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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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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BY 그대향기 2013-05-18

 

 

 

며칠 전 내가 모시던 할머니 한분이 투박한 내 손을  만져 보시며

\" 일 많이 하는 사람 손 치고는 고운 편이네요.

  손모양이 아담하고 따뜻하네요.\"

그러신다.

늘 물 일을 하는 손이라 거칠어지고 검게 탄 손이다.

겨울에는  고무장갑이라도 끼지만 여름에는 그것도 더워 못 한다.

손마디가 굵고 햇볕에 검게 탄 내 손은 섬섬옥수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래도 어른들은 내 손 모양이 아담하고 일 잘하게 생긴 손이라고들 하셨다.

나는 피아노를 잘 치게 생긴 하얗고 긴 손가락이 좋은데...

돌아가신 엄마 손이 딱 내 손처럼 작고 아담하고 두툼했다.

 

내 손을 그렇게 만져 보고 난 그날 오후

그 할머니는 저녁 밥을 준비하는 주방으로 조용히 들어 오셨다.

도와주는 아줌마가 오기 전 시간이라 주방에는 나 혼자 저녁준비를 하고 있었다.

주위에 아무도 없는 걸 살피시곤 내 손가락에 반지 하나를 끼워 주셨다.

\"언제고 죽기 전에 짐 정리하면서 주려고 했던 겁니다.

 15년이 넘도록 보살펴 주신거에 비하면 너무 작은 선물이지만 받아주세요.

 디자인이 맘에 안 들면 다시 손 좀 보면 될겁니다.

 제게는 소중한 추억이 있는 반지니 정으로 받아주세요.\"

 

그말을 남기시고 얼른 주방을 빠져 나가시는 올해 일흔 셋의 할머니.

처녀로 늙으셨고 일찍 피아노를 배웠고 피아노 레슨도 하셨고 대학을 졸업하신 인테리시다.

해박한 지식과 컴퓨터에 가까운 정확한 기억력으로 혀를 내두리게 하는 신식할머니시다.

태어날 때 부터 약한 체질이라 늘 약병을 달고 사시지만 다양한 건강식으로

스스로 잘 이겨내시는 편이다.

그 연세에 왕성한 호기심으로 세계사나 국사, 야생화나 약초에 대한 지식도 대단하시다.

정확한 기억력과 지식은 거의 백과사전 수준?

나보다 20년은 더 낡은 두뇌가 아니라 20년은 더 발달된 두뇌를 가시셨다.

무슨 일을 하다가 기억이 가물거리는 일이 있어  물어보면 정확한 기억력으로 일러 주신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며 하나 둘 주변을 정리해야겠다며 그 반지를 준다고 하셨다.

18금에 루비와 큐빅이 자잘하게 박힌 반지였다.

디자인은 요즘 젊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심플과도 거리가 멀었지만 과분한 선물이었다.

당연히 급료를 받으면서 하는 일인데도 잔심부름에 병원출입까지 돌봐드린게 고마우셨던 모양이다.

뜻밖의 큰 선물에 거절을 했지만 누가 보면 안된다고 얼른 반지를 빼서 앞치마주머니에 넣어주셨다.

\"작을까 고민했는데 조금 큰 듯해도 잘 들어가서 다행이네요.\"

흐뭇한 표정으로 살며시 웃으시곤 총총히 주방을 빠져 나가셨다.

얼떨결에 받긴 했지만 마음에 부담이 컸다.

그래도 할머니한테는 큰 재산이고 추억일건데....

 

저녁 설겆이를 마치고 조용히 그 할머니방으로  찾아갔다.

\" 이 반지 조카분들한테 드리셔도 되잖아요?\"

\"아니에요 . 지금 저를 돌봐 주는 사람이 중요하지 조카는 아니잖아요.

 충분히 줄만하니까 주는거니까 받아주세요.\"

\"그래도....\"

\"생각같아서는 더 큰 선물도 드리고 싶지만 내가 가진게 별로네요.

 나중에 내가 죽으면 뒷수습이나 부탁드립니다.ㅎㅎㅎ\"

\" 그야 이런 선물 안 주셔도 당연히 해 드리는  일인데요.

 저번에 애들 결혼이나 대학 들어갈 때도 신경 써 주시더니....

 부족한 제게 과분하게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치나 허례허식은 일절 안하시지만 아프리카 기아구호나 제3세계 대학생들의

장학금이나 호스피스, 불우한 이웃을 돌보는 일에는 아낌없이 드리는 할머니시다.

 

그렇게 나는 반지가 생겼다.

왼손 약지에 조금 헐렁했지만 작지가 않아서 좋았다.

미안하고 고맙고 더 잘해 드리지 못했던 여러가지가 송구스러웠다.

며칠 전에는 그 할머니의  오빠네 손자가 우리나라의 유명한 제약회사에 다니는 관계로

할머니의 건강식품을 보내왔는데 우리 남편과 애들 몫으로 따로 떼 주셨다.

본인은 늙었으니 덜 먹어도 되고 젊은 사람들이 잘 먹고 건강해야 일도 많이 한다고 하셨다.

나는 오히려 나이 드신분이 더 잘 잡숴야 건강해 지시는거라고 했다.

결국 그 약을 다 받아오긴 했지만 늘 고마운 할머니시다.

내가 돌 봐 드리는 것 이상으로 고마움을 전하시는 할머니.

우리 가족들의 경조사에 누구보다도 많은 애정으로 챙겨주시는 할머니의 사랑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