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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세입자와 가난한 집주인


BY 최미순 2014-12-08

 "오늘은 기어이 결단을 내고 말껴.  세상에 6개월 동안 방세 한 푼을 안 내고 사는 사람을 어떻게 더 봐 줘? 무슨 자선 사업가도 아니고  나가라고 할꺼야"

 '월세도 못 받아 내면서 그딴 짓을 왜 해가지고  쯧쯧...은행 이자는 어쩌려고...'  동정 인지 비아냥 인지 애매한 남편의 혼잣말을  외면 하며  결심을 하고 나선다.  차마 좇아낸다는 표현은 스스로 도저히 용납이 안 된다.  따지고 보면 나가라고 하는거나 쫓아 내는거나 다를 바 없지만 나는 어떻게든 쫓아내는 모양새는 피하고 싶다.

 있는 돈 없는 돈 죄다 쏟아 붓고, 빚이라면 소스라치는 성격에 4.5%대출까지 모가지 차도록 받고, 오로지 한 칸 아파트 까지 잡혀서 월세 받아 보겠다고 조그만 원룸 건물을 사고 보니 빛 좋은 개살구다. 이전 집주인의 더 이전 집주인 때 부터 월세를 한번도 안 내는 바람에 보증금 다 까 먹고도 여러 달 월세가 밀린 000 호는 차라리 어느날 도망 이라도 가 주는편이 낫겠다.  쉰 넘은 나이에 개인회생 중이라는 ...입주 때 일부 내고 보충해서 더 걸어야 하는 나머지 보증금도 안 주더니 강아지 까지 데리고 와서 이웃들 잠 설치게 만드는  왕년 잘 나가던 사모님000호, 미용실 000호는  간판만 걸어 놓고 허구헌날 '잠깐 외출 중입니다. 퍼머 하실분은 000-0000-0000번으로 예약 전화 주세요'  세 발짝만 가면 미용실이 널리고 널렸는데 누가 사장님 스케줄에 딱딱 들어맞는 시간에 퍼머를 한담!

오늘도 여전히101호 미용실은 외출 중이며  102호 공인 중개사는 가뭄에 콩나듯 귀한  고객을 행여 놓칠까 인터넷만 눈 빠지게 들여다 보고 있다. 그나마 103호 세탁소(옷 수선집이 더 어울리는) 는 재봉틀이  돌아 가고 옷가지들이 수북히 쌓인것이 불경기가 호경기 이며, 없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업종이라 그런지

아주머니 표정이 밝아  월세 받는 입장에서도 마음이 편하다. 세상  좋아져서 인터넷 뱅킹이나 텔레뱅킹을 해도 되는데 굳이 세탁소는 매월 월세를 받으러 오라는것이 번거롭기는 하나  돈 주겠다는데 열 번이면 못 올까.

편의점에 들러 일회용 커피 한통을 사다가 슬그머니 수선 작업대 위에 놓았다. 말 그대로 약소 해서 인지 고맙다는 겉치레 인사도 없다.  오만원 짜리 몇 장 을  받고  000호를 향해 계단을 올라갔다. 두어명  겨우 비켜 다닐 수 있을 만큼 좁은 복도에는 오늘 이사를 가는, 정직하게 말하면 6개월동안 월세가 밀려 방을 비워 달라고, 즉 내가 좇아내는 000호 이삿짐들이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아이고 생각 보다 짐이 많네요. 날씨도 추운데 어디로 이사를 가시려고요...." 

그냥  일부라도 월세를 내면서 살다가 돈 생기는 대로 밀린것은 차차  정리하면 될것을...이란 뜻이다.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이 포함된 어색한 인삿말이다. 월세 독촉 문자를 보냈을 때 죄송 하다면서 이번 달 안으로  한 달 치 라도 보내마 하던 목소리의 주인공은 생각 보다 젊은 남자였다.

"아, 녜 안녕하세요. 이렇게 나가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가스비 하고  전기 요금하고 ...제가 받아 갈 보증금이 남았을까요?   한 푼도 없지요?"

남자는 실망과 기대가 섞인 야릇한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 보았다. 보증금에서 밀린 것들을 차감 하면 6만원이 남는 계산은 하고 또 하고 재차 확인 하였으니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 돈 으로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이 사람은.

"6만원 정도,,,"

"아 다행히 이번에 목돈이 조금 생겨서요. 아는 형님 매실 농장에 방을 얻었어요"

순박하게 웃었다. 딴 에는 또박또박 표준말을 하느라 애를 쓰지만 이방인이다,아버지의 아버지의 땅 이라고 먼길을 떠나 온 중국 동포.. 순간 복도에 널브러진 짐을 다시 방으로 들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동포여서가 아니다.  부끄럽지만 그 정도의 애국심은 내게 없다. 십여년 전에  중국인 근로자를 상대로 장사를 했었다. 그때 그들은 나를 믿고 내 물건을 기꺼이 사 주었고 더러는  친구들에게 광고 하면서 팔아 주기도 했다. 나는 그들에게 허리 굽혀 인사하며 진심으로 감사 했었다. 그 덕에  종자돈을 만들어 오늘날 빛좋은 개살구든 어쨌든 집주인이 된 것이다. 좇겨나는 이 젊은이 에게 정말 목돈이 생긴걸까. 그랬다면 한 달 분이라도 내고 살았을테지. 구체적으로 매실 농장 형님 이라고 하는걸로 봐서 세를 얻었든 노동력을 담보 했든 농장으로 가는건 확실 해 보였다. 짐작하기로 좇아 낸다 해도 길 거리를 헤매지는 않을것이다. 나는 위로인지 반성인지 어색한 기분을 털어내려 애를 쓰며 터벅터벅 중개사 사무실로 향했다.

"사장님  청소비는 받으셨어요?"

원룸 주인들을 중개사에서는 사장님 이라고 부른다 .나로써는 참  듣기 민망한 호칭이다. 어쩌면 부르는 그들도 어색할지 모르겠다.

"아뇨. 전기요금 가스비 대신 내 주고 차비 보태서 가라고 보증금 6만원만 주면 되는데 10만원 줘서 보냈어요"

"아이고 또 그러셨어요? 지난번 000호 나갈때도 그러시더니 사장님 그러시면 안돼요. 버릇되고 소문나요"

가슴이 먹먹하다. 내가 왜 이 마음 고생을 사서 하나. 아린 기억마져 머릿속을 휘감아 눈앞이 흐리다.

 전기를 끊어 버린 주인댁 문 밖에 서서 우리 애 공부해야 되는데 불 좀 넣어 달라고 사정 하시던 울 엄마,  한일합섬 기숙사 점원 월급으로 다섯 식구 생계를  짊어 지고 정작 자신의 손바닥 만한 월세방은  세가 밀려 좇겨 다닌 우리 언니...... 아.....

눈발이 날린다. 청년이 이사 해야 하는데 눈 이라도 빨리 그쳤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