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거닐다보니 어느새 집 앞 교차로 신호등 앞이다.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디서
"아가씨"
하고 부르는 소리에
-불과 몇 년 전같으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겠지만-
양심상 그렇게는 못하고 가만히 서 있는데
또다시 "아가씨~" 하는 소리에 궁금해서 고개를 돌렸는데
어떤 할머님께서 나를 향해 부르는 소리였다.
"한의원이 이근처에 어디있어요?"
찾아도 보이질 않다며 두리번 거리며 말씀하신다.
여기는 없고 길건너서 조금 아랫쪽으로 내려가시면 된다고 일러드렸더니
아가씨는 어느 쪽으로 가냐고 또 물으신다.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나의 방향을 가르키니
알았다는 표정으로 내가 알려준 방향으로 가신다.
할머님께 "저 아가씨 아니예요.." 말씀 드리려다 꾹 참고 집을 향해 가는데
어찌나 우습던지 혼자 웃었다.
이젠 아줌마라는 단어에 너무 익숙한 나.
처음에 아줌마라고 불러질 때 왜그리 씁쓸했을까?
나이 먹어감에?
아님 그 아줌마라는 단어가 주는 조금의 이질감?
이젠 이질감이 아닌 동질감을 느끼며 당연한 대한민국의 아줌마로 잘살아가는 나인데
그런 나에게 모처럼 '아가씨'란 단어는 가슴 설레이는 단어다.
내가 아가씨였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그 예쁜 단어를 잊고 살았다.
가족톡에 이 작은사건을 올리니
뜸금없이 남편은 엄지 척 이모티콘을 올린다....
무슨 뜻으로 올린거얌?
우리 딸은
"아가씨 길 좀 물을게요..홍홍"
거리며 엄마를 놀린다.
나이가 들면 눈은 점점 나빠져서 아마 사물이 정확하게 보이질 않을게다.
나의 옷차림이 가벼운 자켓에, 청바지, 운동화
거기에 천가방을 들고 있었으니
오해를 살 만도 하겠다 싶다.
그래서 우리는 늙으면 좀 덜 보고 흐릿하게 보여서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에 집착하지 않고
얼굴의 기미에 좀 여유있게 대처하고
사물을 아름답게 보는게 아닐까 싶다.
난 아직 내 얼굴에 기미가 너무 잘 보여 탈이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