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잊혀지는 삶, 그냥 지나가버린 인연, 이것이 대부분의 동물과 식물, 우리들의 삶이다.
나는 가능한 잊혀지는 날들을 기록해 두고 싶다.
우린 보통의 인연처럼 스쳐지나가 버린 만남인줄 알았다.
꽃들도 시간이 지나면 시들어 제 계절에 피는 꽃에게 자리를 양보하게 마련이고,
갓 구운 빵만큼 금방 변하는 게 우리의 만남인데,
그녀와 나의 만남은 다시 한줄 글을 쓰게 한다, 가을바람이 조촐하게 부는 이런 밤에.
지난 토요일. 두 여자가 오늘 갈 곳은 강원도를 구석구석 골고루 탐험하게 될 바다기차여행이다.
7시 50분까지 청량리 역에 도착하려면 가만있자? 몇 시에 일어나야하나?
기차를 놓치지 않으려면 여유 있게 출발해야 한다는 스스로의 성격 탓에 밤을 새우게 되었고,
새벽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갈아타는 순간
꿈만 같았던 여행은 실현가능한 현실여행이 되었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간은 긴소매 옷을 입게 하고,
작년에 구입한 가죽으로 된 밤색 워커를 신게 했다.
청량리 지하철역은 생긴 지 천년은 된 것 같다.
내가 어릴 때도 이 모습이었는데,
삐쩍 마르고 햇볕에 그을린 강원도 촌년으로 서 있던 과거의 내가 보여 가슴이 짜릿했다.
내가 태어난 곳은 강원도 산골짜기다.
감자가 비탈밭에서 자주색 꽃을 피우고(자주감자는 자주 꽃을 피운다)
옥수수가 서걱서걱 바람 부딪히던 소리를 내던 강원도 비탈에서 나는 태어났다.
내가 태어난 계절은 참외가 노랗게 익던 뜨거운 여름이었다고 친척어른들에게 백년은 들었다.
청량리에서 출발한 기차는 원주 역에 두 여자를 내려주었다.
어릴 적 고향에서 서울로 올라가려면 원주에서 시외버스나 기차를 이용했었다.
친구는 원주역이 어릴 적 그 역이냐고 물었지만 사방을 둘러봐도 전혀 모르겠다.
천구백 년도에서 이천년하고도 십사 년이 된 현실은 우주에서 홀로 생존하다가
다른 별에 떨어진 것 같은 느낌, 이런 거랑 비슷하려나.(너무 과장된 표현인가?)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서울에 처음 와서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 본 건
나무가 있어야 산에 집들이 나무만큼 빼곡히 붙어 있던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가을여행은 코스모스 여행이기도 하다.
나는 초등학교를 강원도에서 다녔다.
매년 봄이면 십센티정도 되는 코스모스 모종을 신작로 길가에 심었었다.
9월에 내 키만 해진 코스모스가 한꺼번에 꽃을 피우면,
빨강, 분홍, 희디 흰 코스모스는 가을바람에 춤을 추던 풍경이 벅찬 순간으로 남아있다.
꿀을 먹으러 온 벌을 고무신으로 낚아채 빙빙 돌려 패대기쳐 벌꿀을 빼먹던 기억들과
코스모스 길을 따라 걸어서 갔던 가을소풍 또한 또렷하게 기억난다.
원주에서 버스로 갈아 탄 두 여잔
맨 앞자리에 앉아서 군데군데 코스모스가 핀 강원도 시골길을 신나게 달려갔다.
소풍가는 것 같았다. 달라진 건 키가 커졌고 추억이 많아졌다는 것 빼곤
나는 그 시절처럼 단순해졌고 웃음이 많아져 있었다.
바람 많은 바다는 뭉게구름 많은 하늘과 닮았다.
파도는 멈추지 않았다.
삶은 어느 것 하나 멈추지도 머물지도 않는 것처럼
흰 거품을 내는 파도는 죽었다 다시 살아났다를 반복했다.
어제가 오늘이 되고 오늘이 내일이 되는 것처럼 이 또한 지나간다.
상처 받은 삶이 두 어깨를 짓누를 때 ‘이 또한 지나가리라’ 했고,
세월이 약이라고 스스로 최면을 걸며 살아왔다.
지난주에 일터에서 희한한 일이 일어났었다.
나와 호흡을 맞춰 일한 던 선생님이 유부남과 바람난 것이 들통 나 그 마누라가
일터로 찾아와 자신의 남편과 바람난 선생님을 대대적으로 망신을 준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게시판에 이용자가 글을 올렸고
(청렴해야할 공공장소에 이런 직원을 계속 일하게 할 거냐고 빠른 조치를 하길 바란다는 글이었다)
같이 일하던 선생님은 시청에 시말서를 썼고,
결과는 시청에서 회의를 거쳐 결정을 한다고 한다.
사직서를 받을지 근신을 할지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날지는 누구도 알수 없는 상태다.
한 여자로서 안쓰러웠다. 사랑은 국경도 없다지 않은가.
누구나 한 번의 실수는 있다고 본다.
다만 이 선생님이 같이 일하는 선생님들에게 미운털이 박힌 게 문제였다.
아무도 이 선생님을 위로하는 동료가 없었다.
다들 고소하게 여겼다. 다들 막힌 숨이 터진 것 같다고 했고,
무서웠다. 나도 이 선생님을 미워했으며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났음 했었다.
자연을 사방에 품고 보니 싸늘했던 마음이 녹아내렸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세월이 약이랍니다.’ 선생님에게 이 말을 해 주고 싶었다.
창이 넓은 바다기차는 가을이 스며드는 논과 들판을 지나가고,
하늘은 푸릇하게 물오른 나무에게 가을 색 물감을 묻힌 붓을 들고 있다.
기차방송국은 신청곡을 받는다고 문자를 넣으란다.
“글 쓰는 방에서 만난 붓꽃 닮은 십년지기 친구와 갑자기 여행을 왔어요.
고마운 친구와 이 노래를 듣고 싶어요. 이선희의 ‘그 중에 그대를 만나.’“
우이씨~~ 말로만 떠들더니 기차가 종착역에 오도록 틀어주질 않더니
뭐? 사정상 신청곡을 못 들려 드렸다고? 뭐야? 뭐냐고?
다시 버스로 갈아 타고 간이역 음악회에 도착한 시간은 일곱 시였다.
낮은 밤에게 자리를 내주고 떠난 시간이다.
간이역 주변으로 코스모스가 그득하다.
나는 도의원이나 시의원이 될 생각조차 없는 사람이다.
다만 이런 아름다운 꽃 정원을 보면 정치인이 되고 싶다.
그래서 빈터란 빈터는 다 꽃을 심으라고 명령하고 싶다.
“야! 이 인간아 먹고살기 힘든데 꽃은 무슨 거지발싸개 같은 꽃이냐.”
대모를 한다해도 난 온 천지를 꽃으로 뒤집어씌우고 싶다.
귀로는 음악을 들으며 간이역 코스모스 밭에 앉았다. 조 옆에 화장실이 보인다.
코스모스 꽃을 코에 대 보았지만 냄새는 없다. 원래 향기 없는 꽃이었나 보다.
근데 어디선가 솔솔 지린내가 났다. 조 옆 화장실에서 나는 건 아니지?
확실하게 장담하건데 이건 오줌냄새가 분명해졌다.
어떤 남자가 화장실을 코앞에 두고 코스모스 얼굴에다 오줌을 갈기다니 이런, 이런.
뭐 그래도 앉아있었다. 이 분위기를 깨기 싫어서 코스모스향기라 생각하기로 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은 없었다.
별을 없었지만 친구는 별 이야기를 했다.
“성지순례를 갔었어. 아주 깜깜한 밤이었지.
난 일행에서 뒤쳐져 길을 잃게 되었고,
앞으로 나가지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상황에서 하늘을 보았어.
달처럼 큰 무수히 많은 별이 날 내려다보는 거야.
근데 왜 눈물이 나오는지 정말 펑펑 울어버렸어. 길을 잃어서 울었던 건 아니었어.
그동안 상처받았던 일들을 가슴속에 꼭꼭 눌러 담고 있었는데
그것들이 눈물로 쏟아지는 거였어. 기도를 했어.
이제 얽매임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여기서 나를 일어나게 해달라고,
그때 뒤에 오던 다른 일행을 만나 무사히 가던 길을 찾아가게 되었고,
갇혀있던 나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 낼 수 있었어.“
저 별은 식물이 살 수 없는 건조한 땅일 뿐이고,
숨을 쉴 수 없는 죽은 공기뿐인 알 수 없는 행성이지만
그걸 보며 마음의 고요를 찾아가고, 삶에 애착이 생기게 되었다니.
자극과 노력이 없다면 성장도 없고, 자연을 느낄 수 없다면 인생은 사막인생일 것 같다.
강원도를 구석구석 골고루 휘휘 돌아 늦은 밤 제자리로 들어왔다.
침대에 누워 기차방송국에 신청을 했지만 아쉽게 듣지 못한 이선희의 노래를 틀었다.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 중에 그대를 만나~~ 꿈을 꾸듯 서로를 알아보고~~
나를 꿈처럼 불러주던 그대~~ 수많은 이름들 그 중에 하나 되고~~
우리 사랑 운명이었다면...내가 너의 기적이었다면...“
눈물이 난다. 실로 몇 년 만에 감성이 넘쳐 눈물로 흘러내렸다.
하얗게 부서지던 파도소리, 덩더쿵덩더쿵 기차바퀴소리, 간이역코스모스,
소변냄새까지 보여 눈물이 났다.
밝은 자줏빛 야생화, 구두 끝에 채이던 풀들, 하늘에 걸린 전나무들이 보여 눈물이 났다.
어느 성지순례에서 쏟아졌던 별별별별들을 보며 흘렸다던 눈물얘기 때문에
나도 눈물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