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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동네와 막장드라마


BY 편지 2015-04-05

오래된 동네와 막장드라마

이곳은 낡은 연립주택과 새로 생긴 아파트를 이어주는 재래시장이 있는 곳이다.

오래된 연립주택들은 따로 주차장 시설이 없어

내가 일하는 사무실 주차장에는 항상 차들로 꽉 차있다.

주차장에 차 댈 대가 없다고 항의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곳은 마을 주민들이 공유하는 공공장소라서 차를 대지 말라고 뭐라 할 수가 없다.

개 짓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주민게시판에 글을 올려도

개를 안락사 시킬 수도 없고 어떨 수 없다.

서로 이해하고 완충하며 살아야지, 집이 다닥다닥 붙어 살고 있는 가난한 서민이 사는 동네에서

없는 사람끼리 위해야지 누가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벚꽃, 산수유, 목련, 제비꽃, 들 고양이, 버러지들, 지렁이, 날 파리 사이에

내가 일하는 사무실이 있고, 나는 그 사이에서 일을 한다.

꽃 내음, 쓰레기 냄새, 자동차 기름 냄새, 바람이 전해주는 흙 냄새, 하수구 냄새,

노인네들이 한꺼번에 앉아 있는 공간의 냄새,

이런 원초적인 냄새와 함께 나는 이 년 동안 일하고 있다.

젊은 사람들이 노인네들이 있는 공간에 들어오면 냄새가 난다고 다른 곳으로 피하지만

나는 표시내지 못하고 어르신들을 보면 밝게 인사를 한다.

가끔 술에 취해 건들거리는 할아버지가 나타나면 술주정을 할 것 같아

나는 얼른 바쁜 척 컴퓨터를 만지면 취객은 어느절에 책상 앞에 서 있다.

내가 먼저 인사를 해야 하나? 나 자주 오는 사람이잖아.”

그러면 얼른 미소를 띠며 인사를 해야지 안그러면 불친절하다고 높은사람 어디있냐고 난리가 난다.

 

이곳은 새로운 도시가 새워지기 전에는 시에서 제일 큰 읍내였다.

집도 오래됐고, 길도 오래 전에 생겨났고, 사람들도 세월을 많이 먹었다.

점심을 먹고 시간이 남으면 운동 삼아 동네를 한 바퀴 도는데, 집 앞 낡은 의자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을 일일이 쳐다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보게 된다.

집과 길 귀퉁이마다 빈터가 있으면 텃밭을 가꾸고, 촌스러운 꽃이  심어져 있다.

어느 이층집 옥상에 사는 검은 개 두 마리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경계하며 목이 갈라지도록

짖어댄다. 저 개들이 게시판에 올라온 주범들이다.

둘이라서 용기가 생기고 둘이라서 힘이 더 넘친다.

우쭈쭈 안녕 얘들아? 오구오구 이쁘지 귀엽지.”

안부리던 애교를 부려도 소용이 없다. 더 기가 살아 날뛰기만 한다.

허리높이까지 세워진 담장아래 시멘트 바닥에서 사는 발바리도 나를 올려다 보고 짓는다.

아는 체를 하고싶은게지.

 

하얀 패널로 지은 조립식 주택 창문엔 대추나무가 창문 전체를 다 가려 집안이 답답해 보인다.

작년 가을엔 욕심껏 자식열매를 만들어 나에게 보여주었다.

동네 한 바퀴를 두리번거리며 걷다 보면 점심시간이 끝나간다.

 

사무실로 들어오면 일층에 안내대가 있다.

사무실 안내와 잡일을 하시는 마음씨 좋은 아저씨 한 분이 앉아 계신다.

아저씨라 해서 나이가 나보다 많은 건 아니다. 나랑 비슷한 오십 대를 힘겹게 건너고 있다.

항상 소화기계통이 안 좋으셔서 간식을 드려도 싫다고 하신다.

그러면서도 술은 사양을 안 하는 것 같다. 어젯밤에 술을 먹어서 속이 안 좋다고 했으면서

다음날에도 술을 먹었다고 밥맛이 없다고 한다.

이런데 이분이 인류대학을 나왔고, 대기업을 다녔고, 뭔 일이 생겨 가정이 해체되었고……

뒤늦게 여자를 만나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지만 서로 의지하고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기서 일하는 여자분과 사랑하는 사이였다나. 좋게 말해 그렇고,

불륜은 저질렀다고 한다. 지금은 서로 마음이 변해 날아간 새 보듯 한다니..

참나원! 그래서 매일 밤 술을 처드셨나 보다.

사무실이 좁다 보니 소문이 돌고, 그 소문이 풍문이 아니고 사실이된다.

남녀 사이에 사랑이 싹트든지 말든지, 사랑은 무슨 욕망이지.

지랄하든지 미치든지,  사람은 뭐든 한가지에 미치기도하지.

나는 한낮 부질없음을 알기에 부럽지도 그렇다고 흉도 보지 않게 된다.

 

다양하고 파란만장한 사람 속이 흥미진진하다.

청소반장님과 여기서 일하시는 여자분과도 그렇고 그런 사이란다.

이제는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서 가신 윗분이 젊은 아가씨에게 자꾸 만나자고 문자를 했다는데...

에고, 그 부질없는 짓들을 하느라 난리버거지들이네. 

이 좁은 사무실안에 막장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었다니, 내가 이래서 막장드라마를 안 본다니까.

단조롭지 않고, 심심할 새 없이 하루가 빠르게 흘러흘러흘러간다.

 

결코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매섭던 겨울도 가고, 그 이름도 찬란한 4월이왔다.

철 계단 아래 벚 꽃이 팝콘처럼 터지고,

뒤뜰엔 산수유 꽃이 져가고 있다.

목련 가지마다 호롱불 같은 꽃이 달려 막장 드라마 사무실이 환해졌다.

우리네 일상도 지나갈 것은 지나가고 다시 새로운 일들이 생긴다.

이 오래된 동네도 봄소녀가 나타나 좁은 틈새마다 풀이 돋고,

겨울 동안 볼품없던 삐쩍 마른 가지마다 나 이래뵈도 꽃나무야, 확인되는 4월이 왔다.

 

오래된 동네와 막장드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