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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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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용돈-3편


BY 들꽃나라 2014-08-27

퇴근후 집에 들어와 집안 어디에도 엄마가 없다는것을 알고 나의 모습은 마치

우리 큰아이 어릴적 쇼핑하던중 없어지던날.. 머리속이 하얘지고 아무것도 눈에 보이질

않아 정신나간 사람같았던 그때의 그 모습과 똑 같았다.

신발장위에 가방을 놓고 옷도 갈아입지 못한채 현관 밖으로 나가서 엄마를 찾기 시작했다.

동네 수퍼에도, 뒷산에도, 버스 정류장에도, 과일 가게에도, 지하 주차장에도

그 어디에도 엄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정신이 나가서 찾아헤맸는지 시간은 자정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가슴이 먹먹하고 입술은 자꾸만 바싹바싹 타들어 가고...다리에 힘이 풀린채로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데 남편이 말없이 나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그리고 남편과 파출소에 가서 실종신고를 했다.

그렇게 뜬눈으로 밤을 지세웠고...처음엔 걱정스러웠던 마음이...시간이 지남에 따라

원망으로 바뀌고...점차 다시 걱정스런 마음으로 바뀌어 갔다.

 

다음날 아침...가족들은 모두 전화기 앞에서 소식을 기다렸다..

무엇을 잘못한 아이처럼 가슴이 초조했고.. 잘못에 대한 벌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불안하기까지 했다...오후 3시정도 되었을까.

초인종 소리에 가족 모두는 약속이라도 한듯 현관앞으로 달려갔다.

문이 열리고 경찰복장을 한 남자 두어명 뒤로 초라하기 짝이 없는 바짝 마른 엄마가 서 있었다.

그렇게 엄마는 다시 돌아왔고...그렇게 나는 엄마를 다시 찾게 되었다..

 

날이 갈수록 엄마의 치매는 더욱 심해졌고..가족들을 못알아보게 되었고..

하루종일 현관 앞에 앉아 집으로 가야한다고 울거나 떼쓰는 일이 많아졌다.

간병인을 구할 처지도 안되고..그렇다고 요양원으로 모시는 일도 내 마음이 허락지 않아서

급기야는 회사에 사표를 내고..본격적으로 엄마를 간호하는 일에 집중을 하게 되었다.

 

밤에는 환시, 환청에 시달려 귀신과 대화를 하고..점차 음식을 넘기는것 조차 힘들어 했다.

나보고 동생이라고 했다가..엄마라고 했다가..돌아가신 할머니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가을이 지나고..유난히도 추운 겨울이 지나고...엄마는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전동침대를 지원받아 기저귀에 대소변을 받아내고...날씨가 더워지면서 욕창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의 생활은 그렇게 온종일...죽을 쑤고, 기저귀를 갈아 드리고, 귀신과 대화하면서 울고 웃는

엄마의 모습을 보는것이 전부였다..

웃음이 사라진지 오래인 나의 모습에 가족들은 눈치보느라 급급했고..예민해진 나의 성격 탓에..

한창 사춘기인 아들이 방황하는것조차 모른채..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또 지나고...지나갔다..

 

그날 아침에도 여전히...밤새 환청에 시달리던 엄마가 늦은 새벽에야 잠이 든것을 확인하고는

하얀 죽을 쑤었다. 한숟갈이라도 더 넘기게 하기 위해서 불린 쌀을 찧어 멀겋게 끓이기 시작했다.

그날은 8월 초..일요일 아침이었다.

\"엄마...식사하게 일어나요.\"

\"으 으응...\"

여느때처럼 나의 목소리에 대답을 하셨지만..눈을 뜨지 않았다.

\"엄마..일어나야지..눈 떠요...더 주무실거에요?\"

가죽밖에 남지 않은 얼굴을 들여다보니..엄마는 대답대신 눈물을 주루룩 흘리고 있었다.

\"엄마 왜 울어? 욕창 난데가 아파서 그래?\"

\"우리 딸 불쌍해서 어쩌니...우리 딸 가여워서 어쩌니.....\"

\"엄마 내가 왜 불쌍해...이렇게 곁에 엄마가 있는데...울지마요..\"

좀처럼 눈물이 멈추지 않아 애를 먹이더니..또 다시 잠이 들었고.. 멀건 죽을 주방에 다시 들여놓았다.

 

피곤한 육체를 잠시 쉬게 하려고 자리에 누웠는데...

아들과 딸아이가 분주하게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엄마 약속 있어서 나갔다 올께요..\"

아들의 묵직한 목소리가 괜시리 거슬렸다.

\"오늘은 나가지말고 집에 있으면 안되니?\"

\"미리 약속이 잡힌 일이라....안가면 안되요.\"

 

마음이 왠지 이상한 것이다..아이들도 남편도 오늘만큼은 나가지 말고

내 곁에..그리고 엄마 옆에 있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그날따라 너무도 간절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