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이모에게서 급하게 전화가 왔다.
강원도에 땅이 나왔는데, 아주 아주 싸게 판다고 당장 계약을 하라는 것이다.
“곧 길도 뚫리고 전철도 들어온대, 이십년전 땅 값으로 판단다. 이 회사에서 급하게 경매 받은 땅이래."
“땅도 안보고? 거기면 서울에서 가깝고 좋긴 한데, 진짜야?”
“여기 계시는 과장님 부자야. 땅을 많이 사고 팔아서 재산이 백억이나 된대. 나도 이천 평 살 거야, 너도 얼른 사. 금방 팔릴 것 같아. 나중에 집 짓고 같이 살자. 고향이고 얼마나 좋으니?”
“어 그래? 나도 그럼 좋지, 알았어. 이모. 근데 소개 해 준 그 분 어떻게 아는 사이야?”
“동네에서 오래 알고 지내는 동생의 아는 분이야. 잠깐 바꿔줄게.”
나는 가슴이 마구 들떴다. 옛날부터 꿈에 그리던 땅을 아주 싼값에 살수 있다니 그건 보나마나 좋은 땅일것같았다. 서울에서 별로 멀지도 않고 고향에서 가깝고, 교통도 좋고. 거저였다.
“빨리 계약하세요. 이모를 믿고 무조건 계약만 하시면 돼요. 저도 땅 많아요. 이렇게 싼 땅 없어요.”
목소리 톤이나 태도가 보험계약을 추진하는, 그러면서도 거저 주는 것처럼 당당하다.
“네, 네 그럼 계좌번호 주세요. 내일 넣으면 안 될까요? 가족이랑 같이 가서 볼게요.”
“가족이랑 오지 말고 혼자 오세요. 오늘 넣으세요. 금방 팔려요.”
나는 계좌번호를 적고, 가슴은 두근거리고, 우리 아들 대학 졸업하면 바로 가서 살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뭐 보이는 게 없이 손이 떨리고 벌써 푸른 산천에 내가 서 있는 환상이 펼쳐졌다.
이런 싼 땅을 나 혼자 살순 없지. 엄마한테, 동생들한테 전화를 넣었다. 엄마도 사겠다고 하고, 근데 동생은 떨떠름 하니 회사 상호명과 땅 주소를 달라고 한다. 알아본다고.
그런데 주소를 알려 달라고 했더니 과장이라는 여자가 대뜸 기분 나빠한다. 동생들이랑 우리 얘들이랑 같이 보고 계약을 하겠다고 했더니 나 혼자 와서 계약하고 회사 차를 타고 땅을 보러 가자고 한다. 가족이랑 같이 가서 일단 보고 계약하겠다고, 땅도 안보고 계약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했더니, 도리어 나보고 이상하단다. 이런 땅이 어디 있다고 의심을 하냐고. 그런가?
계좌번호를 가만히 보다가 일단 오늘 하루만 생각해 보기로 했다. 급하게 하면 뭐든 체하는 법.
다시 이모랑 통화하고, 엄마랑 통화하고, 동생이랑 통화하고. 하루 종일 신경을 쓰면서 땅을 살까?몇 평이나살까? 망설이고 머리 굴리다가 저녁때가 되니 머리가 아파 벌러덩 누워버렸다.
우리 애들이 보나마나 뒤집으나 엎으나 백 프로사기라고 말렸다.
“아녀, 경매라 싼 거래. 경치 좋고, 교통도 좋데. 당장 시골 가서 살 거여.”
이모는 계약금을 넣었단다.
근데, 이상하게 믿음이 안 가서 일단 땅을 보고 계약을 해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난 어릴 적부터 산골에서 크고, 산골에서 학교를 다녀서 그런지 우리 아이들도 시골에서 키우고 싶었다. 여러 가지 여건이 안돼 아직은 도시에서 살지만 아들만 졸업하면 춘천 쪽에 가서 살고 싶다.
조그마하고 소박한 농가주택을 개조해서 마당엔 잔디를 깔고, 내가 심고 싶은 꽃을 마당과 집 주변과 길가에 뺑뺑 돌려가며 꽃을 키우고 싶다. 정원용 야한 꽃보다는 소박하고 정겨운 꽃으로 둘러싸인 집에서 살고 싶다.
글을 쓰면서 집안엔 책으로 가득 채우고 동네 사람들에게 책을 빌려주고, 씨앗과 꽃모종을 나누며 책 이야기와 꽃 이야기를 주고 받고 싶다.
작은 농가주택이면 내 형편에 딱 맞을 것이고, 혼자 살면 외로우니까 책과 꽃 이야기를 하며, 동네사람들과 어울리며 노후에 조용하고 소박하게 살고 싶다.
그러던 중 이렇게 좋은 땅이 이렇게 싸다니 혹할 수밖에 없었고, 당장 계약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론은 아니었다. 이모는 사기는 아니라고 했지만 이모네 자식들이 당장 계약금 돌려 받으라고 했단다. 그런 땅 사봤자 아무 쓸모가 없던지, 사기던지, 아님 팔 수도 집을 지울 수도 없는 이상한 땅 일거라고 해서 이모도 땅을 보러 가지 않고, 사지 않기로 최종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사기였는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런 터무니없는 땅은 보나마나 골치 아픈 땅일 것이다.
소박하고 아름다운 꿈에 한발자국 걸어가다가 말았지만, 살다 보면 좋은 기회가 올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