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로 향하는 창 밖은 겨울빛이 완연하지만 나는 많이 들뜬 가슴으로 앉아있다.
오늘은 아주 특이한 날이다. 인생에서 이런 날이 그리 많지 않을 그런 날.
한달 전 딸 슬비한테 카톡이 왔다.
“엄마~ 위너 팬미팅 있는데 갈 생각 있어?”
알고는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그룹 위너가 팬을 위한 콘서트를 한다고는 했지만
돈도 아깝고 잠실까지 가기도 그렇고…이미 매진이었고,
슬비는 취소하는 표가 있을 것 같은데 엄마를 위해서 같이 가준다는 것이다.
아들과 딸이 기습작전과 끈질긴 클릭으로 몇 시간 만에 표 두 장을 예매를 할 수 있었다.
앞자리는 취소 표가 없고 뒷자리지만 괜찮다
위너를 실제로 보고 생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데 어떤 자리든 다 괜찮다.
특히 딸아이랑 그런 순간을 같이 한다는데, 무조건 좋다고!
내가 가요를 좋아한다. 그것도 조용하고 감성적이고 몽환적인 음악을.
위너 노래가 그랬다. 작년8월부터 유튜브로 보기 시작해 해가 바뀐 지금까지
그 아이돌의 공연과 일정을 검색해 보면서 하루를 마감하곤 했었다.
슬비는 두어 달이면 엄마가 저러다 말겠지 했단다.
그것도 아이돌 아이 노래를 그렇게까지 오랫동안 실증도 내지 않고 볼 줄은 몰랐다고
우리 엄마가 좀 이상해졌다고 놀려대곤 했다.
김진우(위너중에 한 아이) 못지 않게 잘생긴 아들도 있으면서
남의 아들 잘생겼다는 둥 걔가 임자도 출신이라는 둥 군대간 아들이나 잘 챙기라고
장난섞인 야단을 치곤 했었다.
“위너 노래 그만 좀 들어” 하더니 자신의 돈으로 예매를 해주고
엄마 혼자 가기 힘드니까 자기가 보호자격으로 가준다나 뭐라나.
잠실체조 체육관에 들어서니 젊은 여자들이 바글바글하다.
나 같은 아줌마가 있나 슬쩍 보았지만 발견하지 못했다.
위너 다섯 맴버들 개인 현수막중에 김진우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사진도 찍었다.
안으로 들어가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밍크 입은 아줌마 하나를 발견했고, 고등학생쯤 보이는 딸아이와 함께 온 엄마를 보았고,
우리는 젊은 여자들 틈에 끼어 앉았다.
잠실체조체육관은 둥글게 끌어안은듯한 아늑함과 저녁안개가 낀듯한 몽환적인 분위기였다.
정확한 시간에 위너가 까만 양복을 입고 공허해 노래를 흔들흔들 불렀다.
보랏빛이 도는 파란응원봉엔 일제히 불이 들어오고, 팬들이 환호성을 질러댔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몽환적인 기분에 사로잡혀 이곳이 체육관인지
별들과 함께 떠도는 우주인지, 파도 치는 밤바다간지,
날개를 펴고 꿈속을 날아다니는 건지 나도 나를 모르겠다.
사랑을 다시 시작하는 그런 기분이 이런 거였나?
채워지지 않는 일상에서 내 열망을 뒤로 감추며 살았는데 그 열망인가?
어디론가 사라진 나라는 존재가 없었는데 내가 이런 설렘이 남아있었나?
노래하는 인형 같았는데 실제로 내 눈에 보이고, 남의 자식이고 남의 남자이고,
그런데 내가 왜 저들을 환호하고 밤늦도록 음악을 찾아 듣고
한 아이를 귀엽다고 한참을 들어야 보고 그러는 걸까?
난 섹시돌이거나 짐승돌이거나 그런 남자들에겐 관심이 없다.
예쁘고 귀엽고 순순해 보이는 김진우를 보면서 강아지 같다는 표현을 딸에게 했다.
“엄만 김진우가 강아지 같아서 좋아. 그리고 순수한 섬 소년이라서 좋아. 나를 보는 것 같거든.
밖으로 돌아다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고 연습만 하고 집에만 있데.
대중 앞에선 아는 것도 까먹지만 성실하고 노력하는 아이라서
순수한 마음으로 그 아이를 응원하는 거야.
우리 자식을 닮아서 좋아 부족한 너희들을 응원하듯 그 아이를 응원하는 거야.”
“무엇보다 그들의 음악이 좋고, 그들의 목소리가 좋고, 그들의 자연스러운 춤이 좋아.
그들은 화려한 무대와 춤보다는 음악으로 승부하는 가수라서 좋아.”
두 시간 반이 파란물결과 함께 흘러갔다. 노래를 열 곡이나 불렀다.
정규앨범 일 집을 내고, 신인상을 휩쓸고,
육 개월 만에 콘서트를 할 수 있게 인기를 얻어 감격해서 노래를 부를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첫 콘서트라 그들의 부모님도 오셨는데 부모님 앞에서 이런 공연을 하게 해 주셔서
고맙다고 큰절을 올렸다.
앙코르 곡 때 팬들이 미리 준비한 응원 카드를 일제히 흔들었다.
“무대’위 너’희들을 응원해.”
그들이 노래하다 울었다. 팬들도 울고 나도 울컥했다.
예술가로서 성공을 하고 별을 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우린 알고 있다.
음악은 그 시절로 돌아가 추억할 수 있게 해준다.
내가 노인이 되어 위너의 노래를 들으면 지금 이순간을 추억하겠지.
추억하나 내 가슴에 진하게 담아두었다. 딸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