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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타령


BY 원스맘 2013-02-18

 

 요즘은 국가 차원의 모유 장려 캠페인 덕분에 직장맘들까지도 냉동저장을 해가며 모유수유에 열을 올리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내가 큰애를 가졌을 때는 주변에 모유 먹이는 엄마들이 기껏 한, 두명 정도나 될까 대부분 인공수유를 했다. 그나마도 “누가 먹인다 카더라.” 건너들은 말이지 직접 목격한 일은 없었다. 젖을 먹이는 풍경은 구한말 기록사진에서나 아프리카 오지, 아마존 정글의 원시부족의 생활 등을 찍은 TV 다큐멘터리에서나 볼 수 있었다. 거기다 막달 무렵에는 어처구니없게도 아기만 낳고 나면 홀가분한 몸이 되리란 희망이 부풀었던 터였다. 그러니 나와 아기가 피사체가 되는 포유의 장면을 꿈엔들 상상해 보았겠는가. 또 자기네 회사 분유를 먹이면 틀림없이 건장한 우량아가 될 거라고 호언장담하는 광고들에 얼마나 세뇌를 당했는지, 당연히 분유를 먹일 작정으로 젖병을 구입하고 분유회사에 샘플을 신청하는 등 부지런히 발품을 팔면서 출산준비를 했다. 조만간 퉁퉁 부은 배불뚝이 신세, 끝! 을 외치며.

 

 그러나 인생이 내 뜻과 계획대로 굴러간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어디.

 

 출산 당일, 진통을 하는 동안 아기가 태변을 조금 먹었다고 해서 입원을 해야 했다. 항생제 투약 때문에 아기에게 젖도 한번 물려보지 못하고 나만 병원문을 나섰다. 태변을 흡입하면 폐렴이나 패혈증으로 진행될 수 있다고 해서 2, 3일 뜬눈으로 밤을 지새며 눈물을 찍어냈는데 다행히 별 문제 없이 건강하다는 진단이 나와서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나는 태어나자마자 엄마와 떨어진 채 병원신세를 져야만 했던 아기의 면역력과 치유력을 높이겠다는 일념으로 샛노란 초유를 만병통치약으로 신봉하면서 부지런히 병원으로 짜다 날랐다. 젖몸살과의 눈물겨운 사투를 치루면서 말이다. 하지만 초유가 그치면 미리 준비한 명품골드분유를 먹일 심산이었기에 이를 악물고 맹렬히 참아냈다. 그러기를 일주일, 드디어 아기가 퇴원했다.

 

 아, 그러나 아기는 단 한 방울의 분유도 입에 대지 않았다.

 

 분유는커녕 모유가 담긴 젖병을 입에 꽂아주면 새끼손가락만한 혀로 병꼭지를 야멸차게 밀어내는 거였다.

 

 “우리 아기 위해서 제일 좋은 걸로 산거야. 엄마젖이나 마찬가지니까 어여 먹자.”

 

 애걸복걸 통 사정을 해도 아기는 단식투쟁을 감행한 투사처럼 입을 앙 다물었다. 오로지 혀에 바로 닿는 날것만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제 아무리 고집이 세다 한들 배고픈데 장사 있으랴, 모진 마음을 먹고 꼬박 반나절을 빈속인 채로 눕혀보기도 했다. 배고픔에 지친 아기가 보채기 시작하면 살짝 젖을 물렸다가 슬그머니 젖병으로 바꿔치기 하는 방법을 써보기로 한 것이다. 몇번 그러다 보면 결국은 젖병을 택할 수 밖에 없을 거란 속셈이었다. 그러나 아기는 처음에는 멋모르고 꿀꺽꿀꺽 삼키다가 이내 속은게 분하다는 듯 퉤퉤! 입을 떼고는 더욱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그 바람에 아기의 혀는 절대미각 수준으로 발달되어 젖병낌새만 맡고도 최첨단 센서를 단 감지기처럼 빽빽 비상사태를 선포해댔다. 엄마의 사기행각이 아기의 엄마젖 집착증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 것이다. 천성적으로 성미가 순한 아이인데 유독 생애 최초의 먹거리에 대해서는 극성맞게 까탈을 부렸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더니 태어난지 열흘만에 마침내 아기는 그 옛날 고려시대 담판의 달인 서희처럼 채 영글지도 않은 주둥이만 가지고 엄마의 꼼수들을 물리치고 모유성으로 장하게 입성했다.

 

 

 


박수근(1914-1965), 젖 먹이는 아내(1960년대)

 

 

 이렇게 시작된 모유수유는 큰 아이 19개월, 둘째 아이 21개월, 합이 40개월의 대장정을 완주해냈다. 처음 얼마간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피고름 줄줄 흐르는 생짜배기 통증은 두말 할 것도 없고 미숙한 자세가 지속되다 보니 어깨와 등이 굽고 허리와 엉치뼈가 눌려 앉은걸음으로 돌아다녀야만 했다. 100일 무렵에야 겨우 아기와 나, 서로가 편해지고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익숙해지니 모유만큼 편리하고 고마운 게 없었다. 일일이 젖병을 소독해야 하는 귀찮음도 없고 한 가득 짐을 짊어지고 다닐 일도 없어 자유롭고 가뿐했다. 뿐인가. 칭얼댈 때, 아플 때, 울 때, 화낼 때, 짜증낼 때, 졸릴 때, 엄마사랑이 고플 때 등 젖은 아기의 들쑥날쑥한 몸상태과 널뛰는 감정들을 조절해주고 단련해주었다. 아기에게 젖은 최초의 삶의 현장이요, 절대유일의 피난처요, 소통과 교감의 통로가 되어준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리 애들은 비교적 엄마와 애착이 끈끈하게 형성되어 그 나이 또래들이 겪는 분리불안이라든가 물건집착증 같은 게 없었다.

 

 그토록 너그럽고 인심 좋은 모유건만, 아쉽게도 우리 아이들은 먹는 양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항상 허기만 축이면 입을 떼곤 했다. 출생시 몸무게가 정상이었고 둘째는 심지어 4.2KG이었지만, 뱃골이 작은지 먹성이 영 신통치 않았다. 키는 늘 평균이상이었던 반면 몸무게는 항상 미달이었다. 그래서 아기들 특유의 구름빵같은 포실한 살집이 없이 동냥젖이나 겨우 얻어다 먹인 거 마냥 여리여리했다. 주변 사람들은 “요새 비만이 문제지, 최고로 쳐주는 체형이잖아. 키 크고 날씬하고, 걱정 마, 딱 보기 좋아.”라며 듣기 좋은 말로 위로를 해주곤 했다.

 

 그러나 토실토실 살이 오른 포시라운 아기들이 나타나면 아기 때는 이래야 해! 이뻐! 이뻐! 너무 이뻐! 도를 넘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우르르 그 포동이에게 몰려갔다. 무겁기가 쌀 한 가마니 같아도 저마다 한 번씩 안아보려고 난리였다. 이 여팬네들, 빈말이나 말던지, 뒷골에서 뻥! 뻥튀기 가마 터지는 소리가 났다. 뒤이어 직격타로 꽂히는 확인사살용 멘트.

 

  “아유, 젖만 먹는데도 이렇게 투실투실한 것 보니 엄마젖이 참젖이네, 참젖이야!”

 

 아니, 그럼 난 헛젖?

 나는 그 길로 앞뒤 없는 경쟁심에 불타올라 사골국물이며, 우족우린 물, 우유, 두유 등등 모유양을 늘리는데 좋다는 음식을 틈만 나면 먹어댔다. 그러나 아이들은 여전히 요기만 채우면 끝, 그 탓으로 확실한 수유다이어트를 하겠다는 야무진 꿈은 물거품이 되었고, 과다한 지방섭취로 과체중이 되고 말았다. 바스트라인은 참혹하게 무너져 내리고 허리는 온대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야말로 회귀 불가능한 푹 퍼진 아줌마 체형이 되어버린 거다.

 

 

 


Mary Cassatt, Mother Rose Nursing Her Child (1885-1890)

 

 

 

 그러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 모유를 포기하는 대신 탄력적인 몸매를 보장받는다 해도 나는 기어코 모유수유를 택할 것이다. 아이와 내가 밀반죽처럼 찰지게 뭉쳐서 하나의 생명덩어리로 숨쉬며 살았던, 아기와 나의 인생에서 다시 없을 소중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젖을 먹일 때 엄마와 아이 모두의 행복감과 친밀도가 최고치에 이른다고 하니 암만 생각해도 잘한 일이다.

 

 가끔 아이들에게 젖먹이 때 이야기를 해주면 부끄럽고 오글거린다며 손사래를 친다. 몸과 마음을 헐어낸 어미의 수고들이 아이들 머릿속에 낱낱이 저장된다면 말 안 듣고 속 썩히는 일이 조금은 덜해질 텐데 애석하게도 그 기억들은 애오라지 엄마의 기억 안에서만 맴맴 고여있을 뿐이다. 그게 밑진 장사처럼 손해 본 것 같기도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자니 어쩌면 조물주께서 일부러 어미 된 자들을 그리 지으신 것이 아닐까 하는 깨달음이 들 때가 있다.

 

 좋든 싫든 아이들은 이제 정글같이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 조그만 발을 물들여 가야 할 것이다. 그 속에서 앞서지는 못할망정 뒤처지지는 말아야한단 어쭙잖은 신념에 사로잡혀 뒤 조급하게 동동거리는 내 모습을 보게 된다. 아이들의 정서적 필요와 목마른 속소리에 귀 기울이기보다 기계를 돌리듯 세상의 시간표를 따라가라고 다그치며 닦달질을 해대는 것이다. 세상길이 버거워질수록 엄마의 심장소리를 바짝 들려주고 고농축의 젖을 물려주어야 아이들의 가슴이 튼튼하게 자라갈 수 있다는 것을 점점 잊고 사는 요즘이다.

 

 그렇게 문득 아이 키우는 일이 건조하고 스산해져 올 때, 아이와 나, 젖 한 줄기만로도 무서울 거 전연 없이 푸짐하게 든든했던 포유의 감성을 되살려내야겠다.