사준비만큼은 긴장감과 피곤함이 흐릅니다

두부소에 양념된 고기소와 야채를 넣어서 폭폭치댄 동그랑땡, 물기 탈탈 털어낸 갶잎, 건조해진 동태포

동그랗게 썰어논 호박, 깨끗이 씻어논 봄동

 

매번 할 때마다

" 내년에는 조금만 해야지  "  하면서 하다가 커피한잔을 마시고 잠깐 쉬고

전을 부치다가 힘들면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노동의 피로감을 덜어냅니다

전부칠 준비를 다 하고 하니

칼 맞춘듯이 아들이 도와주러 왔습니다

계란옷을 입혀서 후라이팬에 올려주고 약불로 조심조심 부치다가 뒤집에서 채반위에 얌전하게 올려 놓습니다

 

제사란건 결혼을 해서 지내겠다고 무언의 약속을 한건 나지만

그래도 힘든건 힘듭니다

힘들다고 투덜거리면서

하나씩 완성됩니다.

통통하게 부풀어오른 꺂잎전 하나를 집어먹으면서 흐믓해집니다

 

맛있는 냄새, 달그락거리는 소리, 손가락의 움직임, 마음속의 기대감까지 합쳐져

설날의 아침이 기다려집니다

기억하고 있고

기대하고 하고 있고

알고 있는 가족 모두의 설날 아침

몰랑몰랑한  떡국의 식감이 한살 더먹는 연례행사를 부드럽게 넘겨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