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가방을 꾸리는 중이다.
큰행사도 무사히 잘 치루었고 이제 떠나는 일만 남았다.
올해는 가까운 산으로 단풍이나 구경하러 가려고 했었다.
아니면 휴양림으로 들어가서 그야말로 편안한 휴식을 만끽하려고 했었다.
휴가를 생각하다가 오래 전 빚을 갚기로 했다.
25년 전 부산에서 하던 남편의 사업이 망하고
카드로 돌려막기를 하던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그냥 망한게 아니라 빚까지 떠 안은 상태로 사업이 망했기에
어린 세 아이들과 헤쳐 나가기란 여간 어려운게 아니었다.
남편은 날마다 가세가 기운 것을 자기 탓으로 돌렸고 깊은 갈등에 빠져 있었다.
외항어선의 통신국장이었던 형님을 남편이 사업에 합류시켰기에
그 모든 책임을 남편이 져야한다며 자책했고 책임감의 중압감으로 덜컥 암에 걸렸다.
날린 재산이야 그렇다치고라도 남은 빚을 우리가 갚기로 했지만
현실은 막막했고 빠듯한 월급쟁이로는 어렵고 긴 터널이었다.
우리가 힘들어 할 때와 남편이 암 수술을 하고 병원에 있을 때 막내오빠가 가장 큰 힘이 되어주었다.
신용카드를 주면서 안 갚아도 된다며 한 카드사 빚은 갚으라고 했다.
최고한도액을 다 빼 쓴 카드가 만만찮은 돈이었는데 오빠는 그걸로 갚으라고 했다.
급한 불을 끌 수 있다는 생각에 거절하지 못하고 덜렁 받았다.
숨통이 좀 트이는 것 같았다.
그것도 잠시 남편은 암 수술을 했다.
또 막막했는데 오빠는 시댁식구들 보다 먼저 병원으로 달려왔고 목돈을 들고왔다.
우째 이런 일이 있느냐며 안타까워하던 막내오빠였다.
그러구러 세월은 25년이나 흘렀고 우리는 잘 살아냈다.
그리고 이제 어느 정도 안정도 되어가고 아이들도 잘 자라줬다.
막내오빠도 오빠지만 올케한테 늘 빚진 기분을 내려 놓지 못했다.
이번에 휴가일정을 잡으면서 막내오빠한테 부부가 혹시 3박 4일 동안 집을 떠나도 되냐고 물었다.
오빠는 대장암을 수술하고 후유증이 오래 가는 중이다.
배변시간이 일정치가 않아서 긴장하고 살아가는 형편이다.
직장생활은 어렵고 올케와 아이들의 힘으로 사는 중이다.
몇시간씩 집을 떠나면 배변때문에 곤란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도 일단 물어봤더나 거절은 안 하고 올케가 일하는 직장에 물어본단다.
영 불안하면 요즘은 입는 기저귀도 있으니 잘 생각해 보라고 했더니 긍정적인 대답이 왔다.
근처에 사는 큰딸하고 두 외손녀를 데리고 떠나는 일본 온천여행을 예약했다.
밤배로 갔다가 밤배로 돌아오는 저렴한 여행상품이 있었다.
6명이다보니 그것도 적지 않은 경비다.
그래도 이만큼이라도 할 수 있으니 행복하다.
오빠는 해외여행이 처음이다.
더 좋은데 큰 여행을 선물하고 싶었지만 6명은 내 능력이 모자란다.
배에서 가는 날 오는 날 자고 일본에서는 하룻밤 자는 일정이다.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여행이라 배에서 숙소도 업그레이드했다.
나중에 더 여유가 생기면 멋진 여행을 가기로 하고 이번은 가까운 일본이다.
인천공항까지 가지 않아도 되서 예약을 했다.
부산여객선터미널은 가까우니 좋은데 인천은 너무 멀다.
어른들만 떠나는 여행이면 인천공항까지 가도 좋지만 아이들은 무리다.
막내오빠의 첫 해외여행을 비행기로 떠나지 못해서 조금 안타깝다.
행사 끝나고 조금씩 나오는 수고비를 악착같이 모아서 떠나는 여행이다.
어버이날이나 외부손님들이 오시면 약간의 위로금이 생기기도 한다.
거기다가 휴가비 120만원까지 월급에는 축을 안 낸다는게 내 철칙이다.
이 돈은 철저히 휴가를 위한 돈으로만 쓰기로 했다.
그런 일이라도 있어야 빡빡한 직장생활이 즐겁다.
나 혼자 예약을 하고 남편한테 통보했더니 기발한 생각이었다며 칭찬을 했다.
도움 받을 때는 그렇지만 친정 일이라 조심스러웠지만
25년 된 빚을 갚는다고 했더니 잘했단다.
큰딸도 아이들 키우느라 마음데로 멀리 가지도 못하다가 신나한다.
남편은 벼르고 벼르던 전국 일주를 바이크로 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