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태극기는 펄럭인다.
아저씨의 작은 오토바이 앞에 두개 뒤에 하나.
무슨 애국심인지 그렇게 4계절을 태극기를 달고 달린다.
지적장애가 있는 아저씨는 아내도 그렇다.
두 딸들까지도.
어느 한 사람이라도 온전하면 좋으련만
선하디 선한 아저씨네 온 가족이 다 그렇다.
원래 아저씨는 고아로 자라 몸도 마음도 약해서
직장생활을 못하고 남의 집 머슴을 살았다고 한다.
돈도 없고 건강도 그러니 늦도록 장가도 못갔는데
아저씨처럼 조금 부족한 아가씨를 누가 중매했다네.
아가씨네 집에서 논뙈기 조금하고 집 하나 해 줘서 결혼을 했다네.
결혼을 하고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두 딸을 낳았는데
당연히 키우는 건 아저씨 몫.
아내보다 아저씨 상태가 조금 더 나았으니까.
농사도 못 짓고 남이 지어서 쌀 조금 받고.
그럭저럭 나름 행복했는데 아내가 집을 잃어버렸고
아저씨는 전국을 찾아 다니면서 울었단다.
아내는 말까지 못하니 어디서 사는 누군지 본인을 설명할 수도 없고
남편이나 딸들 이름도 모르니.....
아저씨가 울면서 아내를 찾아 다닐 때
아내사랑을 노래하는 시를 지어 오토바이에 달고 다녔다고 들었다.
지치면 그 시를 외우면서 또 찾고.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몇달만에 아내를 찾고 눈물의 상봉.
고등학교를 졸업한 큰딸이 그만 간질병으로 죽고 말았다.
온전하게 살아보지도 못하고...
아저씨는 또 시를 지어 대문에 달아두고
죽은 딸이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바란다.
언제고 문은 열어둘테니 돌아오라고
사랑하는 내 딸을 아빠는 아직 보내지 않았노라고....
지적장애가 좀 있고 몸이 부실해도 아저씨는 낭만적이다.
아내사랑은 비장애인보다 더 극진하다.
아내가 할 일을 아저씨가 다 한다.
밥 빨래 청소 아내목욕 육아....
어느 누가 그 남편으로부터 그렇게도 살뜰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을지.
장애가 그들의 사랑을 희석하진 못한다.
아저씨는 본능적으로 자신보다 더 약한 아내를 사랑한다.
아내가 어딜 가면 신발 씻어서 대령하고 신겨주고
속옷부터 겉옷까지 코디네이터가 되어 다 챙겨주고
헤어디자이너가 되어 머리손질까지.
전용기(오토바이)에 태극기 휘날리며 모시고.
오늘 낮에 차를 몰고 딸네집에 가는데 내 앞에서 낯익은 태극기가 휘날렸다.
일부러 앞지르기를 하지 않고 천천히 오토바이 뒤를 따라갔다.
아저씨가 놀랄까 봐 크락션도 울리지 않았다.
건강하게 태어나진 못했지만
서로 의지하고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서로 물고 뜯고 욕하고 싸우고 심하면 더 무서운 일들도 많은 부부도 있는데
부족하고 모자라지만 탓하지 않고
네 잘났다 나 잘났다 싸우지도 않는다.
아저씨가 손수 만든 몇가지 반찬도 늘 만찬이다.
그래도 태극기 아저씨네는 행복하다.
전에 같은 구역을 잠깐 할 때 구역예배를 그 집에서 하게 되면
아저씨가 태극기 휘날리며 성의껏 준비해 놓았던 요구르트
부잣집 화려한 간식보다 귀한 요구르트였다.
그 집 갈 때 빈손으로 안 가고 집에 있던 뭔가를 챙겨서
아저씨 손에 쥐어준게 고마웠던지
그 구역 떠나고 다른 교회로 옮긴지 10년이 넘는데도
가끔 장날 내가 모르고 지나치기라도 하면 달려 와 반갑게 인사하는 아저씨.
싱긋 웃으며 누런 치아를 다 드러 내고 웃는 얼굴에는
아내 뒷수발에 늘어난 주름살이며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얹혀있다.
알록달록
아저씨는 여자 옷도 개의치 않고 입고 다닌다.
유니섹스모드???
지금 건강이라도 잘 챙겨서 아내와 오래오래 행복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