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삼 남매를 낳았다. 딸 하나 아들 둘.
나는 큰딸이고 밑으로 남동생만 둘이다.
엄마는 배우 남정임을 닮았고, 아버진 한진희와 신성일을 조합해 놓은듯한 외모와 큰 키를
갖고 있었다고 이모들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내 동생들도 키가 크고 인물이 좋다.
동생들과 같이 있으면 주변사람들이 인물 좋은 집안이라고 한번씩 더 쳐다봤다.
공부들도 잘했다. 특히 큰 동생은 명문대 회계학과를 나왔다.
인물 좋고 공부 잘하고 다들 부러워했지만 복을 안준 것이 두 가지 있다.
단명을 한 아버지와 가난이었다. 너무 가난해서 어린 시절에 삼남매가 같이 산적이 없었다.
외갓집으로 작은집으로 하나씩 둘씩 흩어져 살았다가 고등학교 때 다 같이 모여 살게 되었다.
방한 칸 월셋방에서 가시같이 마른 엄마 하나를 옆에 끼고 밥이나 겨우 먹을 수 있는 형편이었다.
주변사람들이 아버지 없다고 무시하고,
친척들도 가난하다고 무시를 했지만 우리 삼 남매는 삐뚤어지지 않고 잘 켜주었다.
여름날 해바라기처럼 키가 쑥 길다랗고, 두 눈이 커다란 삼 남매였다.
큰 동생은 일급공무원으로 엄마에게 정원이 딸린 집을 사줬고,
막내남동생은 큰 종합병원 부원장으로 있으며
큰 병은 없는 엄마지만 엄마의 몸을 책임지는 역할을 단단히 하고 있다.
무릎인대수술과 목 디스크 간단수술을 하면서 특급병실에 입원을 시켜줘서 어릴 적에 가난하고,
아비 없다고 무시했던 고향 지인들이나 친척들이 두 아들 잘 뒀다고 부러워들 했다.
근데 딸은 별로 자랑할 것은 없다고 나만 보면 한숨을 쉰다.
남의 딸은 잘 살아서 엄마랑 같이 쇼핑도 가고 산에도 가고 놀아 준다는 데
딸 하나 있는 게 못살고, 바빠서 같이 놀지 못해 속상하다고 대 놓고 말씀을 하신다.
뭐 맞는 말이다. 벌어 먹고 사느라 바쁘기도 하고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게 사실이니까.
키 빼기만 여름 해바라기처럼 크고, 다리만 길고,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엄마를 쳐다볼 새도 없이 해만 쫓아 움직이느라 쉴새 가 없고,
감성만 얼굴 가득 해바라기 씨처럼 촘촘하게 붙어서는
잡글이나 쓰네 들꽃이나 좋네, 하고 있으니 뭐 할말이 없다.
그래도 나는 한 달에 한번은 엄마를 보러 죽전으로 간다.
그곳엔 큰 동생도 살고, 막냇동생도 같은 아파트단지에서 살아서
내가 움직이면 삼남매가 다 모이게 된다. 그럼 우린 외식을 하고, 후식을 먹으러 간다.
딸기 와플을 먹으러 가고, 팥빙수 집에도 간다.
저번 주엔 산자락 밑에 있는 커피숍으로 가서는 야외탁자에 앉아 수다를 떨었다.
“집에 먹을 게 많은데, 비싼 돈 주고 이런걸 사 먹고. 커피 몸에 나쁜데 커피를 먹고.”
엄마의 잔소리를 음악 삼아 삼 남매와 올케와 떠들다 보면 우리 아들이 삼촌과 얘기를 나눈다.
과학을 좋아하는 아들과 큰 동생은 벌써 우주정거장을 향해 도약을 하고.
올케와 나와 엄마는 음식얘기 꽃 이야기 텃밭이야기 나중엔 옆집 할머니 흉을 본다.
“305호 그 여자는 못됐어. 손주 자랑만 하고, 키도 작고 못생겼으니 손주도 못생겼겠지.
나도 손주 자랑했지. 별 그대에 나온 박해진 닮았고, 공부를 일등만 해서 장학금 받는다고.”
“하하하. 근데 일등 아니고 이등 했어.”
“어머니 접시꽃 씨 받아 놨는데 내년에 심을까요?” 다정한 올케가 다정하게 한마디 한다.
“난 키 빼기 큰 건 싫어.”
우리 엄마 엄청 이기적이고 심통 맞다.
작년엔 내가 해바라기를 심었더니 꽃 필 땐 좋아라 하더니 키 빼기가 너무 커서 꼴보기싫다고
올해는 해바라기는 심지 말라 하셨다.
자신의 자식들은 키 크고 늘씬하게 낳아 놓고선 저러신다. 캬캬캬캬
울 엄마는 아버지를 회상하실 때 키가 너무 커서 단명했다고 키 큰사람은 싫단다.
그래서 키 큰 식물은 싫으신가 보다.
봄부터 여름날 엄마네 화단에 꽃이 만발했다. 내가 심은 마가렛, 한련화, 수레국화, 백합, 머루,
수국, 금낭화, 끈끈이대나무, 붓꽃, 패랭이, 허브 꽃들.
엄마가 가꾸는 상추, 오이, 가지, 고추, 깻잎, 머위, 도라지, 또 뭐가 있더라? 아! 더덕도 있다.
난 부자는 아니지만 엄마가 있고, 남동생이 있고, 올케가 있고, 자식이 있어 좋다. 정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