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이후 제주여행의 주목적은 한라산이었지만 우린 또 다른
surprise를 깜짝 계획하고 있었다
우리와 함께 성당 독서회 활동을 하던 회원 중 한 언니가 얼마 전
제주로 터전을 옮겨 목하 제주살이를 시작하였는데 워낙 60평생 도시내기로만
지내던 언니라 새로운 곳, 그것도 제주라는 곳에 적응하기가 만만치 않은 까닭이라
우리에게 꼭 한 번 들르라는 당부를 여러 번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언니에게는 미리 연락하지 않고 내려가기 전에
전화로 안부를 묻는 듯이 하며 조만간 서프라이즈를 할 것이니 기대하라고만
운을 떼어 놓은 상태였다
깜짝 놀랄 언니를 생각하며 우린 무언가 은밀한 공범자(?)적 동지애까지 느껴가며
우리의 제주행을 비밀에 붙였다
제주에 도착하여 찜질방에서 잠들기 전 우리가 제주에 왔다는 것, 내일 찾아가겠다는
것만 간략히 알려주고는 전화를 끊었다
언니를 몹시도 궁금하게 해놓구선......
그렇게 한라산 정상에서 다시 한 번 통화를 하면서 5시쯤이면 집에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랬는데 내려오는 동안 우리의 두 전화기 밧데리가 다 나가는 바람에
연락을 할 수가 없었고, 우리가 내려온 시간은 벌써 6시가 넘었다
차를 타고 그 언니네 집까지 가려면 넉넉잡고 1시간은 걸릴 듯 하여
부지런히 내비를 찍고 성판악 휴게소에서 출발을 하였다
점점 날은 어두워지고, 우리는 열심히 내비만 믿고 언니네 집을 향하여
달렸다 드디어 내비가 목적지에 도착하였다는 안내에 따라 차를 세웠지만
어째 뭔가가 이상했다
그리하여 근처 마트 앞에 내려 전화라도 빌릴 생각으로 들어가 여기가
어디냐고 주인 할아버지께 여쭤 보니 거긴 우리의 목적지와는 거리가 있어
길을 잘 못 들었다고 하였다
할아버지의 전화기를 빌려 겨우 언니와 통화를 할 수 있었다
기다리다 우리에게 연락이 안 되니 노심초사하던 언니는 반가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며 대평포구쪽으로 와야 한다고 하였다
초행길에, 그것도 밤길에 내비만 굳게 믿었다가 여간 헤매는 게 아니다
게다가 친구도 3년 동안은 거의 운전을 안하다 시피 했다기에 밤길 운전이
염려가 되었다 친구나, 나나.....
할아버지께 자세히 길을 여쭙고 우린 부랴부랴 다시 길을 찾아 서둘러
거기를 떠났다
도시와 달리 조금만 주택가를 벗어나면 그야말로 깜깜절벽인 세상이
펼쳐진다 우리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다시한번 그래도 내비를 믿고
일러 주는대로 차를 몰았다
예전에 남편과 올레길 8코스를 한 번 걸었기에 그 언니네가 정착한 곳이
올레길 8코스 시작점이란 건 알고 있지만 밤이 되니 전혀 방향감각이 없어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차의 전조등 불빛 외엔 깜깜한 길을 달리려니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았다
그래도 조금 더 달리니 점점 주택들이 보이며 왠지 포구의 느낌이 나는 곳에
다다라 앞을 보니 언니가 걸어오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차창 밖으로 \"언니!\"하며 소리를 질렀더니
기다리다 걱정이 되어 나와 봤다며 언니도 반색을 하며 우리 차에 올라탔다
언니가 알려주는 대로 조심스레 차를 몰고 가니 언니의 남편 분까지도
길가에 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계셔 여간 미안하질 않았다
그 남편 분과는 거의 초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실례도 이런 실례가 없는 것이다
말 그대로 우리의 방문은 굉장한 서프라이즈가 되고 말았다
드디어 우린 대망의 언니 집에 무사히 도착을 하니 그제서야 긴장이 화~~악
풀리며 셋이서 얼싸안고 무사 귀환(?)과 만남을 자축하는 기쁨을 찐하게 나누었다
언니네 집은 지은 지 9년 된 걸 구입하여 새로 리모델링을 해서 깔끔하게 단장이
되어 있어 두 분이 신혼생활을 다시 누리는 듯 보여 우리를 부럽게 만들었다
아, 부러우면 지는건데 ㅎㅎㅎ
워낙에 깔끔한 언니 성격대로 집안은 먼지 하나없이 깨끗하게 정돈이 되어 있었다
오는 길에 고기라도 사오려 했는데 가게를 못찾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빈손 방문이
되어 어찌나 미안하던지.....
언니와 남편 분은 우리를 위하여 야외 데크에 8시도 넘은 그 시간에
고기를 굽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만남을 축하하는 의미로 제주 막걸리로 건배를 하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공기도 좋고, 마음이 놓여서인지 취기도 쉽게 오르지 않았다
아침에 집주변 경치를 보니 마치 멋진 펜션에라도 와 있는 듯 이국적인 풍경이었다
집앞엔 바로 귤밭이라 그 풍경 또한 도시에선 쉽게 접할 수 없는지라
산책이라도 하지 않음 안 될 것 같았다
집앞으로 조금 걸어 나가니 어제는 밤이어서 보이지 않았던 바다가 바로 눈앞에
펼쳐지며 비로소 제주의 풍광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포구여서 해변은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즐길만한 이색적인 풍광이라
도시인들에겐 그야말로 힐링에 제격이었다
처음 제주에 내려올 때는 이곳이 아니고 전형적인 농가인지라 서울과는 천지차이
이다보니 마음 붙이기가 더 어려웠다고 한다
우리는 아침에 다시 그곳을 함께 가보기로 하였다
이곳에 집을 마련하기 전에 살던 곳도 농막으로 개조를 한 곳인데 서울의 원룸
구조라 가끔 휴식차 내려올 땐 부담주지 않고 머물수도 있을만했다
그래서 이번에 내려온 김에 언니에게 제안을 하니 우리가 제주에 내려오면
얼마든지 편하게 머물다 가도 좋다며 허락을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