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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의 '너의 의미'


BY 편지 2015-07-14


여름엔 하얀 꽃이 유행이다.

찻길 가에도 밭 가장자리에도 산길 초입에도 하얀 꽃이 화환처럼 진열되어 있는 여름.

신부처럼 부끄럽고 수줍은 듯 피어 있는 이 꽃이 지천이면 진정 여름이 온 것이다.

 

기온상승으로 인해 지치고 나른해지는 계절이지만

느티나무 그늘에 앉아 지나가는 뭇사람들을 보고,

들새 산새 지저귀는 소리에 귀를 열고, 가까이 도랑물이 흐르면 더 좋으리라 여름은.

도랑물가엔 물 봉선화 꽃 설렘으로 피고, 보랏빛 꿀풀은 벌들에게 잔치를 차려주는

여름은 나무 그늘로 오고, 여름은 야생화 꽃 줄지어 피어나는 계절이기도 하다.

나는 그래서 거칠고 매서운 겨울사내보다는

뜨겁고 후끈한 햇볕을 피해 느티나무 그늘에 앉아있는 여름이란 계집이 있어 이 계절이 좋다.

 

여름이 한창일 때 우리 가족은 하루 동안이라도 냇가로 철렵을 간다.

냇가에 그늘 막을 치고 냇가가장자리에 떠내려 온 나무를 아이들과 줍고,

돌화덕을 만들어 납작한 돌을 올려 나무를 때서 납작한 돌이 익으면 삼겹살을 올려

노릇노릇하게 삼겹살을 구워먹으면 그 맛이 기똥차다.

자식도 먹던지 말던지 모를 정도로 기가 막히게 맛있다.

배가 터질 듯이 불러오면 돗자리에 앉거나 누워 있으면

냇물소리, 풀벌레 소리, 풀을 쓰다듬는 바람소리에 세상 것 다 내려놓게 된다.

 

탈 듯 내리꽂는 태양빛에 대지의 온갓것들이 쓰러질듯하다가도

소나기 한차례 내리면

비와 함께 훅 풍기는 흙 냄새와 풀이 숨쉬는 숨 냄새와 섞인 향기는 커피 향만큼이나 중독된다.

이런 날 창가에 얼굴을 바짝 갖다 대고 하염없이 앉자 있어도 심심하지 않겠다.

 

나무가 보이는 야외카페에서 설탕 두 스푼 넣은 카페라떼 한 잔.

익을 만큼 익은 수박을 냉장고에서 꺼내 막 썰어 먹는 그 단물 맛.

춘천 외삼촌이 보내준 윤기 잘잘 흐르는 찰 옥수수.

엄마의 텃밭에서 딴 풋고추와 엄마 표 된장을 찍어 물 말아 먹는 쌀밥.

아들 군대 갈 때 먹었던 의정부 평양물냉면.

이젠 민간인이 되어 다시 찾아가 먹은 물냉면의 편안함.

오후 늦게 멀건이랑 풀꽃이 핀 거리를 산책할 때도 좋다, 여름이.

 

커질 만큼 커진 나뭇잎이 초록 물이 들을 만큼 들어 온 시야가 초록이라 좋다.

채소들이 풍성해지고, 상큼하고 물 많은 과일을 종류별로 파는 과일가게들.

간식이 과일은 난 먹을게 많아 과일 살이 오른다. 여름에는.

학생들에겐 휴식 기간이 되고, 곤충에게는 먹을 게 풍성해진다.

오늘도 사무실에 노란 줄무늬 쫄 티를 입은 꽃등에 한 마리가 들어오고,

여긴 위험하니 밖으로 나가라고 창문을 활짝 열어두었더니

어느 순간 말귀를 알아 듣고 자기 집으로 잽싸게 돌아갔다.

날개 투명한 쌀알만한 곤충 한 마리가 모니터에 앉아 쉬길래 가만히 놔 뒀더니

걔도 집으로 갔나 보다.

 

어제, 길길이 성을 내던 태풍이 지 풀에 수그러져 북쪽으로 올라갔다.

태풍 찬홈이는 종일 나뭇가지를 흔들고, 나뭇잎을 후려치고,

화단에 피어있던 베고니아 꽃잎 따귀를 때려 빨간 꽃잎이 더 빨개져버렸지만

태풍이 있어야 바닷물이 뒤집어져 순환이 되고,

비와 바람이 있어야 식물이 자라고, 바이러스도 번식을 멈춘다고 들었다.

이런 말도 들었다.

태풍이 너무 거세지면 피해가 많아지니까 순해지라고 여자 이름을 붙인다고.

그런데 이번 태풍 이름은 남자 이름 같다. “찬홈그치? 남자 이름 같지?

 

시월에 결혼 날짜를 받은 딸은 청첩장을 그린다고 거실에 앉아 있고,

버거킹 알바를 마친 아들은 누나 결혼식 때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한다고 기타 연습을 한다.

너의 한마디 말도 그 웃음도 나에겐 커다란 의미~~”

산울림의 너의 의미를 열심히 부르고 있다.

그럼 나도 딸도 흥얼흥얼 따라 부르는 한여름 밤이다.

너의 그 작은 눈빛도 쓸쓸한 뒷모습도 나에겐 힘겨운 약속~~”

딸아이의 결혼을 앞둔 의미 있는 올 여름이 잘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