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힘들때 마다 내년에는 지금보다 분명 더 행복하고 더 좋아질 거라고
모든것이 다 잘 될거라고 마치 주문을 걸듯 그렇게 마음을 다져먹고 거침없이
앞만보며 달리다 보니 어느날 숨도차고 힘이 빠지네 ..... 곰곰 돌아보니
어느덧 오십중반 아무리 애를써도 숨소리가 다르고 목소리도 다르고 이제는
숨길수 없는 노쇠의 흔적들을 나이답게 기품있고 나이답게 우아하게 다듬어야지
스스로 주문을 걸던 어느날 3월의 따스한 향기가 넘실대던 우리딸 생일날
엄마를 보러 오겠다는 막내 여동생을 만나러 갔다 .
점심을 함께먹고 한잠 자고난 동생이 부시시 일어나 화장실로 향하는가
했더니 그대로 힘없이 쓰러졌다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믿기지도 않았고
현실감이 없어서 몇초정도 그냥 쳐다보고 있는데 엄마의 " 왜그래" 란 외마디
비명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
그길로 119에 신고를 하고 산골 외딴집까지 오는데 20여분이 걸렸다.
그사이여동생은 엄마의 찬물 세례를 받고 정신이 들었다.
10여년 전쯤에 어지럼증으로 메니에르 검사를 했지만 분명하게 밝혀낸건 없었다 .
최근엔 섬유근통으로 약을 복용하고 있었고 워낙 허약 체질이고 예민한 체질이긴
했으나 이렇게 정신을 잃을 줄 이야 ? 올봄 20여년 다니던 대학을 스스로 퇴직했다 .
체력도 떨어지고 가르치는게 너무 힘들었다 할때만 해도 그려려니 했었는데
동생의 체력이 이정도인줄 몰랐던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
119 대원들이 도착하고 정신이 든 동생이 서울서 다니던 병원이 있다고 그 병원으로
가기를 희망하자 지역내로만 이송을 원칙으로 한단다 .
내가 동생의 차를 운전해서 서울 병원까지 가는동안 피가 마른다는 느낌을 알것 같았다 .
일주일을 입원해서 온갖 검사를 다 했지만 나오는게 없었다 .
심장 박동기를 차고 24시간 체크 에서도 시원하게 나오는게 없어서 답답했다 .
동생은 퇴원을 했고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마음이 편치않았다 .
동생은 웃으면서 " 언니 자동차도 어쩌다 한번 엔진이 안걸릴때가 있잖아 ?
그랬다가 아무일도 없었던듯 멀쩡하잖아 그렇게 생각할래 " "그래 그래라"
지금은 그때완 다르게 한번씩 싸아하게 돌을때가 있단다 .그럴땐 아무것도
못하고 그냥 누워서 멈춰주길 기다리면 얼마간 있다가 괜찮아 진다는 말에
그저 안타깝고 화가난다 . 이 좋은 의료기술 시대에 못 밝혀내는 것이 있다니 ??
얼마전 다시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그렇게 핑 돌을때 그 순간이 아니면 그건 알수가
없다고 하더란다 . 얼마전 동생 집에 갔다가 하룻밤을 옆에서 함께 자보니 밤새
깊은 잠을 못잔다 . 섬유근통 으로 통증까지 있어 힘들어 하는 동생을 지켜 보다가
창이 희부연 해질때 쯤 깜빡 잠이 들었다 .
원인을 못 찾는다면 모든것이 혹시 마음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
너무 반듯하고 너무 정확하고 너무 철저하고 너무 완벽하고 싶어하는 동생의 마음 때문에
아픈게 아닐까 ?? 마음을 다치고 상처받고 애를 써야 하는 양은 내가 더 많은데
나는 내가 애써서 바꾸어 질수 없는 것 이라면 밀쳐두고 흘려 보낸다 .
자로 잰듯 그렇게 산다는건 내가 나한테 주는 형벌이자 스트레스의 근원 이니까
동생이 속해있던 세계가 힘든 세계 였다는 것은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다 .
머리좋은 석학들이 치열하게 계산 하면서 살아가는 교수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20여년을 얼마나 절치부심 살아 왔을지는 짐작이 간다 . 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글로벌 교수들 사이에서 유학도 안 갔다온 지방대 출신인 교수가 살아남기 위해서
그들의 두배쯤 노력하고 그들의 두배쯤 머리를 썼을 것이다 .
어느날 " 언니 나는 동료들 사이에서 왕따야 " 하고 웃는다 . " 왜? " 했더니 " 다 해외 유학파고
나만 국내파라 대 놓고 누구 줄이냐네 ㅎ" 웃길레" 미친것들 그래서 너땜에 지네들
퀄리티가 떨어진데? 파 보면 그 학력이 다 맞을거라 누가 장담해 우라질" 했었다 .
언젠가 동생하고 맥주를 마시고 노래방을 갔는데 심수봉의 뽕짝을 좋아하는 여동생이
웃으면서 " 아휴 우리 교수들하고 회식가면 되게 재미없어 밥도 경건하게 먹고 노래방
가면 가곡만 불러 " 하며 웃길레 "가식적인 것들 동료 교수들 아니고 다른 사람들하고
가면 가면을 벗고 넥타이를 머리띤줄 알것들이 " 했더니 맞아 맞아 하며 웃었었다 .
마음의 병이 원인이라면 퇴직은 아주 잘한 일이다 .
지금부터는 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결정도 하고 더러는 얌체짓도 하면서 뽕짝도 흥얼거리고
아랫배에 힘주어 방귀도 뀌면서 그냥 건강한 아줌마로 살았으면 좋겠다 .
내가 없는 세상에서 내가 교과서에 이름을 남긴들 무슨 소용일 것이며 내가 지구를 구하고
죽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다 부질없고 의미없는것을 내가 잘 살아 내는것이 나를
위하고 자식을 위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오늘 하루도 나는 잘 살아내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