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꽃여자가 9년 만에 연락이 왔다.
그날은 촉촉이 비가내린 일요일 오후였다.
휴가 나온 아들아이를 바래다주면서
상하이상하이 트위스트 추면서 이 노래가 생각나는 상하이라는 햄버거를 먹고 있었다.
양상추를 흘려가면서(나이가 오십 줄이 넘으니 음식이 턱밑으로 새어나온다.)
옆에 있는 애들 아빠는 턱밑이 나보다 더 뚫려 있는 것 같다.(더러워)
맛있게 뭉텅뭉텅 베어 먹고 있는데,(나이가 오십 줄이 넘으니 햄버거도 댕긴다)
카톡 들어오는 진동음이 울렸다.
붓꽃여자는 내 의사도 타진하지 않고 카톡을 날렸다지만
나 또한 붓꽃피던 오월에 보라색 원피스를 입고
우리 집에 처음 방문했던 그 모습이 딱 떠올랐다.
자기 혼자만의 짝사랑이고, 언제나 내 글을 좋아하는 팬이라며 자기를 잊지 않았는지하면서
장문의 카톡 안에 조심스러움이 보였다.
치매가 걸리지 않는 한 내가 어떻게 너를 잊을 수가 있냐고 나는 야단을 쳤고,
우린 그렇게 9년 만에 마두역 5번 출구에서 만났다.
호들갑스럽게 서로 변하지 않았다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저 아줌마는(나 말이다.) 옛날에도 저렇게 삭았었나 했겠지만
거짓말이 아니고 붓꽃은 정말 그대로였다.(믿어달라.)
매운 쌀국수를 먹으며 떠들고, 매워서 기침이 나왔고,(오십 줄이 넘으니 사래도 잘 들린다.)
서로 사주겠다고 버럭 소리를 질렀고,
행단보도를 건너 카페로 자리를 옮겼고, 커피에 아주 달콤한 빵을 시켰고,
서로 팔찌가 예쁘다고 했고,
흰머리 많다고 보여주고,(옆에 젊은 남녀가 있었는데, 어쩐지 금방 나가더라니.)
서로 잘 살았다고 칭찬했고,(이건 칭찬해도 됨)
붓꽃이 키우는 늦둥이 고양이 사연을 듣고,(미쿡에서 왔단다.)
내 개는 늙어서 잠만 잔다고 했고,
서로 오줌보가 터지려할 때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시계를 보니 여섯시가 넘어있었고.
한시에 만났는데, 몇 시간을 떠든거야? 그러면서 카페를 나왔고,
호수공원으로 갔고, 낭창이는 분홍바늘꽃에게 눈길을 잠깐 주고,
순백의 옥잠화에게 손가락질 한번하고,
미웠던 남편이 이제는 불쌍해 보인다고 했고,
사랑 같은 놈은 찾을 생각도 안한다고 했고,
내 꿈은 여전하다고 했고,
9년 동안 살아온 얘기를 앞으로 돌려 다시 들려줬다.(숨 좀 쉬고)
배가 고파졌고, 인도음식점으로 들어가서는(인도사람 한국말 잘하데, 말조심해야겠다.)
너무 떠들었더니 머리가 아프다며 그만 떠들어야겠다고 하고선
란에 시금치카레를 찍어먹을 때만 좀 조용하다가 다시 떠들었다.
말조심한다더니 금방 잊어버렸다.(아줌마가 그렇지 뭐.)
오십 줄이 넘으니 지나가는 고양이에게도 말을 붙인다. 집이 어디니? 밥은 먹었니?
내가 집이 어딨고, 밥이라도 주면서 고딴걸 물어보라고 고양이가 욕을 하는 걸 분명 들었다.
(거짓말 아니다. 난 거짓말을 못한다.)
붓꽃을 처음 만나건 40초반이었다.
내가 한창 세상에다 대고(내 잘못도 모르고. 사십대 땐 모르던 걸 오십대가 되니 알게 됨.)
욕을 하는 글을 쓰던 때(거짓말을 안 하지만 욕은 한다.)
내 글이 좋다며 무작정 나를 찾아왔었다.
붓꽃의 집에도 갔고, 우리 집에도 오고, 여행도 하고, 예쁜 들꽃 찻집도 가고,
영화도 보고, 명동칼국수도 처음 먹어보고, 선물도 많이 받았었다.
성격차이로 헤어진 건 절대 아니었다.(동성애자 아님. 우린 절대적으로 이성애자임)
사는 형편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었다.
붓꽃은 뒤늦게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는 대학생이었고,(대학원까지 나왔단다.)
나는 가장이라 많이 바쁘고 힘들고 슬프기도 했었다.
붓꽃은 세 가지 기도 제목을 가지고 떠났다.
1.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기.(기필코, 한사코, 누가뭐라케도 되야만한다.)
2. 다시 글씨기.(붓꽃은 분칠하지 않는 말간 민낯 글이 좋단다. 내가 그런 글을 쓸 수 있나? 기도는 할 수 있지, 뭐)
3. 애매모호하면서 야리꾸리한 일 잘 무마되기.(요 사연은 기회가 되면 하겠음. 안 할 수도 있음. 기대하지 말 것)
수다 떨기 좋아하는 내가 그동안 어떻게 은둔생활자로 살았는지 말짱 거짓말 같다.
(어, 거짓말은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