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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생각을 하며 배부른 생각을 접다.


BY 한이안 2015-05-19

참깨를 파종하고 싹이 트지 않은 곳에 다시 파종을 했다. 쪼그리고 앉아서 하는 작업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흙을 손가락으로 고르고 씨앗을 집어 작은 구멍에 넣는 것도 쉽지는 않다. 그뿐이랴? 씨앗을 집는 손은 장갑을 낄 수 없는 것도 고역이다. 손이 고스란히 자외선에 노출이 될 수밖에 없으니까.

그게 힘들어 두어 줄은 그냥 놔두기로 마음을 먹었었다. 한데 오늘 두 번째로 뿌린 씨앗들이 흙을 들춰내고 올라오는 것을 보고 마음을 바꿨다.

오후에 씨앗을 들고 가 다시 밭고랑에 쪼그려 앉았다. 문득 아버지가 떠오른다.

나도 싹이 올라오지 않을 곳을 보면 은근히 마음이 쓰인다. 그러면서도 되는 대로 먹어야지, 하늘이 허락해준 만큼만 먹어야지, 하는 느긋한, 심하게 말하면 배부른 생각으로 마음을 다독인다. 그러다 문득 다가온 아버지가 생체기가 되어 더 진득한 아픔으로 다가온다.

난 되는 대로, 하늘이 허락해준 만큼을 생각하며 여유를 부리는데 내 아버진 어땠을까? 속이 바작바작 타들어가지 않으셨을까? 그게 자식들 뒷바라지 할 돈이었고, 먹고 살 밑천이었으니 멀쩡할 수가 없으셨겠지. 씨앗 값도 아껴야 했기에 듬뿍 뿌리지도 못하셨던 아버지셨다. 엄지와 검지로 씨앗을 집어 들고 살짝 비틀며 골마다 다니셨다. 허리를 펼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 일을 하루 종일 하셨던 아버지의 허리는 또 어떠셨을까? 싹이 올라오지 않은 곳은 며칠씩이라도 밭에 가서 살며 아버지가 만든 특이한 도구로 뿌리가 다치지 않게 떠다 일일이 옮겨 심으셨던 아버지셨다.

아버진 아무 말이 없으신데 밭에서 일하시던 아버지 모습이 나를 자꾸 꾸짖는다. 되는 대로가 어디 있어? 하늘이 허락해준 만큼이 어디 있어? 힘들어 그만 하겠다는 핑계인 게지.

난 오늘도 아버지의 삶을 떠올리며 배부른 생각을 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