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도 분명 흔들리고 싶지 않을 것이다.
올해는 어인일인지 태풍이 건너뛰고 안오나 싶어 안심했더니 10월 태풍 2개가 멀리나마 지나갔고
지금도 거문도 앞바다는 연이어 올라오는 태풍 2개의 영향으로 주의보가 내렸다.
제몸을 비틀고 쪼개는 바람이 바다인들 반가울리가 없다.
지구온난화로 봄과 가을이 실종되어간다더니 어느새 바람이 차가운데다 늦은 태풍의 영향으로
이삼일째 바람이 거센 섬은 앞으로 이런 날들이 자주 들이닥칠 것이다.
이삼일 간격으로 주의보가 내리고 살을 에이는 바람에 집집마다 창문과 대문을 더욱 꼭꼭이 닫혀버리는
계절이 오면 고즈넉이라고 표현하는 일이 사치일만큼 죽은 듯한 고립감이 밀려든다.
서울을 다녀오면서 무거운 짐들은 미리 부쳐두어 다행스럽게 나와 같은 배로 들어왔지만 정성껏 담아주신
엄마표 김치는 주의보에 묶여 지금 여수항 어딘가에서 푹푹 시어가고 있다.
다행히 잠시 주의보가 예비특보로 바뀌어 오후배는 들어온다니 노인네가 힘들여 담가 보내준 김치를 조금이나마
건질 수 있기만 바랄 뿐이다.
섬에 살다보면 요령이 생기게 된다.
섬을 오갈 때 양쪽팔과 어깨에 실릴 수 있을만큼 가득 생필품을 챙겨오게 되는 일은 물론 가능한 생필품은 온라인
쇼핑몰이나-이것도 가능한 도서택배비가 붙지 않은 제품을 골라야 한다-
택배비가 붙지 않는 홈쇼핑을 이용하게 된다.
오로지 육지와 차별하지 않고 내집까지 배달해주는 곳은 우체국뿐이다.
주로 녹동에서 출발하는 차를 실을 수 있는 평화호에 우체국택배들이 오가는데 이 곳 우체국은 어느 때는 일요일에도
배달을 하고 이렇게 주의보가 내리는 날은 배달일이 없어 한산해지기도 한다.
내 기억으로 닷새인가 연속으로 주의보가 내렸던 적이 있었는데 주의보가 해제되고 며칠 동안 우체국직원들이
힘들게 배달일을 하는 것을 보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었다.
좀 나뉘어서 와야 그나마 덜 고될텐데..지금도 창밖에는 아침6시면 출발해야 할 평화호가 주의보가 해제된 11시경에
떴는지 이제서야 섬에 제몸을 대고 있다.
하지만 잠시의 여유도 없이 오늘 오후나 내일이면 다시 주의보가 내릴 예정이라 어렵게 주의보 사이를 뚫고 도착하는
배들은 급한 우편물이나 생필품들이 가득할 것이다.
어제 저녁 아침배로 실을테니 찾아가라는 택배사의 전화를 받고 - 이곳은 우체국택배를 제외한 택배사의 물품은
여객선 터미널에서 배를 기다렸다 찾아와야 한다-
아침배를 기다렸지만 주의보에 발이 묶인데다 토요일까지 주의보란 소리에 기겁을 해서 택배사로 전화를 했다.
어느 택배사인가 한 번 이런 일이 있었는데 고맙게도 냉장식품을 냉장고에 보관했다 보내준 기억이 있어 부탁을 했더니
이미 여객선터미널에 갖다 놓았으니 그 곳에 전화를 해서 부탁을 하란다.
이런...
하필이면 이럴 때 냉장물이 내려온 내 경우는 최악이겠지만 이왕이면 친절하게 자신들이 부탁을 해주거나 조금 더 욕심을
내자면 자신의 택배사로 되가지고 와 보관했다 보내주어도 좋으련만 언감생심 바랄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겨우 화물여객소장과 통화가 되어 오후배가 뜨지 못하면 자신의 창고에 있는 냉장고에 보관했다 보내주겠다는 답변을
받고서야 진정이 된다. 팔순이 가까운 노인네가 쉰이 넘은 딸을 위해 장을 보고 양념을 해서 더구나 무거워진 김치를
들고 택배를 보낸 정성이 어찌 대단하지 않을 것인가.
혹시나 도착을 못했나 전화를 걸어온 노모의 얼굴이 어른 거린다.
자식은 평생 애물단지라더니..유배마냥 섬으로 떠나 늙어가는 딸의 신세가 애닯퍼 밤잠도 못주무실테니 이런 불효가
어디 있을까.
어쨋든 거문도에서 가장 많은 택배와 우편물을 받는 나로서는 -확인은 안했지만 거의 맞을 것이다-
이래저래 택배사 서비스 점수를 체크하게 되고 고맙게 현관문까지 갖다주는 배달부에게 절로 고개가 숙여질 뿐이다.
어이..이 글 보시는 택배사 아저씨들이요. 제발 마음에서 우러나는 그런 서비스..안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