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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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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이 쓰는 편지(9)


BY 편지 2014-11-18

나는 낮엔 글이 써지질 않아 꼭 밤에 글을 쓰려고 컴퓨터를 켠다.

십 년 전엔 노트에 글을 먼저 쓰고 컴퓨터 자판으로 쳐서 저장을 했는데

이젠 노트에 쓰지 않고 바로 글을 쓰면서 수정하고 저장한다.

껌뻑껌뻑하는 커서가 글쓰기를 기다리고 한 단어를 만들고 한 줄의 글을 나열하면

한편의 글을 완성 하게 된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때였다.

물론 숙제형 일기가 있었지만 나는 그것 말고 나만의 일기장을 가지고 있었다.

몇 년 병을 앓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엄마는 나를 외갓집에 맡겨 놓고

서울로 상경을 하셨고 그때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석유등 밑에 앉아 일기를 쓰고 그걸 다락에 감춰 놓았다.

다락은 으스스했다. 사방에 거미줄이 진을 치고, 꼬리에 집게가 달린 벌레와

다리가 많은 벌레들이 낯선 나를 보고 피하지도 않았다.

언제 적 옷인지 모르는 걸레 같은 옷이 한쪽에 웅숭크리고, 부엌 창만한 나무 주판,

그 속에 뭘 담고 있는지 모를 나무 궤짝하며

다 으스스하고 건들면 부서질 것 같은 물건들이 먼지 속에 엉켜있었다.

외할머니는 별로 깔끔한 성격이 아니었고, 깔끔치 못한 곳에 내 일기장이 숨기엔 딱 좋았다.

일 년 뒤 엄마가 계신 서울로 전학을 갈 때 그 일기장을 읽어보았다.

서울 간 엄마는 언제나 오려나....

언제 엄마가 날 서울로 데리고 갈까...

엄마가 오시기나 할까... “

 

 

서울로 이사를 했고, 성북초등학교로 전학을 했다.

산골 아이라고 아이들이 놀려 기를 못 펴고 학교를 다녔다.

어떤 글에 경상도에서 서울로 전학 온 아이가 자물쇠를 쇠때라 했다고

졸업할 때까지 쇠때라고 놀림을 당했던 걸 잊을 수가 없다더니 내가 그 짝이었다.

강원도 사투리를 쓴다고 동물원 원숭이를 보듯 얼마나 웃어대는지

그 입을 강원도 감자로 막아버리고 싶었다.(집에 강원도에서 가져온 감자가 많았다.)

그러던 중 국어 시간에 글짓기를 했는데

선생님이 내 글을 보시고 글을 잘 쓴다고 칭찬을 해서

산골지지배가 제법인데 하는 눈초리더니 강원도 사투리를 써도 웃지를 않았다.

그때부터 내가 잘하던 소질을 당당하게 발휘했고

그림과 붓글씨를 쓰면 선택이 되어서 뒤에 붙고,

자연을 남다르게 잘해서

자연시간이면 깡말라 막대벌레 같은 팔을 휘딱휘딱 들어 발표를 했다.

 

중학교 때 소설이라는 걸 처음 썼다.

고향 옆집에 살던 과수원집 오빠를 좋아한다는 소설 이었는데

이 걸 큰 동생이 보더니 뻑하면 유지하다, 유치해.”

뭐가 유치하다는 건지 참, 감자로 한 대 갈겨주고 싶었다. (먹어도 먹어도 감자가 많았다.)

십 수 년의 세월이 흘러 과수원 오빠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겨 정신병원에 있다고 들었다.

그 오빠를 향한 내 그리움은 사과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할 만큼 속절없는 것이었고,

짧은 소설로만 존재하는 허무한 것이지만 기억은 이렇게 유치하게 남아있다.

 

고등학교 땐 잡문을 쓰느라 공부를 안했다.

표지가 까만 비닐 노트에 빽빽하게 글을 썼다.

폭풍의 언덕소설책을 돌려 읽듯 내 잡문노트를 친구들이 돌려 봤다.

그 해 가을 학교 백일장이 열렸다.

반 친구들이 나를 추천했는데, 소심한  성격 탓에 백일장이 있던 날 아프다고 결석을 했다.

성격이 너무 소심하고 내성적이라 친구랑 어울리지도 않고

말이 너무 없다보니 담임선생님 눈에 내가 유별나 보였나보다.

하루는 나를 부르시더니 책을 한권 주시면서 독후감을 써 오라고 하셨다.

책은 얇은 편이었고 제목은 조건 없는 사랑이었다.

일주일 만에 장문의 독후감을 써서 드렸다.

선생님이 내 글을 보시고 재주가 있다고 글을 써보라고 하셨다.

 

글을 항상 썼다. 막연하게 쓴 것 같다.

말 수가 없고, 친구도 잘 못 사귀고 말주변머리도 없었다.

근데 글을 쓰면 길게 할 말이 많고 내 속에 마음을 떠들어 댈 수 있어 신난다.

감성은 흘러넘치지만 글재주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요즘 걸리적거리는 게 낙엽이다.

지저분하고, 빌어먹을 낙엽투성일 수 있지만

난 빌어먹을 낙엽을 보면 글을 쓰고 싶다는 충동을 일으킨다.

시멘트 벽 밑에 풀색을 띤 꽃을 봐도 글을 쓰고 싶고,

아름다운 세상을 보고 글을 안 쓰면 나만 느끼는 세상이 너무 아까워서 글을 쓰고 싶다.

글쓰기로 생활을 하기는 거의 기적 같은 일이라고 본다.

기적은 한 번에 마술처럼 이루어지는 게 아니고

기적을 향해 차근차근 나가다보면 그 꿈을 이룰 수 있다지만,

글만 써서 먹고 사는 일은 내가 알고 있는 유명한 작가 분들 빼고는 

다른 직업을 생계로 삼고  있는 분이 대부분이다.

 

밤늦은 시간에 나는 컴퓨터를 부킹하고 찌르르륵 컴퓨터에 생명이 생기면

타닥 타다닥 감성 가득한 가슴으로 글을 널어 놓는다.

나는 이 시간이 그냥, 마냥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