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결혼 28년차
2년만 더 있으면 결혼 30 주년이 된다.
많이도 살았네...ㅎㅎ
사랑 하나면 밥 안 먹어도 배 부를 것 같아서 앞 뒤 안 재고 결혼한 순정파 우리 부부
스물 다섯살의 아내와 스물 네살 남편의 소꿉놀이가 벌써 스물 여덟해나 이어지고 있다.
딸 둘에 아들 하나.... 남 있는 자식들은 다 있다.
큰딸이 일찍 결혼을 해 줘서 마흔 후반에 장모님이 되는 영광(?)도 누리고 사는 중이다.
날마다 화상 통화를 하면서 놀아도 보고싶은 이쁜 외손녀 덕분에 외할머니도 되어 있고..ㅎㅎㅎ
그 동안 크고 작은 전쟁들을 퍽도 많이 치루었다.
성격차이에서 오는 갈등과 자라 온 환경 즉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 시댁문제
나는 새벽형 인간인데 반해 남편은 야행성이라 겪어야 했던 갈등과 아이들 양육방식 등...
소소하고도 절박했던 수 많은 일들을 겪어 내면서 이젠 우리 부부 참 편한 친구가 되어 있다고 본다.
내 여고 동창생이나 초등학교 동창생보다 남편의 군대 동기들보다 더 편한 친구
누구 한사람 말이 없다 싶으면 일부러라도 말 걸어 소통을 하고야 마는 둘이 하나가 된 지금
새댁시절보다 더 행복하다면 거짓이라 할까?
결혼해서 떠나고 대학교 다닌다고 군대 있다고 집을 떠나 있는 세 아이들보다
같은 직장에서 24시간 그림자처럼 붙어 다녀도 지루하지 않은 남편이 나는 참 편하다.
일하는 시간 이외에는 남편은 서재에서 붓글씨를 연습하거나 인터넷바둑을 둔다.
나는 아이들 컴퓨터 방을 개조한 2평 남짓한 나만의 작은 공간에서 책도 읽고 살아가는 이야기도 기록해 둔다.
서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중간중간에 커피나 간식을 넣어주며 한마디씩 건네는 인삿말이 좋다.
즐겨보는 프로그램이 너무나 달라서 같이 시청할 일이 거의 없는 거실의 텔레비젼 앞이나
너른 쇼파는 하던 일이 싫증나면 잠깐씩 만나는 우리 부부의 랑데뷰 장소가 된다.
서로의 구역에는 신성불가침법을 적용한다.ㅋㅋㅋ
은혼식 때 너무 소박하게 지냈던 것 같아 이번에는 좀 특별한 이벤트를 꿈꾼다.
결혼 30주년이면 서로에게 장하다고 해 줘도 밑지는 장사는 아니다.
나 자신보다 더 나를 잘 안다는 남편이나 남편보다 더 남편을 잘 안다고 확신하는 나는
결혼 30주년을 기념하는 일에도 기본적으로 하는 생각은 많이 다르다.
여자인 나는 특별히 기념 될 일을 하나 만들고 싶어한다.
가령 가족사진을 아주아주 자연스런 폼으로 쿨하게 찍고 싶다거나
외손녀까지 다 달고 가까운 곳에라도 가족여행을 가고 싶은데 남편은 아니다.
우리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원한다.
그 동안 아이들 낳고 기르고 늦깍이 남편 대학 공부시킨다고 참아야 했고 건너가야 했고
모른 척 했었던 근사한 식사와 그럴듯한 옷 한벌이라도 빼 주고 싶어하는 남편이다.
남편이 하던 공장이 쓰러지고 어려울 때 마다 내다 팔아버린 아이들 돌반지나 내 반지를
이런 기념에마다 하나씩 되찾아 주고 싶어하는 남편이다.
반지 없어도 나는 괜찮은데...목걸이 없어도 굵은 목이 하나도 안 허전한데....
기본적으로 풍기는 카리스마로 충분히 커버가 된다며 자화자찬에 빠져 살아도 되던데...ㅋㅋㅋ
남편은 어디 나갈 때 맨손에 긴 목으로 그냥 나가는 내가 안스러운가 보다.
알반지끼면 주머니에 손 넣을 때 걸리적거리기만하고 겨울에 목걸이하면 보이기나 하나 뭐???
열손가락에 빠짐없이 다 물방울다이아 알반지 꼈다고 행복하나 뭐???
앞으로 2년 뒤 결혼 30주년이 되면
불어난 가족들까지 다 찍는 가족사진은 꼭 찍고 싶다.
더 늙기 전에 더 망가지기 전에 다이어트도 좀 하고 프로의 손을 좀 빌려 메이컵도 과감히 해서
촌스럽지 않은 멋진 가족사진을 꼭 찍고 싶다.
간단한 스냅사진은 가끔 찍지만 근사한 옷을 차려입고 사진관에서 찍은 가족이 다 모이는 사진은 없다.
여행도 가고싶고 뭐 준다면 못 받을 나도 아니지만 반지같은 것도 좋은데
무엇보다도 더 좋은 선물은 남편이나 내가 다 건강하고 아이들도 건강해서 축하하고 축하받는 날이고 싶다.
암 수술을 두번이나 받은 남편이 지금처럼 건강하게 내 곁을 지켜주는 일이 내게는 그 무엇보다도
큰 결혼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