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위로 오빠넷 언니하나 있는육남매집의 막내로 태워났다.
큰 오빠와는 이십년이 넘게 차이났고 엄마 나이가 마흔 넷정도에 늦동이로 태워났으니
모른사람들은 귀여움을 많이 받아으려나 하고 생각할지모르지만 없는집막둥이는 전혀 먼애기다.
큰 오빠의 사업때문에 일꾼들 밥해나르라 농사지으라 정신없이 바쁜 엄마는 "차라리 네가 편하려면
죽는게 나을거야"하고 생각하셨단다.
그러다 내가 초등학생이 되어 객지에 있는 오빠들에게 엄마가 부르는데로 대필을 하여 편지를 써주니
엄마는 "네가 내 눈이 되었구나" 하시며 기특해하셨다.
없는집 시골살이가 별볼일이없으니 오빠들이 있는 도시로 나와 오빠와같이 살게 되엇다.
하지만 그생활도 얼마 못가오빠언니 다 흩어져 살게 되었으니 우리 오빠들도 참 책임감은
없는 사람들이었다.
늙으신 부모와 나이어린 여동생 하나 건사하지 못했으니 그러니 내가 공분들 제대로 했겠는가?
지금은 막내오빠 와 언니 둘밖에 안남고 다 돌아가셨지만
남들 교복입고 학교 다닐때 난 봉재공장에서 코피를 흘려가며 일을 해야 했다.
용돈한번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여행한번 맘놓고 다니지도 못하며
엄마에게 난 생활비를 갖다 드려야했다.
하지만 고생만 하시며 걱정을 하시는 엄마의 마음을 결코 상하게 할수는 없었다.
엄마는 살아계실때 우리 큰 아들을 보면은 손을 꼭잡으며 항상하시는 말씀이 있다.
"네 엄마에게 잘 해야 한다. 엄마는 고생를 너무 많이했어" 하시며
애잖은 마음을 표시했다.
가장아닌 가장이 되어 그렇게 몇년을 지내다보니 얼른 이생활을 벗어나고픈 ,낙이없는 지금의
현실을 도피하고픈 마음에 어린나이에 상황판단을 제대로 하지못하고
아는이의 소개로 만난 나의 첫 단추는 잘못 채워지는 우를 범했다.
그렇게 채워진 첫 단추로 인해 나의 인생은 더 많은 굴곡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