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씨, 철핀 있어?”
이웃 할머니가 오셔서 철핀을 찾으신다.
“밭에 두고 와서 없는데요? 왜요, 할머니?”
나는 얼른 밖으로 나가며 묻는다.
“땅콩을 죄 쪼아 먹었어. 옆에 콩이 어우러져 있어서 구별하기 힘들 텐데 용케 알고 와서 죄 쪼아먹었다니께. 그래서 차광막으로 씌웠는데 핀이 모자라서.”
속상함이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아니 내가 속이 상한다.
“할머니 그럼 땅콩이 햇볕을 못 봐서 죽어요. 내 거 망 갔다가 씌워요.”
난 할머니가 땅콩에 쏟아 부은 정성을 알기에 남은 거라도 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한다.
“아녀 차광막 씌워버릴 거야.”
할머니의 마음은 요지부동이다.
“그럼 땅콩이 햇볕을 못 봐서 죽어요.”
난 할머니를 졸졸 따라가며 같은 말을 또 한다.
“저도 못 먹고 나도 못 먹고.”
“그놈의 까치들이 어떻게 알았대?”
“까치가 아녀. 꿩이여. 꿩이 꿩꿩 하며 낮게 날며 내려앉으려다 내가 있으니께 다시 날아가더라고. 이리 와서 봐봐!”
할머니하고 땅콩 심어놓은 곳으로 간다. 막 여물어가는 땅콩 껍질이 옆에 수북하다. 땅콩 밭은 검정 차광막이 빈틈없이 덮여 있다. 난 속이 쓰리다. 땅콩 드실 생각에 육묘장에서 일하고 온 후 피곤함을 물려가며 물을 줘 키운 걸 알기에 무심할 수가 없다.
“그래도 저렇게 해 놓으면 나머지 땅콩도 먹을 수 없을 텐데.”
난 속상한 마음을 내비친다. 하지만 할머니 마음도 상할 대로 상해 있다.
“저도 못 먹고 나도 못 먹고.”
할머니도 생각을 바꾸시지 않는다. 난 오죽하면 그런 생각을 하시게 됐을까, 하면서도 안타까워 다시 말한다.
“저도 못 먹고 나도 못 먹고. 오늘은 집에 있으니께 내 지켜볼 거여.”
마치 꿩하고 한 판 붙을 것처럼 말씀하신다.
“저도 눈깔 있으니까 보겄지.”
차광막을 씌워놓고 할머닌 꿩들의 아쉬워하는 마음을 고소해하기라도 하시는 것처럼 말씀하신다. 그런 할머니의 마음이 고스란히 내 안으로 들어온다.
농사를 지어보지 않은 사람은 뭐 그런 걸 가지고 할 수도 있겠지만 수확을 꿈꾸며 정성을 들여 본 사람은 남의 일로 여길 수가 없다. 비둘기를 쫓는 내 입에서 아작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것과 다를 게 뭐가 있을까? 난 할머니의 쓰린 마음을 안고 집으로 온다. 그리고 차를 몰고 밭으로 간다. 간 김에 내 밭의 땅콩은 탈이 없는지 둘러보고 풀도 눈에 띄는 것은 뽑고 한다. 그리고 밭 한쪽에 갈무리 해둔 철핀도 가져온다.
난 차에서 내리자마자 철핀을 들고 할머니 집으로 간다. 안타까움에 다시 한 번 내 집 망을 가져다 덮으라고 해보지만 할머니도 뜻을 굽히지 않는다. 난 할머니께 철핀을 건네준다.
농사를 짓고 살다보니 본의 아니게 적들이 많아진다. 내 밭을 짓이겨 대는 개들도 고양이도, 내 작물을 아작 내는 비둘기도 벌레도. 참깨가 꽃을 피울 때부터는 이틀에 한 번씩 가서 벌레를 잡아주고 오곤 했다.
양면성이 없는 것은 없다 했던가? 내 몸을 자연으로 채우려 했더니 대자연의 창조물들이 날 가만두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