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성관계 동의 앱 어떻게 생각 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041

coffee by james(제임스 커피)


BY 편지 2015-03-23

coffee by james(제임스 커피)


일주일에 한번씩 나는 그곳으로 간다.

꼭 배워야 할 것이나 꼭 시작해야 할 일도 처음엔 잠을 못하고 음식도 잘 먹지 못할 정도로

예민하고 걱정이 많은 내가 일주일에 한번씩 낯선 사람을 만나,

낯선공부를 한다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었다.


처음 그 분을 만나러 갈 때는 나를 좀 가리기 위해 모자를 쓰고,

긴털부츠를 신고 손엔 장갑을 꼈더니 영락없는 탐험가 같았다.

낯선 나라나 오지를 여행 삼아 가는 것은 아니지만 별로 배우고 싶지도 않은

성경공부를 하러 가는 거라 마음은 좀 무거웠고, 사실 부담 갖지 말라고는 했지만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어릴 적부터 교회는 다녔지만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설렁설렁 조용히 예배만 보았던 내가

친정엄마와 친구의 권위로 성경공부를 시작하겠다고 결심을 하게 되었는데,

이 결심이라는 게 언제든지 그만 두면 되지 않을까, 하는 탐험가 같은 자유가 있었다.

왜 그렇지 않은가, 탐험가들도 내가 싫으면 모자 휙 집어 던지고 조국으로 돌아갈 수가 있고,

몸과 마음이 축날 정도로 힘들면 가던 길을 뒤돌아 배를 타고 휘적휘적 노를 저어

내 나라로 돌아오듯 말이다.


먼저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장소를 잡아야 서로 편하게 만날수가 있어

그래서 약속을 잡은 곳이 중간 지점에 있는 제임스라는 커피 집이었다.

한번도 가본적이 없고 지나가면서 카페네, 했던 하얀색 건물로 기억하던 곳.


처음 그 곳에 갔던 날, 카페주인은 손님오는 걸 반가워하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차를 마시며 서로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한 시간 정도 하고,

예수님 섬을 모험하기 위해 한발자국 들여 밀었다.

친구가 소개 시켜준 성경공부를 가르쳐 주시는 분은 목사님 사모님이었고,

나와 같은 오십 대였다.

단발 파마에 눈 밑에 주근깨가 촘촘한 약간 촌스러운 스카프를 맨

그러나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는 눈빛을 가지고 있는 분이었다.

첫날부터 그 분의 매력에 빠져 지나온 내 과거를 털어 놓게 되었고,

그분은 내 얘길 한마디 한마디 다 들어주시고 이해할 수 있다고 다정하게 대답을 해 주셨다.

예수님의 섬 탐험엔 별 관심이 없고, 난 이 분과 많은 얘기를 하고 싶어졌다.


두 번째로 가던 날은 카페를 둘러보게 되었다.

매장은 좁지 않았고,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가 넓었다.

바닥과 창틀에 화분이 놓여 있고 벽 한쪽이 한지였는데

어린 시절 고향 집 등잔불에 비친 방문 같이 아늑해 보였다.

첫 번째 만났던 날 앉았던 곳을 옮겨 한지벽쪽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는데

그 테이블 탁자는 생나무였다.

무표정 주인 남자는 커피를 갔다 주면서 흘리지 말고 드셔야 한다고 하면서

이 탁자는 그냥 나무라서 그런다며 뭐든 흘리지 말아달라고 또 부탁을 했다.

천을 씌우든지 유리를 깔든지 하지 진짜 불편하다고 내가 투덜거렸다.


세 번째 카페의 문을 여니 무표정했던 커피 집 제임스는 내 눈과 마주치며 살짝 웃어주었다.

사모님은 열과 성의를 다해 까다롭고 의심이 많은 초보 탐험가를 잘 이끌어 주었다.

차 값도 못 내게 사모님은 나보다 일찍 오셔서 선불로 처리를 하셨고,

오실 때마다 선물을 가지고 오셨다.

메밀 차, 다과, , 포도즙, 뚜껑 달린 머그잔.

철없는 탐험가는  수시로 커피를 홀짝이면

제임스는 조용히 빈 커피잔에 커피를 부어주고, 물이 식으면 뜨거운 물로 바꿔 주셨다.


네 번째로 제임스네로 커피를 마시러 갈 때는

내가 일찍 도착해서 맨날 받아 먹기만 한 커피값을 먼저 치렀다.

제임스는 처음으로 투덜이 탐험가인 내게 말을 걸었다.(주인 이름이 제임스인지 뭔지는 모른다.)

성경공부를 하시냐고, 해도 괜찮다고, 뭐든 배우는 건 좋다고, 방해되지 않는다고.

공부하러 오는 분들 많다고 그래서 테이블 사이를 넓게 한거라고,

직접 운영하고 화분도 직접 키우는 거라고,

표정은 그리 웃는 상은 아니지만 첫인상보다 훨씬 부드러워졌다.


다섯 번째로 갔을 때는 봄이 막 오고 있는 3월중순이었다.

창틀에 들꽃 화분이 주렁주렁 박처럼 달려있었다.

너무 반갑고 예뻐서 만지려 했더니 제임스는 생화라고 만지지 말라고 하면서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대부분들 관심 없어하는데 내가 관심을 가져줘서 좋아하는 것 같았다.

사모님이 또 선물을 가지고 오셨다

봉투 가득 꽃씨였다.

코스모스, 노란 코스모스, 과꽃, 분꽃, 해바라기 씨였다.

시골 목사님에게 받았는데 내가 제일 잘 키울 것 같아서 가지고 오셨다고 하셨다.

난 정원이 없지만 친정엄마네 정원이 있다는 걸 기억하고 있었다니

난 사모님에게 아무것도 해 준 것이 없다.

탐험 초보자라 의심만 하고 힘들다고 투덜거리고 조금 걷다가 탄짓하면서 주춤거렸는데

사모님은 아무 이득도 없이 일주일에 한번씩 시간을 내서

전혀 남인 나의 투덜거림을 들어주고 베풀어 주고 좋은 얘기만 해 주셨다.

자신의 교회에 나오라는 말도 없이

세상 힘든 것 털어놓고, 좌절하지 말고, 감사하고, 기도하라고만 하셨다.


찬바람을 몰고, 모자를 쓰고 카페에 들어섰던 겨울엔 제임스네는 겨울처럼 냉냉했지만

산수유 꽃 바람을 몰고, 봄빛 나는 옷을 입고 카페 문을 여는 3월이 오니

냉랭한 기운은 빠지고 제임스집 창틀엔 들꽃이 피기 시작했다.

탐험가인 나는 아직도 마음 문을 다 열지 못하고 밍기적밍기적 따라가는 수준이지만

일주일에 한번씩 그곳에 가면 은은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고,

좋은 대화 속에 나를 내려놓을 수 있어 기다려 지는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