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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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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세상


BY 편지 2015-01-06

세상은 내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처음으로 세상을 원망했고 세상 탓을 했다.

하늘에 대고 삿대질을 하면서 욕을 했다.

세상을 등지며 살아와 놓고 이제와 원망을 하다니 하늘을 찔러대던 손을 내리고,

내 발을 조용히 내려다보게 되기까지 일주일이 걸렸다.

 

난 은둔생활잔데 내 직업은 집시처럼 떠돈다. 이상야릇한 팔자다.

한곳에 머물기를 좋아하는 성격인데 어쩌다가 이리 되었는지 잠시 세상을 원망했다.

 

위아래로 들까불리면서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수많은 개미들 중의 하나였고, 자본주의 사회의 저 밑바닥의 일개미였다. 그리고 다른 말로 우린 비정규직이었다.

 

주중에 일하는 사람들도 짧으면 이 개월 길면 십 개월의 계약서를 쓰고,

주말에만 일하는 사람들도 올 연말에 싹 갈아치웠다.

비정규직들이 모여 파리 목숨이라며 웃었다. 울 수 없으니 웃어야했다.

정규직이라는 생명수는 엉뚱한 곳으로 흘러들어갔고,

오 년째 일하고 있던 나는 척박한 땅으로 내몰려진 오리 신세가 되고 말았다.

 

전능하신 분께서 내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좋은 남자도,

유들유들한 돈도 빼 간 게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다른 여자 주머니엔 좋은 남자도 넣어주고, 두둑하게 노잣돈도 넣어주면서

내 것은 왜 빼가기만 하는지 알기는커녕 모르고 모르겠다.

 

텔레비전 광고에선 더 많이 부자가 되고,

더 많이 즐거우라고 끊임없이 부추기고 애교를 떨고 안사면 손해라고 잔뜩 겁을 주었다.

돈을 쓰라고 자꾸자꾸 많이 쓰라고 집 마당에 돈이 열리는 나무가 몇 그루씩 있는 것처럼

수도꼭지만 누르면 돈이 콸콸 나올 것처럼 물건은 흔해빠졌고 광고는 유혹적이었다.

우리가 얼마나 잘 사는지 보고 감탄하라고 사람들은 좋은 차를 타고,

넓은 집에서 살고, 비싼 가방과 옷을 몸에 휘휘 감는다.

세상과 타협하고 악수하고 화해하며 수수한 모습으로 살고 싶었는데,

나는 다시 세상에 등을 돌려버렸다.

 

최저임금을 받고, 그 돈으로 세 식구가 산다. 아파트가 좁아서 화장실 순서를 정해야 했고,

남향집이라 햇볕이 거실로 넓게 들어와 개와함께 해 마주보기를 하며 관리비를 줄여 나갔고,

외식은 바지락 칼국수로 만족했고,

소형차 대신 자전거가 복도 현관문 옆에 매여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전거 바구니에 휴지를 버리고 가도 서럽지 않았다.

정규직이 되면 지금보다 월급이 많고, 익숙하고 안정된 곳에서

정년까지 성실하게 일해야겠다는 희망이 있었기에 좀 부족해도 참을 수 있었다.

 

시청으로 달려갔다. 이유를 알고 싶었다. 작년엔 오래일한 순서대로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주더니 내가 왜 누락이 됐는지 물어봐야했다.

작년과 다르게 올 해는 법이 바뀌었단다.

오래일한 순서가 아니고 작년에 새로 들어온 사람을 정규직으로 해 줬다니...

오래 일한 순서대로 해 줘야 맞는 것 아니냐고 해도 법이 바뀌었단다.

계란에 바위 던지길 뿐, 흥분해서 말이 헛 나왔다.

바위에 계란을 쳐 받자 아까운 계란만 못 먹게 되는 꼴이었다.

번거롭게 해 드려 죄송하다고 인사를 하고 나왔다.

커피를 한잔 타 주기에 받아 들고 나와 하수구에 쏟아 부었다.

 

정규직을 기대했던 작년 한 해 동안 난 폭삭 늙어버렸다.

눈두덩과 입가가 부어서 따갑고 가려웠다.

자다가 수시로 깨어나면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따가운 슬픔이 밀려왔다.

기대하지 않았다면 실망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 올해는 내가 정규직이 될 순서였다.

 정규직이 되면 내 노후는 내가 책임질 수가 있었고,

친정엄마에게 다달이 용돈을 드린다고 약속을 했고,

가운데가 물웅덩이 되어가는 낡은 천 소파를 쥐색 가죽 소파로 바꾸고

들꽃 수를 넣은 색색 쿠션을 만들려고 했다.

무엇보다 딸아이 상견례 때 내 직업을 자랑삼아 얘기하고 싶었다.

아버진 능력이 없지만 엄마인 내가 한쪽으로 기울어진 가족을 든든하게 받히고 있다며

자신감 있게 딸아이를 내 놓고 싶었다.

 

세상이란 참 웃기는 짬뽕이다. 더 거칠게 말하겠다.

세상이란 참 더럽다. 시발! 더러운 세상.

작년에 정규직이 된 여자는 상사에게 술을 따라줘서 정규직과 맞바꾸었다.

일하면서 친해진 H도 윗대가리와 영화를 같이 보고 여행을 같이 가줘서 재취업을 시켜줬다.

그 윗대리가 나에게도 뭔가를 요구했다.

여행을 가자고 했으니 그 말이 그 말인 게 맞다.

그까짓, 강물에 나룻배 한 척 삐걱거리고 노저어 간다고 표시도 나지 않을 것이고,

남편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까짓 일회용관계들도 많은 세상살이인데 난 왜 안 되는지.

햐 참! 내가 이래서 출세를 못하고 허구헌날 비정규직으로 살고 있나보다.

저는요... 마음이 가지 않으면 되지 않아요.

저도 제가 고지식하게 생겨먹어서... 헤헤헤헷

우회적으로 돌려서 예쁘고 조신하게 말했더니 이 돌대가리가 입을 벌렸다.

왜 그렇게 답답하게 살아요?

이천년도를 살면서 천구백년도 여자처럼 산다고 누가 알아주나요.

 내가 이상해지고 미안해지는구랴. 허허참.“

…….그게 아니고요. 취업시켜준 그 여자하고도 친구라는 얘기가 있고, 

H도 재취업을 시켜줬잖아요. 제가 H하고도 친군데...? 좀 그러네요. 히히힝.”

아니 차 두어 번 마신 걸 가지고 누가 그런 소릴 해요?

내가 이래서 같이 일하는 여자와 얘기도 못한다니까.

아차, 싶었다. 아무리 이 사실이 사실이라 해도 밖으로 내 뱉어서는 안 되는데,

여행가자는 말이 그냥 순수한 여행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손끝과 발끝이 떨렸다.

뜬소문이었다고 하시면 믿을게요. 오호호홋. 같이 일하면서 차 마실 수도 있지요.

그런 분이 아니란 걸 알아요. 정이 많고 상대방 말을 잘 들어주시는 분이라 들었어요.

원하시는 걸 못해드려서 제가 미안합니다.”

똥통에 빠질 더러운 놈.

왜 나는 남들 다 가진 걸 못 가졌냐고 한탄했고, 사랑도 빈털터리고,

일도 떠돌이고, 돈도 별로 없고, 그래서 이런 상황까지 겪다니.

분노로 인해 가슴이 확확 달아올라 온몸이 가렵고 편두통이 왔다.

 

정확히 출퇴근하고, 일터에선 급하지 않으면 전화 통화도 하지 않았고,

어려운 일은 먼저 도맡아 했고,

내가 제일 친절하고 성실하고 그늘이 없다고 했으면서 그건 별 소용이 없다.

대낮부터 술에 취해 내가 일하는 부서로 와서 술 사달라는 육십을 바라보는 상사도 있는데,

술 못 먹는다고 대꾸를 하는 바람에 성실할 건 없어지고,

다음날부터 성격 까칠하다고 소문이 나 버렸다. 거꾸로 뒤질 상사노친네.

 

성상납? 연예인이나 정치계나 예술계나 뭐 그런 내가 알 수 없는 곳에서

음습하게 일어나는 걸로 알고 있었다. 뉴스나 신문에 나옴직한 사건이 이곳에도 일어나고 있었다니.

그걸 원하는 윗대가리나, 상사나...

그걸 받아 먹는 여자들을 다 한 구덩이 속에 산채로 묻어버리고 싶다.

이게 지금 내 본심이다.

겉으론 한마디로 못하면서...그래서 글로 풀고있다. 오해가 없길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