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쳤어 미쳤어!!
쿠쿠밥솥, 중, 소형 크기 냄비 두 개, 마트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양푼 크기의
하얀 소쿠리 하나, 수저,칼....생존 필수 도구 약간....
임시 피난처인 Cala 네 주방집기 목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동추와 냉이를 한 아름 산 건
분명 대형사고였다.
늘 저지르고 해결하는 건 Cola style.
싱크 개수대를 세제와 락스 풀어 빡빡 닦은 다음
물 마개를 막아 풋내 나지 않게 살살살 ~ 애인 뺨 만지듯 월동추 터치터치....
켜켜이 소금 뿌려놓고
가스불에 물 올려 냉이 삶으며 찹쌀 풀을 쑤는 일타쌍피로 해 치웠다.
흐흐...
안되는 게 어딨어.
서류상 전입신고를 하면 종량제 봉투 20장을 준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미처 받지 못한 봉투를 받으려고 주민센터로
랄라 룰루 ~~ 가고 있는데
큼직한 자루 두 개를 실은 수레를 끌고 오는 할머니가 보였다.
짧은 거리를 오는 동안 몇 번이나 쉬었다 걷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허리가 많이 아파보이는데 집까지 들어드리고 갈까? 시계를 보니 4시다.
5시면 남편의 퇴근시간.... 게다가 할머니가 먼저 도와달라고 한 것도 아니니
그냥 지나친다 해도 내가 미안 할 일도 없고....
애써 외. 면. 하고 싶었다.
그러나
젊은 내가 맨몸으로 걷기도 꽤 쌀쌀한 날씨에
무거운 짐 수레를 끌고 가는 할머니가 솔직히 걱정되고 보따리 속내 궁금해
살짝 곁눈질하며 스치려는 순간 ..... 할머니와 눈이 딱!!!!!!! 마추쳤다.
나를 보고 계셨던 것.
푸우..
"하!! 할머니~~!!! 날도 추운데 왜 이렇게 무거운 걸 끌고 다니세요?!! "
누가 뭐랬나.....
하기 싫은 일 들켜서 어쩔 수 없이 돕게 된 딸마냥
나는 괜히 심술섞인 퉁한 말투가 튀어나왔다.
엄마 생각, 시엄니 생각, 아버지 생각때문이었던 듯 하다.
ㄱ 자 허리를 펴신 할머니가 "나물이여! " 하셨다.
" 나물?? 무슨 나물요? 그럼 저기 원마트 앞이나 아파트 정문 같은데 펴놓고 파셔야지
이렇게 추운데 보따리 꽁꽁싸서 끌고 다니면 어떻게 팔아요~!!"
할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하이고! 원마트 앞에 있다가 왔지! 음지라 어찌나 손이 시리고 춥던지 마수도 못하고 왔어!"
"할머니 집이 이 동네...... 여기세요? 어디 사세요?"
"아녀. 저어기 수선집 아주마이가 가끔 내 나물을 잘 팔아줘. 거기 가는 길이여."
휴.
수선집은 조금 전 지나온 길 모퉁이 청색 슬레이트 지붕 집이다.
"무슨 나물 있어요?"
내 관심에 할머니는 급반색하시며 찻길 중앙에 앉아 보따리를 풀기 시작하셨다.
할머니 말대로 오늘 마수를 못 한 듯
나물 위 흙물이 말라있고 속엔 물기가 있다.
큰 보자기 안은 무청 닮은 녹색 채소가 가득하고...(월동추라 하셨다.)
냉이도 있다며 검정 비닐을 여는데
하얀 승용차 한 대가 골목을 꺾어 우리 쪽으로 오는 게 보였다.
"내가 어제 캐서 아침 내내 씻은 겨. 아주 흙 한 톨 없이 깨끗이 씻어서 가져 온거여... "
'마수'하는 기쁨에 미처 못 보시는 할머니...
수레를 휙 들어 길 한켠으로 옮겨 길을 터서 차를 보낸 다음
이러다 사고나면 어쩌나 덜컥 겁났다.
"할머니! 할머니! 그냥 저기... 저기... 수선집으로 가요. 내가 거기서 살게요."
대답도 듣기 전에 야채 포대자루를 휙 짊어지고, 천천히 걷는 할머니를 놔두고 앞장섰다.
수선집 아주머니가
내가 안고 있는 포대자루를 놀란 얼굴로 바라보신다.
"할머니가..... 아니 어떤 나물 파시는 할머니가 여기서 잘 사주신다고 오시길래 ....제가 들고 왔어요."
수선집으로 마실 나온 동네 아주머니들과 나까지 고객이 여섯명으로 늘었다.
누군가 모아 준 듯 꼬깃해 진 까만 비닐봉지를 펴서
냉이 5천원, 월동추 5천원, 대파 3천원, 감자 5천원......
여기 저기서 조금씩 사주는 바람에 쏠쏠하게 팔렸다.
그제사 할머니 얼굴에 환하게 웃음이 번진다.
"우리 딸내미가 엄마 채소 팔다 얼어 죽겠다고 20만원을 보냈어... 그런데 보일러가 고장나서 다 썼어"
(이건 강릉 사투리 오리지널 버전으로 읽어야 함ㅋㅋ)
아무도 묻지 않은 이야기, '자식들이 돈 보낸다'는 걸 강조하신다.
나는 안다.
늙은 부모 고생시키는 자식들 흉볼까 염려되셨을 터.
ㅋㅋ
할머니 얼굴에 오버랩 되는 사람, 우리 엄마다.
자랑 할꺼리 하나 없는 막내 딸을 자랑이하는 게 부끄러워 핀잔하게 만들던 엄마...
친정엄마를 보는 것 처럼 익숙한 할머니의 속내를 모르는 체하곤 큭큭 웃으며
나물 한 보따리를 샀다.
대책없이.....
- Canada에 서식 중인 Cola의 꿈같은 한국에서의 하루 -
참, 저를 아는 분들께 먼저 반가운 인사부터 드리고... 엄마는 돌아가셨습니다. 2년이 지났네요.
PS:월동추 김치는 뒷맛이 약간 쌉쌀하고 무청보다 부드러워서 특별한 맛이네요.
국물 좋아 하시면 감자를 삶아 으깨서 체에 내린 물 넣으면 영양과 함께
맛있게 드실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