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기대도 안 하고 있었는데 월급이 올랐다.
여기는 일반 직장처럼 해마다 월급 인상이 있는건 아니다.
물가인상하고는 상관이 없다.
6년씩 동결이 되어 있었던 적도 있었지만 불만이 없었다.
그저 그러려니...하고 순응하며 살았었다.
그러다가 몇년 전 진짜로 더 늦기 전에 뭔가를 이루자며 부부가 뜻을 모으고 사직서를 던졌다.
결과는 무효처리.
여기 계시는 할머니들 특히 관장님은 자신이 세상을 떠날 때 까지는 절대로 안된다고 못을 박았다.
이 일을 누가 할거냐고...
세상 일은 누구나 배우면 한다고 설득을 드리다가 되려 설득을 당하고 말았다.
가긴 어딜가냐고.
우리가(임원들) 그동안 너무 소홀했던 것 같다며 월급을 파격적으로 인상해 주셨다.
30%의 월급 인상에 보너스 100% 더 지급하는걸로.
월급이 두 사람이 근무하는 걸로 치면 그리 큰 금액은 아니다보니 30%인상에도
일반 직장의 남자 혼자 받는 월급정도?
그래도 먹고 잠자는 일이 직장 내에서 해결되나보니 일반 직장에서 받는 월급보다 알차다.
기본적으로 교회에 내야 하는 십일조와 감사헌금 주일헌금 기타 선교헌금을 뺀 나머지로
사치 안 하고 가끔 꽃화분이나 사 즐거워하며 알뜰하게 살다보니 조금씩 여유도 생겼다.
아이들 학자금이야 저희들 갚아 나가라며 숙제로 남겨뒀다.
일년에 한번 있는 휴가비는 오로지 휴가를 즐기는데 몽땅 투자하고.
바깥출입이 시장보는게 전부이다보니 휴가만큼은 멀찍이 떠나고 싶었다.
일년을 버틸 수 있게 하는 큰 활력소였고 에너지의 재충전이었으니까.
비싼 옷 한벌 사 입는 일에는 인색했어도 여행에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옷은 입다가 싫증나고 유행이 바뀌면 버리게 되지만 내 머릿속에 간직 된
여행지의 추억은 내가 늙고 병들어 죽는 날까지 내 기억 속에서 늙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올 초 나는 더 이상의 노동은 건강에 문제가 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만두고자 마음 먹었었다.
정식으로 사직서를 넣진 않았지만 아이들이나 남편한테 동의를 구했고 아이들은 대찬성이었다.
임원들이나 시설장한테 단 한마디의 언질도 흘리지 않았는데 1월 중순에 월급이 인상되었다.
월급이 오른지 만 3년 밖에 안되었기에 아무런 기대로 하지 않았다.
이제까지의 인상폭을 봤을 때 절대 그럴 희망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갈등이 생기고 말았다.
사직을 하고자 마음 먹은 이즈음에 월급이 오르고 말았다.
15% 의 인상.
같이 일하는 직원은 임원을 찾아가서 인상을 요구했지만 깨끗하게 묵살 당했다.
아무 말 안하고 기대도 안했던 우리 부부만 15% 인상되었다.
그 직원은 2년 전에 월급이 올랐는데 또 요구하다가 묵살 당하고 말았다.
우리는 3년 전에 올랐기에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어인 일인지....
내 마음의 결정을 내린 일이 텔레파시처럼 통한 것도 아닐건데.
월급이 적어서 사직을 한다기 보다는 건강이 더 망가지기 전에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일
그 일을 하면서 즐겁고 수입이 좀 되면 더 신나는 일을 찾았었다.
이러면 사직을 하기 힘들어진다.
월급인상에도 사직을 넣어야 진짜로 아픈 사람이 되는건가?
아 진짜...갈등이다.
월급인상이 된 김에 죽어라고 2년만 더 참아야되나 싶기도 하다.
그러면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니 애들 공부 다 마쳤으니 이젠 쉴랍니다..이렇게.
배신을 때릴 수도 없고 나 죽을 때까지는 그냥 있어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어찌할꺼나.
내가 그만두면 이곳을 아주 떠날거라는 할머니도 계시는 판에 나는 어찌할꺼나~
자다가도 팔 인대가 너무 아파 잠을 깨고 설치기 일쑨데 나는 어떡하라고~
남편이 그런다.
딱 2년만 더 참아보자고.
그 때는 아무리 붙들어도 월급을 더더 올려줘도 깨끗하게 그만두라고 한다.
안스럽기도 하고 마음이 아픈 남편이지만 22년 동안 근무하고 모시던 할머니들한테
큰 충격을 안겨 드릴수는 없다고 한다.
내 생각도 그렇긴한데 아 ~~~2년이라....
그래 이제껏도 있었는데 2년 더 참아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