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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아저씨


BY 그대향기 2015-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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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태극기는 펄럭인다.

아저씨의 작은 오토바이 앞에 두개 뒤에 하나.



무슨 애국심인지 그렇게 4계절을 태극기를 달고 달린다.

지적장애가 있는 아저씨는 아내도 그렇다.

두 딸들까지도.

어느 한 사람이라도 온전하면 좋으련만

선하디 선한 아저씨네 온 가족이 다 그렇다.



원래 아저씨는 고아로 자라 몸도 마음도 약해서

직장생활을 못하고 남의 집 머슴을 살았다고 한다.

돈도 없고 건강도 그러니 늦도록 장가도 못갔는데

아저씨처럼 조금 부족한 아가씨를 누가 중매했다네.

아가씨네 집에서 논뙈기 조금하고 집 하나 해 줘서 결혼을 했다네.



결혼을 하고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두 딸을 낳았는데

당연히 키우는 건 아저씨 몫.

아내보다 아저씨 상태가 조금 더 나았으니까.

농사도 못 짓고 남이 지어서 쌀 조금 받고.

그럭저럭 나름 행복했는데 아내가 집을 잃어버렸고

아저씨는 전국을 찾아 다니면서 울었단다.



아내는 말까지 못하니 어디서 사는 누군지 본인을 설명할 수도 없고

남편이나 딸들 이름도 모르니.....

아저씨가 울면서 아내를 찾아 다닐 때

아내사랑을 노래하는 시를 지어 오토바이에 달고 다녔다고 들었다.

지치면 그 시를 외우면서 또 찾고.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몇달만에 아내를 찾고 눈물의 상봉.



고등학교를 졸업한 큰딸이 그만 간질병으로 죽고 말았다.

온전하게 살아보지도 못하고...

아저씨는 또 시를 지어 대문에 달아두고

죽은 딸이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바란다.

언제고 문은 열어둘테니 돌아오라고

사랑하는 내 딸을 아빠는 아직 보내지 않았노라고....



지적장애가 좀 있고 몸이 부실해도 아저씨는 낭만적이다.

아내사랑은 비장애인보다 더 극진하다.

아내가 할 일을 아저씨가 다 한다.

밥 빨래 청소 아내목욕 육아....

어느 누가 그 남편으로부터 그렇게도 살뜰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을지.

장애가 그들의 사랑을 희석하진 못한다.

아저씨는 본능적으로 자신보다 더 약한 아내를 사랑한다.



아내가 어딜 가면 신발 씻어서 대령하고 신겨주고

속옷부터 겉옷까지 코디네이터가 되어 다 챙겨주고

헤어디자이너가 되어 머리손질까지.

전용기(오토바이)에 태극기 휘날리며 모시고.

오늘 낮에 차를 몰고 딸네집에 가는데 내 앞에서 낯익은 태극기가 휘날렸다.

일부러 앞지르기를 하지 않고 천천히 오토바이 뒤를 따라갔다.

아저씨가 놀랄까 봐 크락션도 울리지 않았다.



건강하게 태어나진 못했지만

서로 의지하고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서로 물고 뜯고 욕하고 싸우고 심하면 더 무서운 일들도 많은 부부도 있는데

부족하고 모자라지만 탓하지 않고

네 잘났다 나 잘났다 싸우지도 않는다.

아저씨가 손수 만든 몇가지 반찬도 늘 만찬이다.

그래도 태극기 아저씨네는 행복하다.



전에 같은 구역을 잠깐 할 때 구역예배를 그 집에서 하게 되면

아저씨가 태극기 휘날리며 성의껏 준비해 놓았던 요구르트

부잣집 화려한 간식보다 귀한 요구르트였다.

그 집 갈 때 빈손으로 안 가고 집에 있던 뭔가를 챙겨서

아저씨 손에 쥐어준게 고마웠던지

그 구역 떠나고 다른 교회로 옮긴지 10년이 넘는데도

가끔 장날 내가 모르고 지나치기라도 하면 달려 와 반갑게 인사하는 아저씨.



싱긋 웃으며 누런 치아를 다 드러 내고 웃는 얼굴에는

아내 뒷수발에 늘어난 주름살이며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얹혀있다.

알록달록

아저씨는 여자 옷도 개의치 않고 입고 다닌다.

유니섹스모드???

지금 건강이라도 잘 챙겨서 아내와 오래오래 행복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