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 3남매를 키울 때는
솔직히 바쁘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못 해 주고 지나간 성탄절
많은 사람들이 들 뜬 기분으로 거리거리마다 넘쳐 날 때
아이들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현실적으로 어려웠던 일만 생각하고 이것저것 다 생략하고 살았다.
불빛 반짝이는 레스토랑의 근사한 식사도
아이들이 갖고 싶어했던 장난감도
따스한 목도리 하나 맘 놓고 사 주지 못했었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의 사업이 기울면서 빚까지 생겼고
남편은 암으로 고생했다.
어린 3남매를 데리고 지금 이 시골로 내려오기까지
나와 남편의 갈등은 지금도 아픈 추억이다.
비빌 언덕도 없었던 벌거숭이 맨몸으로 내 버려진 기분이었지만
어린 3남매가 있었기에 버틸 용기도 있었다.
그러구러 세월은 20여년이 흘렀고
아이들은 이제 성인 다 되었다.
큰딸은 결혼해서 예쁜 두 딸을 낳았고
둘째는 내년 봄 드디어 대학을 졸업한다.
그 동안 언어연수니 코이카활동으로 외국에 나가 있는 바람에
또래 친구들보다 2년 정도는 더 늦은 졸업이다.
막내 아들만 2년 더 공부하면 아이들 공부는 다 끝마치게 된다.
21년을 이곳에서 사는 동안
힘든 일도 많았고 그만두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체력적으로 한계에 부딪힐 때 마다 이를 악 물었다.
암 수술을 두번씩이나 한 남편이 가족들을 위해 의연히 버티는 모습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기 위해 아내라는 이름으로, 엄마라는 이름으로 강해져야만 했다.
언제 우리의 마지막 날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가족은 세상 그 어떤 이름보다 아름답기에
나는 아름다운 울타리를 그 누구보다도 튼튼하게 세우고 싶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잔인하기도 하다.
기다려줄 줄 모르는 냉정함도 있다.
한 순간 모든 것이 사라져 없어지겠지만 그 때를 모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마지막 순간 후회가 적도록.
남편이 건강해 져서 내 옆을 지켜줘서 행복하다.
3남매도 착하게 잘 자라줘서 감사하다.
지금까지 남편을 도와 가정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을 것 같아 스스로 대견하다.
금전적으로 가계에 얼마만큼의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건강한 엄마 성실한 아내로 살아왔음은 자타가 인정한다.
매사에 긍정적인 자세로 살아갈 수 있는 마음가짐을 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행복해서 웃었던게 아니라 웃었더니 행복은 조용히 찾아왔다.
어렵다고 험하다고 비켜 가는게 아니라 용감하게 맞서 싸웠다.
가시밭길도 마다 하지 않았다.
창과 방패가 눈으로 보여야만 전장이 아니질 않는가.
사는 날 모두가 총성없는 전장인 것을.
어둠고 긴 터널도 시작이 있었기에
끝나는 곳도 분명히 있다는 생각으로 두려움 없이 지났다.
좌절과 절망의 늪에 빠지기 보다는 내가 감당할 짐이라 생각했다.
나는 뇌구조도 초간단 무식한 회로로 구성돼 있다.
나쁜 것, 슬픈 것,복잡한 것,힘든 것들은 최대한 빨리 깨끗하게 비워진다.
하얀지우개가 장착되어 있는 모양이다.
오래 기억하지 못하고
자세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내 몸에 해로울만한 기억들은 소나기처럼 쏴아아...왔다가 뚝 그치고 무지개가 뜬다.
억지로 꿰 맞추기식의 수동시스템이 아니라 편리한 전자동 시스템이다.
알아서 척척.. 전원을 넣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시간되면 가동되는 그런....
가끔은 너무 하얗게 지워 버리는 바람에 곤란하기도 하지만 뭐 그 정도의 오류쯤이야.
대를 위해서는 소를 희생하는 아량도 있어야지 않겠어?
이만큼 잘 건사해 주고 있는데.
올해도 이제 마지막 열기를 뿜어내고 있다.
울 일도 있었고 웃을 일도 있었던 말 그대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
꼼꼼하게 한 해를 정리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저 살아있는 매 순간이 감격할 따름이다.
성탄절이 한해를 마무리하는 절기쯤으로 느껴지는 요즘
마을주민들을 초청해서 잔치를 베풀고 가난한 이웃에게 사랑을 나눈 오늘이다.
첫해 잔치 때 보다 주민들이 더 불어남에도 감사하다.
마을 단합대회겸 부페점심 약속도 미루고 찾아 와 준 마을어르신들께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드린다.
점심을 나누고 돌아가시면서는 마을회관에서 2차로 술한잔 하시겠다며
좋은 안주 (과메기에 배와 잔파 미나리를 무친 회)좀 달라고 하셔서 웃었다.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술자리냐고 했더니 미안해 하시면서
과메기무침을 한사발씩 두 동리에서 받아가셨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