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물러가고 싶지 않은지 안깐힘을 쓴다.
그래도 처서가 지났으니 곧 가을이 올테지.
구십 넘은 노인을 혼자 두고 삼주동안 미국 아들에게 간 사촌동생 부부는
나를 너무 믿는 것이 아닐까.
주말 마다 일박 이일을 하고 돌아오지만 평일에 아줌마가 퇴근하면 혼자 주무셔야
하니 마음이 편치않다.
사촌동생 부부도 노인에게서 해방되고 싶었을게다.
평생을 노인 모신다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니까.
사이 나쁜 엄마와 남편 사이에서 신경 쓸 일도 많겠지.
그럭저럭 동생 부부가 돌아올 날이 코앞이다.
“내가 마지막 길에 너를 친구로 주신 것은 하느님의 섭리인것 같아.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너 하나야. 우리 딸은 학장이 된 이후로 너무 바빠서
나랑 이야기 할 시간도 없단다.“
이렇게 말씀 하시는 고모는 며칠전 밤 베란다에서 넘어져서 엉덩이와 넙적다리가 온통 까만 멍이다.
“ 어디 좀 보자. 엎드려봐요. 큰일 날뻔 했네.”
노인이 밤에 혼자 있다는 것은 이래서 위험한 일이다.
“우리 딸한텐 비밀이야.”
신신당부를 하신다.
부모의 마음이란 자식 마음 다칠까봐 늘 전전긍긍이다.
예전에 내가 모시던 시외증조 할머니가 꿈에 보였다.
기일이 며칠 남지 않은 까닭일까.
시어머니의 친정 어머니인데 돌아가시기 전에 내게 금가락지를 주시면서 부탁을 하셨다.
“난 아들이 없으니 제사를 해줄 사람이 없잖니. 이 금반지를 네게 줄테니까 내 기일마다 연미사를 해주렴.
내가 천당 가면 우리 손주 며느리 잘 살라고 늘 기도해줄게.”
할머니는 내게서 교리를 배우신후 영세를 받으시고 주일마다 성당을 열심히 다니셨다.
할머니와의 약속을 이십년이상 지켰지만 이혼을 하는 바람에 할머니의 존재도 내 머리에서
지워졌다.
꿈에 본 할머니는 몹시 화가 난 얼굴이었다.
팔월 삼십일 더위가 물러갈 즈음에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금반지는 어디로 갔을까.
금반지를 받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미안하지 않을텐데...
할머니의 마지막 패물을 내게 주셨는데 이혼은 그런 물건의 의미마저 지웠다.
올해는 연미사를 올려드려야겠다.
나도 칠십이 코앞이니 노인행렬에서 빠질 수 없다.
경노석도 이제 자연스러워졌고 할머니나 어르신이라는 호칭이 기분 나쁘지가 않다.
윤지 윤하 또래의 아이를 만나면 반가워 반색을 하게 된다.
아이들이 보고 싶은 탓일게다.
어쩌겠는가.
아이들의 소속은 엄마인 것을.
아이에게 엄마는 우주라는 말이 떠오른다.
이제 마음을 비우기로 한다.
잘 길러주겠지. 엄마니까.
늙는다는건 좋은거다.
포기가 빨리 되고 어떤 일에도 기대하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기대 하지 않는다고 해서 희망을 버린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 잘 살아주기를 희망하고 내 아이들의 마음이 평화롭기를 희망한다.
나는 죽을때까지 임대아파트에 살겠지만 아이들은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인간의 소원은 하느님이 보시기에 어떨까.
인간답다고 하시겠지.
이제 곧 가을이다.
지친 여름이었지만 풍성한 가을 맞이를 해야겠다.
정에 인색해지지 말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내 주위에 모든 사람을 보듬고
사랑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