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좀 한가하다.
겨울수련회를 다 끝냈고 여름 수련회 까지는 시간이 좀 있다.
추위가 물러가면 겨울 동안 아이들이 덮었던 이불을 세탁해야 한다.
그 때까지는 큰 일은 없는 일년 중 가장 한가한 계절이다.
할머니들 식사만 신경쓰면 되고 가끔 찾아오는 방문객들의 식사를 챙기면 된다.
날도 풀렸고 마냥 늘어진 생활이 싫어서 군에서 하는 교육을 알아보다가
야간반 요가와 다도를 수강하려 했더니 이미 마감되고 빈자리가 없다.
그리고 홈패션이나 서예,요리는 낮에 하는 교육이라 다닐 수도 없다.
시간 낼 수 있는 야간반 빈자리가 수납정리반 뿐이다.
수납이라???
내가 살면서 가장 자신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뭐든 아까워서 여기 콕 저기 콕 이 구석에 한 뭉치 저 구석에 또 한 뭉치...
물건을 사고 슈퍼에서 가져 온 깨끗한 비닐봉지는 수도 없이 많다.
언제 쓰일지도 모르는 맑은 봉지는 아마 세 보진 않았지만 수 백개는 되지 않을까?
왜 나는 그런 걸 다 껴안고 사는 걸까?
막내올케처럼 쿨~하게 버리면 공간도 넓고 집도 깨끗할건데..
옷도 쉬 버리지 못한다.
이 옷은 허름한 일 할 때 입으면 되고 저 옷은 산에 갈 때 입으면 되고
하다못해 천조각 하나라도 양말이 빵구나면 깁는다고 짱박아 둔다.
그러니 이 구석 저 구석 오만가지 것들이 뒤엉켜 있는 판국이다.
내가 아까워서 못 버리면 보다 못한 남편이 커다란 검정비닐을 들고 온다.
보이는 봉지에 담으면 또 꺼낼 까 봐 아예 안 보이는 걸로...ㅋㅋㅋ
그러면 뭘해?
쓰레기 수거차가 오기 전에 다시 열고 도로 찾아오는걸...
어느 날은 정말이지 생살을 도려내는 마음으로 몇가지를 내다 버린 적이 있었다.
저녁에 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워있는데 자꾸만 생각이 나고 아까워서 혼이 났다.
이러면 안되는데 좀 비우고 살아야하는데도 잘 안된다.
가벼워야 멀리가고 오래 간다 했는데 알면서 안되니....
무소유는 둘째치고 소소유도 안되는 이 마음을 어찌하랴?
집이 너른 것도 이유가 될까?
너르디 너른 운동장과 또 그에 걸맞는 큰창고에 수십개의 방과 복도
200평이 되는 우리집 앞 옥상과 넓은 사택
뭘 가져다 놔도 공간이 협소하지는 않다보니 자꾸만 모으게 된다.
자잘한 골동품부터 개업집에서 말려 죽인 관엽화분,이사가면서 주고 간 가구들까지
가짓수도 많지만 품목도 다양하다.
누가 우리집에 왔다가 어이없이 웃으면서 그랬다.
"이 집은 어지간한 미니박물관 수준이네.."라고.
내가 봐도 그렇다.
옛날에 쓰던 농기구며 가구들 돌절구에 엄마가 쓰시던 초등학생 키만한 항아리까지
구석구석 참 많이도 쌓아두고 산다.
진짜 몇년 전에는 시골의 작은 폐교를 사서 내 오만가지들을 진열하고
마당에는 또 오만가지 들풀을 심어 놓고 그렇게 살고 싶었다.
교실 두엇은 큰 거실과 손주들이 눈이 오나 비가 와도 전혀 방해받지 않고 뛰어 놀
넓은 놀이터를 만들어 주리라 마음 먹은 적이 있었다.
불발로 그친 이유는 들풀도 좋지만 잡초 뽑을 일이 더 많아서였고 뱀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떠난 운동장에는 잔디를 깔고 매미가 울어대는 고목에는 그네를 달고
언제 누가 찾아오든 시원하거나 따뜻하게 쉬어 갈 수 있도록
이불을 볕 좋은 날 잘 말려서 보송보송 준비해 두고 싶었다.
마중물을 넣은 펌프도 마당 한켠 우물에 마련해서 콸콸콸 뿜어 올려
텃밭에서 흘린 이마의 땀을 씻어내고 남편의 등물을 해 주고 싶었다.
사계절 피고지는 마당의 들풀을 창 넓은 남쪽 방에서 바라보며 늙어가고 싶었다.
지붕을 때리는 빗방울소리에서도 추억의 노랫가락을 기억해 내고
흥얼흥얼 가물거리는 가사를 읊어보는 고운 할머니가 되고 싶었다.
싶었다는 어디까지나 싶었다로 끝내고 말았다.
요즘은 폐교에 문화공간을 만든다고 구하기도 어려웠고 문제는 경제적으로 능력부족이다.
꿈도 야무지지.
뭐 돈 드는 것도 아닌데 야무지면 어떻고 좀 크면 어떨까?
혼자서 꾸고 허물고 슬며서 웃다가 깨면 그뿐.
누가 뭐랄 것도 아니고 피해를 준 것도 아닌데 말이지.
로또를 살까?
그런 나는 월간지들도 보고나면 버리든가 폐지재활용통에 넣으면 되는데
심심한 날 한번 더 읽겠다고 악착같이 모아둔다.
정작 몇권이나 다시 읽었을까?
이 무슨 집착인지 어린시절에 있었던 결핍에 대한 보상심리인지?
무슨 일을 하든 어지간한 공구나 포장지는 찾으면 다 나온다.
이제는 수납을 배우면서 마음을 바꾸어야겠다.
안 보는 책이나 안 입어지는 옷들은 과감하게 정리하자.
일복이라고 너무 허름하게 챙겨두지 말고 일복도 말쑥하게 입자.
미련따윈 키우지 말고 좀은 냉정해 지자.
그런데 잘 될까 모르겠다.ㅋㅋㅋㅋ
사람 갑자기 변하면 어찌된다고 했는데.....ㅎㅎㅎ
일주일에 하루 두시간씩 부지런히 다녀나보자.
이젠 혼자서도 야간운전도 잘(?)한다며 나 혼자 다니랬다.
오늘 밤 번잡한 읍에 나가서 혼자서 멋지게 주차선에 맞춰 똑 바로 주차 잘 하고 들어왔다
앗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