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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멀건이


BY 편지 2015-05-16

나의 멀건이

(젊었을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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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건이는 업둥이다.

겨울에 태어나고 두 달 된 애기가 우리 집으로 입양이 된 것은 십년전 일이다.

애들도 개를 키우고 싶어하고, 털 달린 동물은 쥐도 귀엽다고 하던 나는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기로 결정하고, 그 개의 인생을 책임지기로 결심을 하게 되었다.

두 손에 담아도 다 담기고, 털 인형같이 가볍던 애기강아지.

털 인형이랑 같이 세워 놓으면 분간이 안 갈 정도로 깜찍하고 작았다.

 

어미를 떠난 첫날부터 울지도 않던 강아지는 우리 식구랑 정말 잘 맞는 동물이었다.

아들아이가 중학생이 되던 해에 들어온 강아지는 아들아이와 함께 죽순처럼 빠르게 성장했다.

 

나를 닮아 풀밭에서 뛰놀길 좋아하고, 여기 꽃이다, 하면 같이 꽃 냄새를 맡을 정도로

나와 정서가 통하는 사람 같은 개.

군인이 된 아들이 자주 하던 말이

멀건이가 보고 싶어요.”

언니가 대학생이 되고 직장인이 되는 과정을 다 지켜본 산 증인이기도 하다.

언니가 유학 가서 보낸 편지엔

멀건이 같은 개가 있으면 달려가 안아주고, 저도 이런 개 키워요한다고.

내가 울면 같이 슬퍼해 주고, 내가 웃으면 덩달아 신이 나서 장난감을 던져 달라고 한다.

아이들을 야단치면 아이들 옆에서 위로를 해 주던 정이 많고 착한 개.

그렇게 사춘기를 보내고, 성인이 된 막내딸 멀건이.

처녀는 아니다. 길거리에서 첫눈이 반한 남자친구를 만나 합방을 했고,

온 가족이 멀건이 이세를 기다렸지만 임신이 되지 않았다. 아쉽게도 후손을 남기지 못했다.

 

베란다 창 밖을 하염없이 쳐다본다고 해서 별명이 멀건이가 되었다.

조용히 생각하기롤 좋아해서 멀건이란 별명이 어울린다.

언젠가는 동네 한 바퀴를 돌다가 화단에서 놀고 있는 고양이를 멀끄러미 쳐다 본적이 있는데,

고양이는 자기를 쳐다보는 개가 못마땅했는지 냅다 달려와서 싸다귀를 갈겼다.

한대 맞고도 덤비지도 못하고 쳐다보기만 하던 멀건이는

그 다음부터 고양이만 보면 못본척 고개를 숙이고 개 걸음으로 빠르게 도망갔다.

도리어 내가 기분이 나빠서 고양이에게 야단을 쳤다.

! 너 깡패니? 쳐다봤다고 따귀를 때리고. 우리 동네 깡패!”

 

산책 가는걸 밥 먹는 것보다 좋아하는 사색 견.

산책 갔다 오면 발 닦아 달라고 세면대에 발을 올리는 깔끔쟁이.

여행을 가면 창문에 발을 올리고 풍경을 구경하는 개 여행가.

아이들이 오는 시간이면 현관문을 쳐다보고 기다려주지만

아이들이 여행 커리어를 끌고 나가면 기다리지 않는 똑순이.

 

우리랑 산지 십 년이 넘어 살다 보니 늙은 개가 되었다.

윤기가 다던 우아한 털은 커칠어지고 머리는 흰머리가 되었다.

날씬하고 긴 다리가 매력인 푸들인데, 오자 다리가 되고 배가 쳐져 다리가 짧아졌다.

이빨은 하나씩 빠지기 시작했고, 입에서 냄새가 심하다.

장난감을 골고루 가지고 놀더니 이젠 한 개만 배 사이에 끼고 종일 잠만 잔다.

사료는 먹기 싫어하고 사람 먹는 음식만 달라고 해서 조금씩 주고 있다.

그래 먹고 싶은 것 먹고 살아야지, 간도 없는 느끼한 사료가 얼마나 지겹겠어.”

 

내가 화를 내면 눈치를 보고 고개를 숙이고,

내가 울면 내 곁에 기대어 같이 슬퍼해준다.

내가 즐거우면 냄새 나는 입을 벌리고 헥헥 웃어준다.

 

오빠는 자기 동생인줄 알고 바지가랑이를 물면서 무시를 하고,

언니는 언니인줄 알고 퇴근할 때만 잠시 좋아하고, 언니가 불러도 못들은 척 내 옆에만 붙어있다.

아이들아빠를 처음 만나기 시작할 때 저 인간은 뭐지?” 이상하게 눈을 내리깔며 낯을 거리더니,

아빠가 오는 날은 여행이나 산책을 가는 날이라는 걸 알아서 차를 알아보고 달려가서 반긴다.

 

사람의 한살이 개들한텐 육 년이라서 멀건인 60이 넘은 노인네가 되었다.

아가야 아가야 불러주던 때를 지나 이제는 할머니 할머니, 하면서 놀린다.

그래도 멀건인 아기 같다. 죽을 때까지 내겐 아기로 머물러 있을 것이다.

나의 멀건이

(지금 모습. 이젠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