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폐에서 시작된 작은 암세포가 머리로..임파선으로..급기야는 골반으로
전이가 되기까지 그동안 체중도 눈에 띄게 줄어들고 몸 상태도 상당히 안좋았을텐데
왜 이제 병원에 왔느냐는 의사 선생님의 말이 도대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저 왜 내게 이런일이..왜 하필 우리 엄마에게...내게 유일한 피붙이 가족은 엄마뿐인데..
나 혼자 어찌 감당하라고 하는건지..내가 그동안 무엇을 얼마나 잘못하고 살아온건지..
나는 그저..그렇게 내 자신에 대한 정당하지 못한 합리화만 계속해서 늘어놓을 뿐이었다..
방사선 치료외에는 병원에서 해 줄 수 있는것이 없다고 해서 일단은 퇴원을 했다.
엄마를 집에 혼자 둘 수가 없어서 급하게 정리를 하고 몇개의 가구와 옷가지만을 챙겨서
우리 집으로 모셔왔다. 25평 방이 세개지만 아이들 방으로 엄마를 모시고 싶지는 않았다.
어느책에서 보았던가...집안에 환자가 있을때에는 베란다 밖이 환하게 보이는 거실에
침실을 놓고 가족들이 현관으로 들어오고 나가는것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고.. 그래서 그렇게 하려고 침실을 거실에 놓고 가족들이 왔다갔다
하는것을 볼 수 있도록 했다.
갑작스럽게 변화된 집안 환경에 아이들과 남편은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다.
\"엄마 거실이 넘 좁아졌어. 우리집 아닌거 같아..\"
\"엄마 할머니 얼마나 아픈거야? 돌아가시는거야?\"
중학교 1학년 아들과 초등학교 4학년인 철부지 딸은 할머니의 병환이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마지막 방사선 치료를 끝내고 이제는 유전자 검사 결과만을 남겨놓고 있다.
이레사 약을 쓰면서 항암치료를 받을지.. 호흡기내과 교수님은 항암치료 들어가기전에
폐에도 방사선 치료가 급하다고 하는데...혈액종양학과 교수님은 엄마의 체력이
너무 안따라주니 방사선치료 보다는 이레사 약을 쓰며 기다리는게 좋다고 하시고...
10년 넘게 치료중이던 당뇨약에 항암치료제 이레사, 단백질 비타민 철분제, 소화제,
간장약과 감기약등...끼니마다 수없이 많은 알약을 삼켜야 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2주에 한번씩 새벽바람 맞으며 병원 모시고 가서 검사 받고 약 처방 받고
또다시 집에 모셔다 드리고 출근 하여 허겁지겁 일처리 하고 직원들과 상사 눈치 보며
퇴근후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와 저녁하고 집안일 하는 고단함이..
정작 그것이 엄마의 고통에 비하면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병원에서는...6개월의 선고를 명시했지만..정신없이 지난 시간이 어느덧 6개월을
훌쩍 넘어갔다. 항암치료제가 독해서 자고 일어나면 머리카락이 한움큼씩 빠지길래
차라리 삭발을 하자고 권유했다. 머리카락은 다시 자랄거라고 그렇게 엄마를 위로했다.
머리를 삭발하던날....바람이 몹시 불고 매서운 추위때문에...
마음 한켠이 또 힘겨웠다...삭발한 머리를 가족에게조차 보여주기 싫다고 엄마는
주무실때 말고는 모자를 벗지 않으신다...
체력이 떨어져 하루종일 잠만 주무시고...운동을 못하는 덕에 당뇨 수치는 자꾸만 높아져만
간다. 밤에는 암세포의 활동이 더욱 자극적인지 엄마의 불규칙한 호흡소리 때문에
불안한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몇번이고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나 엄마의 가슴에 귀를
대고는... 불규칙하게 뛰는 심장박동 소리를 듣고서야 또 한번 가슴을 쓸어내리곤 한다..
2012년 9월 어느날...
깊은 잠을 못잔탓에 무거운 몸을 겨우 일으켜 졸리운 눈을 부비는데 엄마가 벌써 일어나
베란다 창문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계시는게 아닌가.
그렇게 오래동안 창밖을 바라보시는 모습은 본적이 없는것 같다.
\"엄마...벌써 일어나셨어? 뭘 그렇게 보셔요?\"
\"........\"
힘없이 늘어진 작은 어깨가 가늘게 떨고 있었다.
\"엄마...왜그래? 울어?\"
\"나...얼마 못사는거지?..나도 알아..맨날 아프기만 하고 낳질 않아..\"
\"엄마 무슨 그런 소리를 해. 엄마가 왜 얼마 못살아.. 약 잘 드시고 밥 많이 드시면
빨리 털고 일어날 수 있다고 의사선생님이 말씀하셨잖아.\"
그동안 아프단 말씀도, 눈물을 흘리는 일도, 약해지는 모습도 절대 보여주지 않았던
엄마였다. 어린아이처럼 엄마의 목메이는 목소리에 나도 같이 울컥해져서...
나도 모르게그렇게 엄마의 작은 어깨를 부여잡고 한없이 울고..또 울었다.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누구도 자유롭게 웃고 떠들고 하는건 참으로 어색한 일이다.
재잘거리던 아이들의 말수도 줄어들고, 잦은 회식으로 늦은 시간에 들어와 큰소리로
떠들던 남편의 목소리도 들은지가 오래다.
엄마와 그렇게 한바탕 시원하게 울고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출근을 하는데...
그날따라 왜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는지...마음 한켠이 왜그렇게 불안하던지...
그 이유를 퇴근해서야 알게 되었다.
엄마의 신발과 옷가지들이 보이질 않는다.
방안 구석구석 어디에도 엄마는 계시질 않았다.
배게옆에 오래된 엄마의 핸드폰만 덩그러니 남아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